[아버지 흔적찾기⑫] 국가란 무엇입니까?

“나의 부친 문순남(1924~1974, 文順南)은 일본제국주의 말기 조선 총독부 동원령에 의거 전장에 끌려가 중국 동북지역 만주 봉천에서 복무했다. 선친은 일본 패망과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전쟁포로로 수용돼 옛 소련연방 카자흐스탄공화국에서 억류돼 3년 4개월간 강제노동을 하다 풀려났다. 해방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노역에 내몰리며 기약 없는 ‘지옥생활’을 한 것이다.” 대구에서 노동 일을 하는 문용식(59)씨는 16살 때 여읜 아버지 문순남의 흔적을 찾아 20년 넘게 국내외를 헤매고 있다. 그는 “이게 나라냐, 이게 정부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문용식씨는 지난 1월20일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 특강을 통해 “아버지의 자취를 찾는 것은 나라잃은 설움을 후손들은 겪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라고 했다. <아시아엔>은 문용식씨의 잃어버린 아버지 흔적 찾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아시아엔=문용식 ‘2차대전 후 옛소련 억류피해자’ 유족] 4일 일본 게이오대학 오구마 에이지 교수가 최근 영문으로 출간한 <RETURN from SIBERIA> 한권을 보내왔다. 오구마 에이지 교수는 자신의 아버지(오구마 겐지)의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돌아본 <살아 돌아온 남자>를 일본에서 출판했다. 그는 이를 번역해 2015년 한국에서도 <일본 양심의 탄생>(도서출판 동아시아)을 출판해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에 출간한 영어판은 일본의 유명잡지 <세카이>(세계)에 기고했던 한국 방문기로 일본제국 시절 일본군으로 징병돼 구소련에서 억류생활을 했던 조선인 포로들과의 대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오구마 교수를 알게 된 것은 2016년 MBC에서 광복절 특집으로 제작한 ‘아버지와 나-시베리아 1945’의 촬영현장에서다.

나의 일과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MBC제작팀의 배려에 오구마 교수는 그해 6월초 내가 일하고 있는 대구의 사업장을 오후 7시경 방문했다.

특집방송 촬영을 위해 교수와 나의 만남과 대화과정은 방송분량 중 메인 스케줄에 해당되어 밤늦게까지 촬영이 진행되고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그와 나, 우리는 제국주의 말기 일본군에 징집되어 일본이 연합국에 항복할 때 체포되어 시베리아에서 참혹한 포로생활을 한 아버지의 아들이다.

그는 내가 한국, 일본, 러시아 3국 정부를 상대로 “아버지의 기억이 잊혀지지 않도록 흔적을 찾아 자료를 모으며 싸워가는 과정이 놀랍다”고 했다.

교수와 나는 국적도 다르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각기 아버지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고 사건을 조명하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촬영 2일째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오구마 교수에게 “국가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교수는 나에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되물었다. 내가 다시 “국가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교수는 “너와 내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국가라는 것은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정치가만이 아니라 당신도 나도 국가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신은 상황을 조금이라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가 모여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세계가 이뤄지고 한사람 한사람의 행위에 의해 그것은 변해갑니다.”

오구마 에이지 교수는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로 일본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며 방대한 자료와 통계를 살펴 글을 써오고 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암울했던 과거와, 전후 일본 부흥기를 온몸으로 부딛혀온 아버지의 역사를 놓치지 않고 기록한 것은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그였기에 가능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아버지는 1990년 일본정부가 위로금으로 지급한 10만엔 중 절반을 러시아 치타시수용소에 함께 있었던 중국국적 조선인 오웅근 선생께 보냈다.

그의 편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수년전에 정부는 소련 포로였던 군인에게 10만엔을 지급하는 법률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외국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지금 받은 돈의 절반인 5만엔을 당신에게 보내는 것은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사죄의 마음을 담은 것입니다.”

이후 오구마 겐지 선생은 오웅근 선생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 공동원고가 되어 달라는 요청이 있자 기꺼이 부응했다.

2000년 11월 법정 최후변론에서 겐지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 국민이기 때문에 징병하여 시베리아 억류를 시킨 일본, 그 일본이 무책임하게도 지금에 와서 당신은 외국인이니 안된다고 하는 것은 논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차별이고 국제적으로 통하지 않는 인권 무시입니다. 국가에 바랍니다. 이런 국제적 전후 보상에 시효 같은 것 없습니다. 계속 책임회피하는 것은 그만 두십시오. 그리고 이런 류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미루는 것은 멈춰야 합니다.”

양심과 용기의 일본인, 그런 분들이 곳곳에 있기에 한국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은 힘든 시간에도 위로와 희망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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