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흔적찾기⑩] “한국정부 처사는 일본 야당만도 못했다”

“나의 부친 문순남(1924~1974, 文順南)은 일본제국주의 말기 조선 총독부 동원령에 의거 전장에 끌려가 중국 동북지역 만주 봉천에서 복무했다. 선친은 일본 패망과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전쟁포로로 수용돼 옛 소련연방 카자흐스탄공화국에서 억류돼 3년 4개월간 강제노동을 하다 풀려났다. 해방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노역에 내몰리며 기약 없는 ‘지옥생활’을 한 것이다.” 

대구에서 노동 일을 하는 문용식(59)씨는 16살 때 여읜 아버지 문순남의 흔적을 찾아 20년 넘게 국내외를 헤매고 있다. 그는 “이게 나라냐, 이게 정부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문용식씨는 지난 1월20일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 특강을 통해 “아버지의 자취를 찾는 것은 나라잃은 설움을 후손들은 겪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라고 했다. <아시아엔>은 문용식씨의 잃어버린 아버지 흔적 찾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아시아엔=문용식 ‘2차대전 후 옛소련 억류피해자’ 유족] 나는 2007년 초 일본 후생노동성에 아버지의 군이력 조회를 요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이에 후생노동성 조사계는 다시 신청인과 ‘남평순남’의 관계를 확인해 달라는 회신을 보내왔다.

일본의 행정 절차를 알 수 없어 애초 가족관계도를 그려 요청했는데 그곳 기관은 남평순남과의 관계를 명확히 입증할 서류를 요청한 것이다. 나는 행정기관에서 제적등본 과 주민등록등본을 발급받고 신분증을 복사해 일본에 다시 보냈다.

한편으론 ‘후생노동성 조사계에서 아버지 자료를 찾았다는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어 조금은 들뜬 기분으로 회신을 기다렸다.

보름 후 도착한 후생노동성의 회신은 “보관된 자료에서 남평순남의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일본정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시해 행정절차상 그렇게 요구한 것 뿐이었다.

타국 정부기관에서 무엇을 알아보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내 능력밖의 일이라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서신을 보내고 타국 수신처에서 회신이 없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나는 2008년말 일본 후생노동성에 다시 서신을 보내고 아버지의 구소련 억류기간 ‘미지급 봉급과 각종 수당, 미불 노동임금’에 대한 월별 지급액을 항목별로 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부친이 당한 피해는 전쟁 종료 후 발생한 것이고 2000년 이후 일본정부가 한국정부로 이관했던, 패망이전 생산한 ‘조선인 공탁금 자료’에 기록이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따라서 구소련 전쟁포로로 한국 귀환 시점까지 아버지가 ‘일본군인 신분을 유지했음’을 상기시키고 일본정부가 월별 지급액을 당시의 금액으로 산정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요청에 대해 일본정부는 반년이 되도록 어떤 소식도 주지 않았다. 외교부 주무과에서는 “일본정부에서 연락이 있었지만 ‘신청인이 요청한 자료가 일본정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을 해왔다”고 전했다.

나는 외교부 주무과에 다시 민원을 제기하면서 일본정부의 그 답변을 문서로 회신해달라고 요구하고 일본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따졌다. 또한 신속히 회신을 주지 않으면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시작하고 한국의 많은 국민들께 부당한 처사를 알리겠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1주일도 채 안돼 일본 후생노동성은 1947년부터 1953년 7월까지 자국 피해자에게 시행했던 ‘미복원자 급여법’ 법률문서와 ‘봉급산정표’를 나에게 보내왔다. 문서에는 전쟁포로 신분으로 있다 귀환 후 복원된 자국민에게 시행했던 억류기간 미지급 봉급액과 다양한 가족수당을 지급하는 내용이 법률로 구체화되어 있었다.

나는 일본정부가 보내온 문서를 삭풍회 모임에 나가 어르신들께 보여드렸다. 어르신들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일본에서 과거에 그러한 법률이 제정되어 시행되었던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하셨다. 일본은 이 법률 외에도 자국민을 위해 1988년 ‘평화기념사업 특별기금 등에 관한 법률’, 2010년 ‘전후억류자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자국 피해자에게만 지속적으로 보상해 왔다.

그러나 한국인 피해자는 일본 국적 군인으로 똑같은 피해를 당했어도 국적이 다르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보상을 외면해 왔다. 그런 면에선 한국정부도 마찬가지다. 일본외무성이 2001년 삭풍회에 보낸 답변서에 “한국인 억류문제는 국제법적으로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고 한 마당에 한국정부가 70년 동안 억류문제를 방치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한국정부의 처사는 일본의 야당만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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