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흔적찾기⑪] 일본 지도층에게 묻노니

“나의 부친 문순남(1924~1974, 文順南)은 일본제국주의 말기 조선 총독부 동원령에 의거 전장에 끌려가 중국 동북지역 만주 봉천에서 복무했다. 선친은 일본 패망과 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전쟁포로로 수용돼 옛 소련연방 카자흐스탄공화국에서 억류돼 3년 4개월간 강제노동을 하다 풀려났다. 해방의 기쁨도 누리지 못한 채 아버지는 영문도 모른 채 노역에 내몰리며 기약 없는 ‘지옥생활’을 한 것이다.” 

대구에서 노동 일을 하는 문용식(59)씨는 16살 때 여읜 아버지 문순남의 흔적을 찾아 20년 넘게 국내외를 헤매고 있다. 그는 “이게 나라냐, 이게 정부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문용식씨는 지난 1월20일 인문학 공동체 ‘수유너머’ 특강을 통해 “아버지의 자취를 찾는 것은 나라잃은 설움을 후손들은 겪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라고 했다. <아시아엔>은 문용식씨의 잃어버린 아버지 흔적 찾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아시아엔=문용식 ‘2차대전 후 옛소련 억류피해자’ 유족] 내년 2월이면 구소련에 억류된 채 참혹한 수용소 생활과 노역에 시달리며 모진 고생을 했던 한국인 조국귀환 70년이 된다.

그들은 돌아와서도 전후 미소 냉전체제에서 버림받고, 70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관계 당사국은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어떤 시도나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가장 큰 피해자인 한국정부도 외면하는 동안 일본과 러시아 정부는 한국인 억류문제를 애써 외면했다. 이제 피해자 대부분 타계하고 한국에는 생존자 몇 분만이 남아 있다. 피해 생존자나 유족들이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얼마나 더 세월을 보내야 하는가?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일본과 소련은 1956년 10월 국교수교를 위해 ‘전쟁 상태의 종결’ ‘외교 회복’ ‘전쟁 청구권의 상호 포기’를 골자로 협정을 체결하고 ‘일·소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소련 체류시 당한 부당한 피해에 대해서 일본인은 소련정부나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정부에 대해 피해배상 청구권을 요구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날 일본의회는 1947년부터 자국으로 돌아와 국적이 회복된 60여만 억류 피해자에게 ‘미복원자 급여법’을 제정하고 정부는 국채를 발행해 억류기간 지급하지 못한 ‘봉급’과 ‘부양가족 수당’ 등을 일괄 지급했다.

또한 일·소 공동선언 이후 일본의 ‘전국억류자협의회’가 자국 정치권에 줄곧 제기해 왔던 ‘억류기간 미불노동임금’ ‘정신적·육체적 피해에 대한 보상’ 청원과 관련해 정치권은 1988년 ‘평화기념사업특별기금 등에 관한 법률’, 2010년 ‘전후억류자 특별조치법’을 제정해 그들을 적지에 유기해야만 했던 국가의 미안한 마음을 지원과 보상으로 달래왔다.

결과적으로 일본국적을 유지한 피해자에 대해선 미불 봉급, 노동임금, 위로금, 각종 수당을 지급하며 자국 피해자들의 그동안 요구를 말끔히 해결했다. 그런데 일본의 정치권은 자국이 일으킨 전쟁에 동원되어 똑같은 피해를 당했어도 한국인 등 외국인 피해자에 대해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문제해결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 피해자들의 정당한 배상요구에 대해 일본 정부나 사법부 주장은 1956년 ‘일·소 공동선언’과 1965년 ‘한일협정’을 이유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 되었다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따지고 보면 ‘일·소 공동선언’도 양국끼리 체결한 것이지 한국인 억류 피해자들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일본의 정치권과 사법부에 묻고 싶다.

“식민지의 청년들이 왜 일본군대에 가야만 했는지 알기나 하나? 당신들의 조상은 아시아 지역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패권을 차지하고 싶은 열망에 결국 서구 열강과 충돌하며 전쟁을 일으켰다. 급기야 패전 위기에 몰리자 식민지 민족의 청년들을 위협해 강제 동원하고 전쟁터로 내몰았던 것이 밝혀진 진실 아닌가?

한국인 피해자들의 한 많은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이로 인해 수많은 식민지 청년들이 당신들 조상에 의해 전쟁에 나가 죽거나 참혹한 포로생활을 해야했다. 그렇다면 피해를 당한 그들이 이제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제법상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 주장을 외면하는 것이 정당하고 올바른 처사라고 보는가?”

일본은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고 이 회의에서 논의된 ‘육상전 법규와 관례에 대한 규칙’에 가입하고 1911년 11월 조약으로 비준했다.

법규의 주요 내용은 ‘교전의 정의와 선전포고’ ‘전투원 비전투원의 정의’ ‘포로, 부상병의 취급 규칙’ 등이 명시되어 있다.

또한 일본은 1953년 ‘제네바 협정’ 가입국으로서 협정 제6조, 제7조의 규정을 무시하고 1956년 과 1965년 시점에 체결한 ‘일·소 공동선언’ 과 ‘한일협정’을 이유로 한국인 피해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이것은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한 처사며 일본이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제6조의 규정은 “어떠한 특별 협정도 본 협약에서 정하는 포로의 지위에 불리한 영향을 미치거나 본 협약이 포로에게 부여하는 권리를 제한하여서는 아니 된다. 포로는 전기의 협정의 이익을 계속 향유한다”고 하였다.

또한 일본이 1946년 11월 공포한 자국헌법 98조 2항에 의하면 “일본국이 체결한 조약 및 확립된 국제법규는 이를 성실히 준수함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일본의 정치권이나 사법부가 한국피해자의 주장이 정말 잘못된 것인지 판단해 조속한 시일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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