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두테르테 마약전쟁 포기 선언이 진짜 노리는 것은?
[아시아엔=필리핀 현지 사업가, 문종구 <필리핀 바로알기> <실화소설 더미> 저자] 필리핀 국내외 인권단체들과 야당, 가톨릭 성직자 및 반정부 언론들은 지난 1년 동안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향해 끊임없이 비난을 쏟아냈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수행했던 마약전쟁으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가난한 서민들이었다. 두테르테 정부는 정작 부유하고 권력을 가진 마약왕들은 불과 몇명밖에 잡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가난한 서민들만 타깃으로 마약전쟁을 벌여오고 있으며 심각한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두테르테 대통령과 정부 인사들이 반박을 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샤부(Shabu, 필로폰)이다. 이것은 값싸고 저질인 화학제조마약인데 수백만명의 가난한 서민들을 중독시켜 왔다. 샤부에 중독된 마약범들은 뇌가 치명적으로 손상되어 치유가 안 될 뿐만 아니라 온갖 강력범죄의 온상이다. 그들이 거의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에 비해 부자들은 아편 등 고가 자연산마약을 주로 이용하고 그 숫자도 극소수다. 마약전쟁이 샤부와 관련된 가난한 마약범들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우리는 마약범들의 인권보다는 마약범들로부터 선량한 민간인들의 인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하고자 한다.”
그러던 두테르테 대통령이 지난 13일 마약전쟁에 반대하는 인권단체들과 야당, 가톨릭 성직자들 및 언론에 굴복했다.
“나는 더 이상 마약전쟁에 간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두테르테는 그동안 경찰이 주도했던 마약전쟁을 경찰과는 별개의 특별조직인 마약단속반에 일임했다. 필리핀의 경찰은 17만명, 마약단속반은 1000명이다.
마약전쟁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산술적으로 보자면 전투에 임하는 전력이 1/170로 대폭 줄어든 셈이니, 그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이제부터는 ‘마약전쟁’이 아니라 ‘마약단속’이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두테르테 취임 이후 지금까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두테르테와 각을 세워온 인권단체들과 성직자들, 야당과 언론의 기세가 등등해졌다. 그들은 두테르테를 마약전쟁에서 퇴각시키는데 성공했으며, 취임초기에 92%에 육박했던 국정수행 지지율을 최근 74%까지 끌어내리는 데도 성공했다.
물론 지난 주 여론조사 결과를 보았을 때 아직도 마약문제에 관한 한 88%의 필리핀 국민들이 두테르테의 마약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두테르테가 집권하기 전 필리핀 마약범들의 수는 약 300만명이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마약범들이 몇년 이내에 500만에서 10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고 멕시코처럼 마약지옥이 될 것이라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것을 반증이라도 하듯이 “10만명의 마약범들을 사살한 후 마닐라 만에 버려 물고기의 배를 살찌우겠다”고 공약한 두테르테가 당선되어 강력한 마약전쟁을 시작하자 한 달도 채 안 되어 무려 70만명의 마약범들이 자수했다.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 마약범들이 약 4천명,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자들에 의해 살해된 마약범들이 5천명에 달했다.
여기에서 ‘신원이 파악되지 않은 살해자’들의 정체에 대해 한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자경단’이라고 지칭하지만 선량하고 무고한 필리핀 국민들을 범죄인 취급하는 단어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 ‘마약조직 내에서의 꼬리 자르기 식 살인행위’라고 의심해볼 수 있다. 필리핀 국민들은 두테르테가 집권하기 전까지 17만명의 경찰들 중 1% 이상인 2천명 정도가 마약조직과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고 믿고 있으니, 마약범 경찰들이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 것을 우려하여 사복차림으로 또는 누군가를 사주하여 그들 조직 내 마약범들을 처치했을 가능성도 다분하다. 그들은 ‘자경단’이 아니라 범죄자들이다..
이제 경찰이 마약전쟁터에서 철수하고 나면 겨우 1천명의 마약단속 요원들이 여태껏 자수하거나 체포되지 않고 암약하는 200만명 이상의 마약범들을 단속해야 한다. 게다가 두테르테의 선언 이후 인권단체들과 성직자들, 야당 및 언론들은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인권을 존중하며 마약단속을 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과연 마약단속요원들만으로 효과적인 단속을 펼쳐 마약범들로부터 일반 국민들의 생명, 재산 그리고 인권을 지켜줄 수 있을까?
필리핀 국민들은 앞으로 마약조직이 화려하게 부활하여 예전처럼 대낮에도 주택가, 학교주변, 재래시장, 길거리에서 마약을 버젓이 사고파는 현장을 자주 보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대폭 줄어든 살인, 강도, 강간, 납치 등 강력사건들이 마약범들에 의해 다시 크게 증가할 것이란 우려다. 반두테르테 언론의 최전선에 서 있는 <래플러>(Rappler)조차도 두테르테가 집권했던 지난 1년 동안 모든 범죄율이 10% 가까이 하락한 것으로 보도했을 정도로 치안이 안정화되고 있는 중이었다.
두테르테는 경찰에게 마약전쟁 철수를 지시하면서 필리핀 국민들에게도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앞으로 당신들 눈앞에서 마약범들이 설치고 다녀도 경찰은 일절 간여하지 마라. 마약단속반이 해야 할 일이다. 마약범죄 피해자들은 나나 경찰에 하소연하지 말고 인권단체들, 가톨릭 신부들, 야당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시라.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이것은 두테르테식 정면돌파 방법이다. 한편 두테르테 정부가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시중에 떠돌고 있다. 소문이 전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첫번째 단계로, 앞으로 몇 달 이내에 마약범들에 의한 수많은 강력범죄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두번째 단계는, 점차 심각해지는 마약범죄와 치안불안에 대해 국민들은 여태까지 두테르테의 정부를 뒤흔들던 단체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던질 것이며, 마약전쟁을 다시 강력하게 추진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세 번째 단계는,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마약전쟁 및 치안확보를 위해 ‘혁명정부’를 구성하리라는 것이다.
혁명정부는 필리핀 헌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이다. 이 혁명정부는 야당의 견제를 거의 받지 않는, 계엄정부에 준하는 막대한 권한을 가지게 된다. 만일, 위 시나리오대로 상황이 전개되어 내년 중 두테르테가 ‘혁명정부’를 구성하게 되면 마약전쟁을 지금보다도 훨씬 더 수월하고 강력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마약전쟁 외에 두테르테 정부에게는 커다란 정치적 노림수도 있어 보인다. 그것은 바로 1년 반 뒤에 있을 선거와 연방제로의 헌법개정이다.
필리핀은 2019년 초에 총선과 지자체 선거가 동시에 치르게 된다. 혁명정부가 구성된다면 집권당이 대승할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리고 지금의 지방자치보다 훨씬 더 자치권을 부여하는 연방제로의 헌법개정은 현 두테르테 집권당의 숙원이다. 혁명정부의 지원을 받은 집권당 상·하원 의원들은 야당의 반발을 무력화시키고 수월하게 헌법을 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부 냉철한 필리핀 지식인들은 두테르테의 마약전쟁 포기선언을 두고, 2보 전진하기 위해 1보 후퇴한 전략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민들로부터 탁월한 법률가이자 영리한 정치인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두테르테가 구상하고 있는 필리핀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자못 흥미롭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