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두테르테의 ‘마약전쟁’ 현지 취재 “마약사범 인권보다 일반국민 생명이 훨씬 소중”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한국전쟁 때 군인을 파견해 많은 희생을 하고 원조도 아끼지 않았던 나라. 일본 다음으로 잘 살던 아시아 국가. 필리핀 얘기다. 1980년대 중반 마르코스 대통령의 장기독재에 맞서 민중혁명을 성공시켜 1987년 한국의 6월항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 필리핀. 수많은 교민이 이곳에 거주하며 사회·경제적인 접촉이 잦은 나라임에도 서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2016년 여름 이후 필리핀 관련 뉴스가 한국언론에 종종 등장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을 전후해 그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것과 관련해서다. 다바오 시장 출신인 두테르테 대통령은 선거공약으로 마약범 소탕과 마약범죄 척결을 제1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 경찰을 동원해 마약범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검거에 나섰다. 마약범이 반항하거나 도주할 경우 총기 사용을 허용하면서 수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때문에 필리핀 전역의 교도소는 마약사범으로 수용범위를 초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 취임 직후인 작년 7월 1일부터 최근까지 필리핀 마약단속청(PDEA)의 단속 과정에서 29명의 마약범죄 용의자가 죽은 반면, 경찰의 단속 과정에서는 3900명 이상이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체로 마약범 단속과정에서 숨진 사람은 적게는 3천명에서 많게는 1만명 이상이라고들 말한다. 이처럼 숫자가 크게 차이나는 것은 두테르테 정부의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람에 더해 마약조직에 의해 살해된 사람의 숫자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반응은 크게 엇갈린다. 필리핀 국민들은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외신 특히 국내의 관련보도는 부정적이거나 ‘양비론’에 가깝다. 왜 그럴까?
기자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대선 출마 훨씬 이전인 2015년 4월께 다바오시장인 그가 2016년 필리핀 대선에 출마할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당시 필리핀 한 교민의 전언이다.
“다바오 시장을 하는 두테르테란 사람이 대선에 출마할 수도 있다. 그는 20년 이상 시장을 하면서 다바오를 범죄 없는 도시로 만들어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마약범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도 베풀지 않는다. 그에게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은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언론인이자 방송인인 라몬 툴포다. 툴포는 당시 출마를 주저하는 두테르테에게 ‘당신이 나서지 않으면 필리핀은 영원히 범죄 특히 마약범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득하고 있다.”
두테르테는 작년 봄 대선에서 승리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리고 곧바로 마약과의 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고조됐다. 여기에 인권단체들도 가세했다.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인간의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두테르테는 마약단속을 빌미로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키고 있다.”
마약범 소탕과 관련한 보도 관점은 한국언론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특히 지난 9월 경찰이 비무장 10대 소년을 마약용의자로 지목해 사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 관련보도는 비판 일변도로 변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지난 10월 경찰의 마약 단속을 중단시키고 단속 권한을 마약단속청으로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한달만인 11월 중순 두테르테는 “마약범죄를 뿌리뽑기 위해서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밝혔다. 언제라도 경찰력을 동원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국민들한테 과연 지지를 얻고 있나? 두테르테는 왜 마약과의 전쟁에 대통령직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것인가? 기자는 이같은 궁금증을 풀기 위해 11월 17~20
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를 찾았다.
앞선 11월 12일, 기자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필리핀 사람들과 만났다. 대학로에선 매주 일요일 필리핀 장터가 열려 주한 필리핀인 수백명이 오고 간다. 이사벨이라는 30대 초반 여성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전쟁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
“필리핀 국민들은 마약 때문에 늘 불안한 생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어요. 때문에 경제발전도 더디죠.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여긴 마약 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는 사실이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사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어요.”
대학로에서 만난 2~3명의 필리핀 사람들도 이사벨과 비슷한 얘기를 했다. ‘마약단속 과정에서 숨지는 사람들 소식을 필리핀 현지에선 어떻게 받아들일까?’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다. 현장의 목소리를 확인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결론도 유보하자는 생각과 함께.
17일 밤 11시(현지시각) 도착한 마닐라공항은 한국의 늦여름 날씨다. 운전기사는 “평소의 마닐라는 교통난이 극심한데 금요일 밤늦은 시각이라 안 막혀 좋다”고 했다. 몇 마디 주고받다 곧바로 두테르테의 마약전쟁에 대해 물었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해 3남매를 두었다는 40대 중반의 그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아이들 걱정 안하고 산다. 딸들이 밤에 외출하면 늘 불안했는데 마약전쟁 이후 맘놓고 밤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됐다.”
“마약 단속한다면서 사람을 죽이는 건 잘못 아니냐? 당신 가족이 그렇게 된다면 어떻겠냐?”고 묻자 그는 무슨 한가한 질문 하느냐는 표정으로 말한다. “마약 하는 사람들한테 피해를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가족 중에 마약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가족들은 늘 불안에 떨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내 주변에도 마약 하다 죽은 사람이 있다. 이렇게 얘기하긴 좀 그렇지만 가족들이 그렇게 행복해 할 수 없더라.”
이튿날 만난 교민 문종구씨는 청소년 특히 소녀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청소년 야간통행을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두테르테 취임 후 지난 1년 5개월간 치안상황이 현저하게 좋아졌다. 두테르테가 시장 재직 시 다바오에서 시행했던 금연 정책, 술집 외 음주금지 정책, 그리고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은 청소년의 야간통행 금지 정책을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하고 있다. 여전히 전국에 많이 남아있는 마약복용자들에 의한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다. 7천개가 넘는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에서는 대학에 다니는 자녀들 대부분이 부모와 멀리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마약범죄조직은 가난한 청소년들을 마약 전달책 등 여러 범죄에 이용해왔다. 미성년자들은 검거돼도 처벌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마닐라 체류기간 중 만난 테드 콘탁토 변호사와 기업인 안토니오 에두아르도도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다음은 이들 두 현지인과 교민 문종구씨 그리고 기자가 나눈 얘기를 정리한 것이다.
“외국사람들이 보는 것과 우리가 직접 겪는 것은 차이가 많다. 우리나라에선 자산가들이 값싼 마약을 공급하고, 노동자들은 이것을 수시로 복용하면서 일을 한다. 하루 1달러만 있으면 사부라고 불리는 화공 마약을 먹고 신나게 일을 하니 고용주 입장에선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복용한 사람들은 몇 년이 못 가 몸이 상하고 정신도 이상해진다. 국제앰네스티와 같은 인권단체들은 이런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사업하는 입장에서 보면 값싼 임금에 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으니 당장은 좋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약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역대 정권은 이를 수수방관했다. 어떤 면에선 방조하면서 기득권층의 이익을 보장해준 측면도 있다. 두테르테는 이것을 바로 잡겠다고 나선 것이며 지금 시점에서 절반쯤 성공했다고 보면 된다.”
“작년 카지노 수익금이 100억원 이상 났는데, 관계부처 장관이 이것을 마약중독자들 치료에 쓰자고 대통령한테 건의했다고 한다. 두테르테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올해까진 치료약을 주지만, 못 고치면 내년엔 (스스로 목 매라고) 밧줄을 주겠다고 하시오’라면서 서명했다고 한다. 그만큼 두테르테 가슴과 머리 속엔 마약퇴치에 대한 불굴의 의지로 꽉 차있다고 보면 된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외교가에서 ‘동남아의 스트롱맨’으로 불린다. 그의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의지는 지난 11월 열린 ASEAN 정상회의 때 두테르테가 한 연설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흰 셔츠 차림으로 350여 외교관·학자·언론인 앞에 선 그는 “당신들이 얘기하는 문명화된 방법으로 (마약)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와라. 환영한다”고 했다. EU와 국제인권단체 등을 비판한 것이다. 원고 없는 10분간의 즉흥연설이었다.
기자는 다시금 궁금해졌다. “마약전쟁을 한다면서 총기로 사살을 하여 수천명이 숨졌는데, 국민들이 가만 있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 특히 당신들도 유족 입장이 돼보면 억울하고 분하지 않을까?” 앞서 두명의 필리핀 취재원-이들은 이 나라 최고의 지식과 부를 가진 상류층들이다-은 주저 없이 답을 한다.
“마약범의 인권도 물론 중요하다. 또 그들의 생명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하다. 그러면 그들이 마약에 중독돼 저지른 범죄에 무고한 시민이 죽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또 그들에 의해 온 나라의 치안이 불안하고 가족들은 평생 뒤치다꺼리만 한다면 과연 그것은 옳은 일인가?” “내가 만난 마약범 가족들은 정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약 하는 식구를 격리해주길 바란다. 그들 중 일부는 마약을 하느니 사라져 주길 바란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기자한테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하나 더 있었다. 왜 필리핀 주요언론들은 두테르테의 마약전쟁에 비판적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에 대해선 3대 일간지로 상류층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인콰이어러>지에 칼럼을 정기적으로 기고하는 라몬 툴포(70)의 말에 답이 담겨있다.
“필리핀은 사업가·종교인 등 상류층 10%가 나머지 90%를 지배하는 사회다. 이들 지배층은 대선 전부터 취임 이후까지 집요하게 두테르테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두테르테의 정책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두테르테는 마약 전쟁이 마무리되면 범죄와의 전쟁과 부패척결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다. 이는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니 기득권층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주요매체들이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하지만 따갈로그어로 발행되는 일부 신문들은 두테르테를 지지하기도 한다. 서민들은 영자신문을 읽지 못하니까 이 또한 자연스런 일 아닐까 싶다.”
3박 4일간 필리핀 체류 동안 만난 10명 가까운 취재원은 한결같이 두테르테의 마약과의 전쟁에 박수를 보냈다. 귀국 후 불쑥 겁이 났다. 혹시 편향되게 취재원을 만난 것은 아닐까? 마약범과 중독자 그리고 가족을 만나지 못했으니 분명히 한계는 있을 것이다.
기자는 11월 26일 다시 대학로로 나섰다. 이번엔 두테르테와 그의 마약전쟁을 노골적으로 비난하면서 호응해줄 것을 은근히 기다렸다. 하지만 버르나(45), 제럴드(42) 등 40대 남녀와 20대 노동자 토니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두테르테 정말 잘 하고 있어요. 마약범죄는 우리나라에서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해요.”
정말 훌륭한 기사라고 생각합니다 유엔 사무총장 및 인권단체 그리고 우리나라의 언론이 인권 운운 하며 한가한 소리나 하면서 두테르테를 비판하는걸 보면서 솔직히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투테르테가 사살이라는 초강경 정책을 택한 이유는 마약의 중독성과 부작용이 그만큼 인간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