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두테르테의 아직 끝나지 않은 ‘마약과의 전쟁’

근심에 잠겨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사진=AP/뉴시스>

[아시아엔=서의미 기자] “악마라도 된 기분이다.” ‘마약과의 전쟁’으로 인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의 한 숨이다. 마약 오남용에 가볍게 연루된 것 만으로도 경찰은 피의자에게 총기를 휘둘렀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으며 ‘마약과의 전쟁’은 전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자국 내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나친 폭력을 동원한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시달려온 두테르테 대통령은 결국 마약과의 전쟁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마약 단속 권한도 경찰에서 마약단속청(PDEA)으로 옮겼다. 약 1,800명의 PDEA 구성원들 대다수는 경찰과는 달리 강력한 공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할 때, 마약 단속 과정에서의 사망자 수 역시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음에도, 두테르테 정권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믿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과격함 때문에 ‘처벌자’라는 별명이 붙은 두테르테는 “내가 수백만 중독자들의 도살자라 행복하다”고 말해왔다. 죄 없는 아이들의 죽음을 ‘불가피한 피해’라고 묵살하면서. 2017년 7월 이래 ‘마약과의 전쟁’으로 사망한 2,100여명에 대해 경찰은 피치 못할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변명해 왔으며, 필리핀의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한 책임을 외면해 왔다.

휴먼라이트워치, 엠네스티, 국제마약감시기구, 유럽연합 등은 국제사회는 단속 과정에서 합법적인 절차 없이 수많은 인명이 목숨을 잃은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가운데 휴먼라이트워치는 필리핀 정부가 ‘인권에 재앙’을 야기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형사재판소도 지난 10월 “필리핀에서 자행된 학살이 시민사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면, 두테르테 정부에 대한 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국제사회로부터의 강도 높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마약과의 전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두테르테 대통령은 2016년 6월 20일 취임 이래 “필리핀의 독소와 같은 마약비즈니스를 근절시키기 위해 헌신하겠다”고 밝혀왔다. 두테르테의 반대세력이 그가 의도하는 바를 미처 이해하지 못했을 때, 필리핀 경찰은 마약 거래에 연관된 이들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리핀 사회는 만연한 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에 지쳐있었다. 필리핀의 범죄조직들도 오랜 세월 동안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마약 유통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거둬 왔다. 이들의 불법 행위들은 더 큰 부패를 낳았으며, 젊은 층에 ‘마약중독자’라는 꼬리표를 달아줬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대통령 후보 시절 두테르테는 “우리 젊은이들을 마약으로부터 지켜내겠다”고 강조해 지지를 얻기도 했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간 2005년. 한 조사에 따르면 필리핀 인구의 6%에 달하는 약 500만명이 ‘샤부’(각성제 메탐페타민을 뜻하는 필리핀 은어) 중독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례없는 수치에 유엔 마약 및 범죄 사무국이 우려를 표할 정도였다. 대통령이 된 두테르테는 마약오남용을 아딕(중독)이라 표현했고, 이 표현은 필리핀 국민들 사이에서도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인다.

인구 80%가 카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 마약 오남용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빠르게 확산 됐다. 일찍이 1970년대부터 필리핀 주교들은 마약중독자를 ‘가장 높은 형벌을 받아야 하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망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해왔다. 경찰의 수사를 지지하는 국민들도 개인 SNS에 마약 근절 포스터 등을 올리면서 “마약이 아닌 신에 취하라”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실제로 2017년 6월 여론조사기관 펄스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지율은 82%에 달했으며, 사람들은 무분별한 살상에 대해 걱정했지만 어느 정도 마약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고 믿었다.

선거 캠페인 당시 두테르테는 “히틀러는 300만 유태인을 학살했다. 필리핀엔 300만 마약중독자가 있다. 나는 이들을 학살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필리핀의 공식적인 통계는 얘기가 조금 다르다. 2015년 관계당국에 따르면 총 180만이 마약 오남용자이며, 그 중 약 86만이 샤부를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테르테 대통령 측이 근거로 내세운 숫자들이 과장된 수치였던 셈이다.

두테르테의 탄압에 반대하는 이들은 ‘마약과의 전쟁’이 빈민층 중독자들만을 주타겟으로 삼는다는 것에 항의한다. 상류층은 이 캠페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기에,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반대세력은 또한 “두테르테의 정책이 효과적이었다면 샤부의 가격이 오르고 시중에 풀리는 양도 줄어야 한다. 그러나 2016년 7월 샤부의 최소가격은 1,200페소(약 2만7천원)이었으나, 2017년 5월 1,000페소(약 2만2천원)로 내려가 여전히 거리에서 활개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두테르테가 벌인 전쟁이 실질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마약과의 전쟁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렬 <사진=AP/뉴시스>

‘마약과의 전쟁’을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대중은 여전히 두테르테를 지지했다. 2017년 8월 16일 수도 마닐라 북쪽에 위치한 불라칸 주에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진. 이 날은 전쟁이 벌어난 이래 가장 잔혹한 날로 기억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저녁에만 32명을 사살했다. 경찰은 희생자 유가족에 정당방위였음을 변명하기 바빴고, 이들의 비호자 또한 “샤부 복용자니까 죽였다. 샤부 유통 조직의 중역들은 늘 총기를 가지고 다닌다”라고 변론했다.

그러나 이틀 후, 17살 소년 카를로스 산토스의 사망 소식은 수천 시민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는 마약딜러로 오인 받아 사살됐다. 경찰은 이전처럼 이들의 행위가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사진 속 산토스는 총살당하기 직전 어떤 무기도 소지할 수 없이 체포된 상태였다.

마약 밀반입 혐의로 법정에 선 두테르테의 아들 파올로 두테르테(왼쪽)과 두테르테의 사위 마나세스 카르피오 <사진=AP/뉴시스>

2017년 9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두테르테의 아들 파올로 두테르테가 1억 2500만 달러(약 1,400억원) 규모의 각성제를 밀반입한 혐의로 법정에 선 것이다. 두테르테의 사위 마나세스 카르피오도 이에 가담한 혐의로 법정에 올랐다. 이 둘은 모든 의혹을 부인했으며, 두테르테도 “내 아들이 마약을 유통했다면, 서슴지 않고 죽였을 것”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결국 국내외 압박을 견디다 못한 두테르테는 이 프로젝트에 경찰력을 동원하는 것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정부는 마약에 취해 있는 필리핀을 깨우기 위해선 무엇이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두테르테는 마약 오남용자를 죽이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필리핀의 고질적인 병폐는 단순히 마약만이 문제가 아니다. 빈곤, 부패, 교육의 부족 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필리핀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악의 근원이 마약이라 판단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쉽고 빠른 길을 택했다.

이제 PDEA에만 의지해야 하는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금도 자신이 인권을 침해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선 확고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인권 침해? 그 이전에 중독자들이 인간이긴 했나? 인간, 그 존재의 정의는 무엇인가? 마약 오남용자들은 갱생조차 어렵다”고 밝혔다. 유럽연합이 필리핀에 갱생을 제안했을 때 두테르테는 “유럽연합은 우리가 건강한 해결책을 찾길 원한다. 이런 개xx들. 외국인들은 우리가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리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갱생프로그램은 도움이 된 적이 전혀 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애초 필리핀 내에서 시작된 이 전쟁은 그 소음이 외부로까지 퍼져나가고 말았다. 이전까지 두테르테 정부의 잔혹함을 고발한 국제사회는 필리핀 경찰력이 제외되면서 비난할 명분을 잃었다. 필리핀 내에서 두테르테는 여전히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필리핀 국민들도 “외부에서 너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소리를 내놓고 있다. 이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그 결과는 섣불리 예측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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