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인생 차민수⑨] 시련의 연속, 그러나 터널의 끝은 분명 나온다는 믿음으로

차민수 교수는 “아무리 높은 산도 오르려고 마음 먹는 사람한테는 정상을 내주기 마련”이라며 “도중에 포기하거나 웃음을 잃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걸 깨닫는데 많은 시간과 대가를 치러야 했다”고 말한다. 인수봉에 오른 차 교수.

[아시아엔=차민수 드라마 ‘올인’ 실제 주인공, 강원관광대 석좌교수, <블랙잭 이길 수 있다> 저자] 한국을 떠나 미국에 도착하였지만 돈 한푼이 없고 갈 때도 없었다. 다행히 차는 한대 있었기 때문에 한인타운에 주차하고 잠을 잘 수는 있었다. 겨울밤이라 무척이나 추웠다.

10달러면 담요 한장을 살 수 있고 덮고 자면 춥지 않았을 텐데, 그런 생각조차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참으로 바보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자주 들었다. 오렌지카운티에 사는 큰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집에 와 있으라는 것이었다. 추위에 떨고 주거지도 없던 차에 고맙다는 생각으로 큰누이 집으로 향했다.

큰누이는 부지런하며 정직하고 내 어머님 못지않게 근검하신 분이다. 직설적인 분이라 남에게 말을 좋게 돌려서할 줄은 모른다. 큰누나 집에 도착한 나는 밤이면 내가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가라는 생각에 밤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새우곤 하였다.

일주일쯤 되었을 때 하루는 큰누나가 뉴욕에 사는 의사 친구하고 의논해 보았는데 “이혼한 동생이 집에 같이 사는 것은 아이들 교육에 나쁘다고 하더라”고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나는 쥐구멍이 어디 있나 찾았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누나에게 “나도 LA에 나가야 재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엄마와 누나가 나에 대한 걱정을 하시기에 여기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리로 가야겠네요” 하고는 가방 두개를 차에 실었다.

저녁밥을 먹고 가라는 누나의 말에 점심을 늦게 먹었노라고 둘러댔다. “누나 잘 있어” 하며 손을 흔들며 웃으며 돌아서던 내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쭈르르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눈물은 LA에 도착하기까지 두 시간 동안이나 멈추지 않았다. 사람의 몸에 이렇게 많은 물이 있는 줄은 몰랐다. 이혼한 집사람에게 대한 섭섭한 생각과 문전박대하신 어머님에 대한 서러움과 누나에게 들은 말은 서러움으로 북받쳐 밀려오며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시 일어서기에 충분할 만큼 크나큰 자극이 되었다.

내기바둑 통해 18달러로 1600달러 모았지만

부자 집 막내아들로 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철없이 살아 온 나에게 닥친 첫 시련이었다. 세상은 내가 성공하기 전에는 부모도 형제도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기나긴 설움을 딛고 내가 철인(鐵人)이 되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혼연히 다시 재기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혼자서 다짐했다. 퇴근시간이라 2시간이 넘게 걸려서야 LA에 있는 ‘羅城 한국기원’에 도착하였다. 화장실에 가 세수를 하고 내 눈을 보니 드라큘라가 따로 없었다. 두시간 동안의 울음으로 눈이 충혈되어 새빨개져 있었다. 할 수 없이 선글라스를 끼고 기원에 들어갔다. 마침 천 사장이란 분이 내기바둑을 청한다. 20달러 내기바둑을 두게 되었는데 내 수중에는 18달러밖에 없었다. 무조건 첫판부터 이겨야 하는 것이다. 나는 5판을 내리 이겨 100달러를 갖게 되었다. 이 돈은 내가 재기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된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밤에 기원 주차장 안 차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다. 여럿이 의논한 후 미스터 리라는 친구가 내게 제의를 한다. “차 사범님, 오늘 별일 없으면 저희 아파트에나 가시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간 집에서 자기는 방을 쓰지 않고 응접실에서 잘 테니 나더러 방을 쓰라며 열쇠를 주었다. 이렇게 두달여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동안 모은 돈이 1600달러에 이르렀다. 5000달러를 모아야 스왓밋에서 자판을 놓고 행상이라도 시작할 텐데 마음만 급해졌다.

돈이 모일 만하면 차가 잡아먹고, 하여튼 5000달러의 돈은 쉽게 모이지가 않았다. 이때 칩 존슨 교수가 생각났다. 카지노에 가서 5000달러만 벌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첫날 게임을 하러 간 카지노에서 900달러를 잃었다. 나의 전 재산의 60%를 잃은 셈이다.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아 귀가해 20시간을 넘게 잤다. 자고 일어나 무엇을 잘못하였는지를 생각해 보았다. 내게는 △5년간 포커를 하지 않은 공백기간이 있었고, △자금의 부족으로 승부찬스를 놓치며 △정상적인 게임 운영을 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혼을 당하고는 자살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에게 평생 상처로 남을까봐 못했다. 그래서 굶어서라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소식(小食)을 하게 되었다.

밥 두 수저만 먹어도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소식을 하여도 사람은 죽지 않는다. 그렇게 밥을 먹고 다시 카지노에 갔으나 도무지 싸울 만한 패가 들어오지 않았다. 소리 소문도 없이 금쪽같은 550달러가 나가고 수중에 150달러 정도가 남았다. 이거라도 챙겨가지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좋은 패가 들어왔다. 내가 이겼다. 나에게도 운이 돌아온 것이다. 잃었던 돈을 다 찾고 1000달러를 더 이겼다. 이날부터 하루도 지지 않고 매일 1000달러를 이기게 되었다. 한달이 지나자 30000달러라는 거금을 거머쥐게 되었다.

이 때 한국에 두고 온 ‘그 사람’, 룸살롱에서 만난 그 사람이 너무나 생각이 났다. 10000달러만 남겨 놓고 5000달러는 경비로, 5000달러는 그 사람에게, 10000달러로는 선물을 잔뜩 샀다. 국으로 조용히 돌아왔다. 그러나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때 갔던 그 룸사롱을 못 찾으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날 길도 없었다. 죽고 싶게 괴롭고 외로울 때 내게 잘해준 그 사람이 너무나 보고 싶었다. 답답할 때면 술을 많이 먹고 와서 내게 술주정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참으로 착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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