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인생 차민수⑪] 천신만고 끝 재기 성공 ‘월드클래스 톱10’에
[아시아엔=차민수 드라마 ‘올인’ 실제주인공, 강원관광대 석좌교수, <블랙잭 이길 수 있다> 저자] 오랜 방황 끝에 1984년 LA 가데나에 소재하고 있는 엘도라도(현 허슬러)라는 카지노에서 포커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마침 총지배인으로 근무하던 친구가 예전에 게임을 같이하던 친한 사이였다.
나의 사정 이야기를 하고 카지노의 PROP(카지노가 고용한 플레이어)로 고용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는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자리 나는 대로 채용해 주겠다”고 했다. 2주 정도 지난 뒤 나는 곧바로 채용이 되었다. 당시 슈퍼-프랍의 연봉이 7만 달러 정도 되었다. 의사의 초봉과 같은 수준이었다. 카지노의 주인은 조지 안토니였다. 손님이 없을 때는 둘이서만 게임을 하는데 다른 이는 감히 끼지를 못한다.
그렇게 시작된 게임은 항상 나의 승리로 끝나곤 하였다. 상대가 약해서가 아니다. 욕심이 많다는 것을 역이용하여 약을 자꾸 올린다. 열을 잘 받는 그는 나에게 “지미 한마디만 더하면 해고야”라고 한다. .
프랍이란 하우스플레이어라고도 부르는데 LA 최고수준의 강자들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브레드 아바지안, 스탠리 골스틴, 핼, 람보, 아이 직, 해리스 등 Low-Ball 게임의 최고 대가들이었다. 웬만한 플레이어들은 그들과 경쟁에서 견뎌내지 못하고 바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취직이 된 것은 나에게는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하겠다. 불행한 것은 매일하는 게임에 강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고, 행운은 그들의 여러 가지 장점을 한꺼번에 한곳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브레드, 스탠리, 람보, 아이 직은 후에 정상의 반열에 나와 함께 오르게 된다. 거기서 내 한달 수입은 2만달러 정도. 월급으로는 생활이 되고 나머지는 저축을 해 1년도 안 되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게 되었다. LA 근교 쎄리토스라는 곳에 집도 사서 이사하게 되었다.
1985년 두번째 해에는 돈을 두배나 더 벌었다. 기본자금을 확보한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고 있었다. 당시 LA 최고플레이어 수입과 맞먹는 것이었다. 86년 플라톤에 100만 달러 짜리 저택을 사 이사도 하였다.
포커에 대해 어느 정도 자부심과 자만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때 텍사스홀뎀 게임과 7카드 스터드 게임이 캘리포니아 법을 통과해 새로 오픈하게 되었다. 자연히 라스베이거스의 세계최고 선수들이 물 좋은 LA로 몰려오게 되었다.
이때 칩 리즈(세계랭킹 1위), 도울 브론슨(2위), 잭 루이스(3위), 요시 나카노(4위), 쟈니 첸, 단 즈윈, 스튜이 헝거, 하미드 등 세계랭킹 10위권 선수들이 대거 몰려왔다.
바비 발드윈 등 10위권의 플레이어는 World-Class-Player라고 불렀다. 그들의 연간 수입은 100만 달러가 넘었다.
당시 나는 스스로 세계랭킹 200위권 정도에는 들어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겨루어 본 결과는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내가 2000등인지 20000등인지 조차도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세상에는 대단한 실력을 갖춘 프로가 아주 많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우물 안에서 하늘만 본 개구리가 하늘이 얼마나 넓은 줄을 몰랐던 것이다. 세계 200등은 된다고 자만했는데 세계최고의 벽은 참으로도 높았다.
당시 요시의 실력은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상대였다. 나하고는 레벨과 체급 자체가 다른 선수였다. 요시를 만난 후 나 자신에게 실망한 나머지 은퇴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들과 매일 게임을 한다는 것은 기름을 안고 불에 뛰어 들어가는 불나방 같은 자살행위나 다름 없었다. 그들과 매일 싸운다면 얼마 안 가 거지가 될 것이 뻔하였다. 예전처럼 이들과 게임을 하지 않고 피해 다닌다면 살아남을 수는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도망만 다니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포커 세계최고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자극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들도 어머니 뱃속에서 배워가지고 나오지는 않았을 터, 자신이 스스로 배우고 터득했을 게 아닌가? 나도 자질 면에서 그들에 못지 않다면 공부를 다시 더 한다면 성취할 수 있지 않겠나?
나는 포커와 서비스산업 관련 서적을 구입해 처음부터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이 웬일인가? 하나를 외우면 10개를 잊어 먹었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미움과 서러움 때문이었다. 어머님이 가방을 던지며 나를 내쫓지 않았다면, 아니 그 정반대로 따뜻이 맞아주셨다면 내가 다시 바로설 수 있었을까? 집사람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래 내가 잘 못한 것이야. 큰누나는 말을 돌려서 할 줄 모르니까 내게 그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을 거야. 그래 내가 세상을 다 잘못 산 거야. 다들 내가 잘 되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그지없는 평온이 나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드디어 새 디스크 하나가 내 머릿속에 만들어지고 그 속에 내가 원하던 공부를 주입할 수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나의 실력이 향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날이 수입이 늘어나는 게 그 증거였다. 당대 최고 고수들과 매일 게임을 하며 터득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공부하기를 반복하니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나를 “10위권 안에 있는 세계적인 선수”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꿈에도 그리던 톱10의 World-Class-Player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