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마지막 글’을 쓰면서 떠올린 사람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을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저 유명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글이다.
“나는 비즈니스 세상에서 성공의 끝을 보았다. 타인의 눈에 내 인생은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일터를 떠나면 내 삶에 즐거움은 많지 않다. 결국 부(富)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하나의 익숙한 ‘사실’일 뿐이었다. 지금 병들어 누워 과거 삶을 회상하는 이 순간, 나는 깨닫는다, 정말 자부심 가졌던 사회적 인정과 부는 결국 닥쳐올 죽음 앞에 희미해지고 의미 없어져 간다는 것을.
어둠 속 나는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신(神)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그 무엇이 부보다 더 중요하다면 예를 들어 인간관계, 아니면 예술, 또는 젊었을 때의 꿈을…. 끝없이 부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나 같은 비틀린 개인만을 남긴다. 신은 우리에게 부가 가져오는 환상이 아닌 만인이 가진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감각(senses)을 선사하였다. 내 인생을 통해 얻는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
그 기억들이야말로 너를 따라다니고, 너와 함께 하고, 지속할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다. 사랑은 수천 마일을 넘어설 수 있다. 생에 한계는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성취하고 싶은 높이를 성취해라. 이 모든 것이 너의 심장과 손에 달려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싼 침대가 무슨 침대일까? 병들어 누워있는 침대이다. 너는 네 차를 운전해줄 사람을 고용할 수 있고, 돈을 벌어줄 사람을 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너 대신 아파 줄 사람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잃어버린 물질적인 것들은 다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한번 잃어버리면 절대 되찾을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한 사람이 수술대에 들어가며 본인이 끝까지 읽지 않은 유일한 책을 깨닫는데 그 책은 바로 ‘건강한 삶’에 대한 책이다. 우리가 현재 삶의 어느 순간에 있던, 결국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삶이란 극(劇)의 커튼이 내려오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가족 간의 사랑을 소중히 하라. 배우자를 사랑하라. 친구들을 사랑하라. 너 자신에게 잘 대해 줘라. 타인에게 잘 대해 줘라.”
세계 굴지의 부자도 결국 가져가는 것은 ‘업’뿐이라고 했다. 그럼 우리가 받을 업보(業報)는 어떤 것일까? 업보는 자신이 행한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운명이다. 업보는 깨달은 존재인 부처와 윤회의 존재인 중생의 차이다. 중생들의 윤회하는 영역과 인간사회의 사회적·경제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이른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포괄적 도덕 법칙에서다.
<화엄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여러 가지 많은 꽃들이 피지만 그러나 이름 모를 꽃들도 대단히 많다. 이런 세계가 화엄세계다. 꼭 이름을 알리지 않고 하는 보시(布施), 상(相)을 드러내 않고 하는 보시가 최고의 보시이고 공덕(功德)이다. 괜히 이름이 드날려서 불리면 그 만큼 공덕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라.”
죽음을 앞두고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무상공덕(無相功德)이요, 둘은 상생의 선연(相生善緣)이며, 셋은 청정일념(淸淨一念)이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청정일념’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덕을 쌓고 선연을 맺었다 해도 평소에 수행이 없는 사람은 이것이 다 아상(我相)이나 착심(着心)으로 화(化)하기 쉽다. 그래서 우리가 가져갈 수 있는 최고의 보배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원리를 철저히 깨달아 최후의 일념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