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명 덕권, 법호 덕산···내 이름 돌아보니 결론은 ‘후덕재물’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나의 법명(法名)은 ‘덕권(德權)’, 법호(法號)는 ‘덕산(德山)’이다. 그런 나에게 한 가지 화두(話頭)가 생겼다. 왜 원불교의 종법사(宗法師)님께서 법명과 법호에 큰 덕 자를 거듭 내리셨을까 하는 것이다. 몇십년을 두고 생각해 본 결과가 전생에 내가 덕을 쌓지 못했기 때문에 이생에 이렇게 힘든 생활을 해 왔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덕(厚德)하고 재물도 넉넉한 부자가 되라고 종법사님께서 그리 법명과 법호를 내려주신 것 같다. 고려의 태조 왕건은 넓은 포용력을 사용하여 무력을 쓰지 않고도 세력을 넓혀가는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왕건이 세상을 떠난 후 약 40년 뒤에 최승로(崔承老, 927~989)는 고려 성종에게 ‘시무 28조’를 올리며 왕건을 이렇게 평했다.
“어진 사람을 좋아하고 착한 일 하기를 좋아했다. 자기 생각을 미루고 남의 생각을 존중하며, 공손하고 검소하며 예의를 지켰다. 모두 천성에서 우러난 것이었다. 민간에서 자라 어렵고 험한 일을 두루 겪었기에 사람들의 참모습과 거짓 모습을 모두 알아보았고, 일의 성패도 내다보았다. 그리고 재주 있는 사람을 버리지 않았고, 아랫사람이 가진 힘을 모두 쏟을 수 있게 도왔으며, 어진 사람을 취할 때와 간사한 사람을 쫓을 때에 주저함이 없었다.”
왕건은 오랜 라이벌인 견훤(甄萱, 867~936)을 아버지와 같이 지극히 존경하는 뜻에서 ‘상보(尙父·尙甫)’라고 부르며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리고 신라의 경순왕도 경주의 사심관으로 계속 경주를 다스리게 하고는 그의 조카딸을 부인으로 맞아들여 장인 대접을 하는 등 화해와 통합에 주력했다.
앞서 926년 발해(渤海)가 멸망하자, 그 유민들을 받아들여 최고의 대우를 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실로 삼국시대 이래 한민족의 여러 갈래가 고려라는 큰 틀 안으로 융합할 수 있었다. 왕건은 모두가 자신만을 내세우는 세상에서 남을 돌아볼 줄 알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 속에서 평화와 타협의 비전을 찾아낸 것이다.
후덕재물(厚德載物)이라는 말은 <주역> ‘곤괘’(坤卦) 상전에 나온다. “덕이 두터워서 사물을 싣는다”는 뜻으로, 원문은 ‘地勢坤 君子以 厚德載物’이다. 넓은 땅에 저렇게 두텁게 흙이 쌓여 있듯이 군자는 자신의 덕을 깊고 넓게 쌓아서, 만물을 자애롭게 이끌어 나가라는 뜻이다.
인간은 욕심이 많은 존재다. 재물, 권력, 명예 등 끝이 없다. 금도(襟度)를 망각하면 폐해가 크다. 예를 들어 <명심보감>에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재물을 쌓으면 반드시 크게 망한다”(甚贓必甚亡)고 경책하고 있다.
<대학>에도 “군자는 먼저 덕을 쌓아야 한다. 덕이 있으면 이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으면 땅이 있고, 땅이 있으면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씀씀이가 있다”(君子先愼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고 했다.
도가(道家)의 자허원군(紫虛元君)은 <성유심문>(誠諭心文)에서 “재앙은 많이 탐내는 데서 생기고(禍生於多貧), 남을 해치면 스스로를 잃으며(損人終自失), 세력에 의지하면 재앙이 서로 따른다(依勢禍相隨)”고 했다. 또 진(秦)나라 말기 황석공이 장량(張良)에게 주었다는 병서 <소서>(素書)에는 “귀하게 된 다음에 미천했던 때를 잊은 자는 오래가지 못한다”(貴而忘賤者 不久)고 충고하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중국 섬서성 부평현에 있는 시진평의 아버지 집에도 ‘후덕재물’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고, 그의 모교인 청화대 정문에도 역시 ‘후덕재물’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과묵하고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시진핑의 처세술 역시 이 ‘후덕재물’에서 나온 것이지 않나 싶다.
운(運)을 바꿀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덕을 쌓는 것이라고 한다. 재물을 쌓기 전에 덕을 쌓고, 두터운 덕 위에 재물을 쌓아야 재물도 빛나고, 덕이 앞서야 재물이 착하게 쓰인다.
우리나라는 내 젊은 시절에 비하면 너무나도 살기가 좋은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더 각박하고 더 살기 어렵다고 한다. 인간관계는 더 험악해지고, 의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배신과 음모와 협잡, 횡령과 사기가 더 판을 치고 있다. 바로 덕이 앞서지 못하는 병통에서 비롯되는 현상일 것이다.
나라에서도 도덕을 경시하고 경제성장만 중시하면, 범죄는 늘어나고, 잘 살수록 부패하며 불평과 불만이 전사회적으로 만연되는 역효과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먼저 덕을 쌓은 연후에 재물을 모으라고 가르쳐야 한다. 물질이 개벽(開闢)되면 정신도 개벽되어야 한다. 물질과 정신은 동시에 발전되어야 하며, 어느 것 하나라도 소홀할 수 없다.
교만(驕慢)이 많으면 사람을 잃고, 사람을 잃으면 세상을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