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보궁’···너그러운 마음으로 궁함을 돕는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참전계경>(參佺戒經) ‘제271사(事)’에 ‘보궁’(保窮)이란 말이 나온다. 인간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궁함을 돕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뜻을 이루지 못했을 때는 스스로의 궁함을 돕고, 뜻을 이루면 남의 궁함을 도와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이 너그럽지 못하면 자신의 어려움도 도울 수 없고, 남의 어려움도 도울 수 없다.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기 가슴 속에 사랑의 에너지가 많은데, 그 에너지를 쓰지 못하고 가슴에 가두고만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갖고 있는 순수한 사랑의 에너지를 자신에게 보내고, 남과 함께 나눌 때,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기쁨의 샘물, 행복의 샘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이 내가 너그러우면 즐거워하고 내가 너그럽지 않으면 근심스러워 한다. 그 ‘너그럽다’는 말은 아량(雅量)이나 도량(度量), 또는 관대(寬大)라는 한자어의 의미를 포괄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너그럽다’는 말을 가운데 두고 좌우로 두 가지 말이 있다. 오른쪽에는 ‘옹졸하다’와 ‘좀스럽다’는 말이고, 왼쪽에는 ‘관대하다’와 ‘덕성스럽다’ 그리고 ‘후덕하다’와 ‘서글서글하다’ 같은 말들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일이다. 남방의 강국인 초(楚)나라 장왕이 전투에 승리하여 문무백관을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다. 모두 왁자지껄하며 즐겁게 노닐던 중 갑자기 불이 꺼졌다. 그 때 왕의 애첩이 비명을 질렀다. “폐하! 누군가가 제 몸을 더듬으며 희롱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의 갓끈을 잡아 뜯었으니, 불을 켜고 갓끈이 없는 사람을 찾는다면 누가 그런 불경한 짓을 했는지 밝힐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왕의 반응은 전혀 의외였다. “불을 켜지 마라. 이 자리는 임금과 신하가 격의 없이 즐기는 곳이다. 모두 갓끈을 떼고 즐기도록 하라”고 명했다. 애첩을 희롱한 신하는 왕의 관대한 조치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몇년 후, 서방의 강대국인 진(秦)나라와의 전쟁에서 초나라가 대패하여 장왕은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때 장웅이라는 장수가 죽기를 무릅쓰고 싸워 장왕을 구했을 뿐 아니라 전세를 역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초나라는 명실상부한 패자(覇者)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전투가 끝난 후 장왕은 장웅을 불러 물었다. “내가 평소에 그대를 특별히 우대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는가?” 장웅이 답했다. “저는 이미 3년 전에 죽은 목숨입니다. 연회에서 갓끈을 뜯은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때 폐하의 온정으로 살아났으니, 목숨을 바쳐 그에 보답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갓끈을 끊은 연회라 하여 절영회(絶纓會)라 불리는 초나라 장왕의 이 일화는 아랫사람을 부리는 도리를 잘 보여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서 당연히 범인을 잡아 엄히 벌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장왕은 넓은 도량으로 덕을 베풀어 부하 장수의 작은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그가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할 기회를 줬다.

‘수자청즉무어 인지찰즉무도’(水至淸則無漁 人至察則無徒)라는 말이 있다. 물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도 너무 따지면 친구가 없다는 말이다. 세상에 완벽한 존재는 없다. 때로는 알고 넘어가는 것도 보약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나 다 나름의 결함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또한 사람이 행한 모든 일에는 흠이 있기 마련이다.

결함만 가지고 본다면 쓸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고, 취할 수 있는 행동이 거의 없다. 지도자는 사람과 일을 너무 세세히 살피지 않는 것이 좋다. 크게 봐서 결함보다도 쓰임새가 더 크다면 그 결함은 보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두터운 덕이 있으면 작은 절개를 따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이 크게 잘한 일이 있으면 작은 허물들을 탓하지 않는다. 사람 치고 작은 단점을 지니지 않은 사람이 없다. 따라서 그 사람의 대체적인 행위가 올바르다면 비록 작은 과실들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허물로 삼지 않는 너그러움이 있어야 한다.

물은 맑아야 한다. 그러나 물이 맑아서 물고기 먹이가 없고, 적을 피해 숨을 곳이 없으면 물고기는 살지 못한다. 사람이 자기 주변을 살펴 깨끗이 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너무 주변을 살펴 가까운 사람의 작은 실수나 허물도 용납하지 못하면 아마 우리를 가까이 하려는 사람이 없어지고 만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 깨끗한 사람도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할 때가 있다. 그것을 이해하고 관용하고 덮어주지 않고 인정사정 없이 원리원칙만 앞세워 단죄(斷罪)하면 결국 사람들은 우리에게 등을 돌리게 마련이다. 사람은 까다로운 사람보다 너그러운 사람이 인복(人福)이 많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사람들은 너그럽지 못하고 자칫 증애(憎愛)에 끌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어떻게 증애에 끌리지 아니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첫째, 매양 한 생각을 잘 돌리는 것이다.

가령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거든 다만 생각 없이 같이 미워하지 말고, 먼저 그 원인을 생각해 미움받을 일이 나에게 있었거든 고치기에 힘을 쓰는 것이다. 그러한 일이 없으면 전세(前世)에 밀린 업(業)으로 알고 안심하고 받는 것이다.

둘째, 누구에게도 미움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저 사람이 나를 미워하면 잠시라도 나의 마음이 좋지 못한 것을 미루어 나는 누구에게든지 미움을 주지 않으리라고 결심을 하는 것이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거든 풀기에 노력하고, 만일 정당하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랑을 빚으로 알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너그러운 사람, ‘보궁’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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