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적폐다”···간첩은 안 잡고 ‘개념배우’ 나체 합성사진 올리는 국정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아랍어로 “야 아쿠야, 인타 하비비”는 “내 형제여, 넌 내 사랑이야”라는 뜻이라고 한다. 남자끼리 서로 부를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아랍사람들은 거리에서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도 아랍인은 곧잘 ‘형제’라 부르며 살갑게 대한다. 해질 무렵 이집트의 카이로나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같은 아랍 도시를 이방인이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따알라, 오오드(이리 와서 앉으라)”라고 손짓하는 즉석 식사초대를 어렵지 않게 받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인은 예외다. 다른 아랍국가 사람들과 달리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악수하자며 내민 손이 무안해질 만큼 냉랭하다. 한 마디 건네면 두세 마디 더하며 화답하는 게 통상적인 아랍 화법인데, 팔레스타인인은 사교용 수다를 사족(蛇足)으로 취급한다.

왜 팔레스타인들이 ‘차가운 아랍인’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거의 관련이 없는 동아시아인조차 이스라엘 간첩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낯선 사람과는 웬만해선 말을 섞지 않으려는 습관이 몸에 뱄던 것이다. 이들 사이에 알려진 이스라엘 간첩의 유형은 △그럴싸한 회사에 다니며 △편하게 사람을 만나고, △날씨나 음식같이 민감하지 않은 주제를 꺼내며 △천천히 관계를 맺는 ‘친근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첩보·공작 대상국에 평범하게 자리잡고 의심 가는 행동을 하지 않으며 지내는 요원을 ‘슬리퍼 에이전트’(sleeper agent, 잠자는 첩보원)라고 한다. 이들은 오랜 기간 동면하는 곰처럼 가만히 있다가 어느 날 임무가 주어지면 ‘친근한 사람’에서 ‘수상한 사람’으로 돌변해 움직인다. 임무의 종류는 암살, 시위주동 등 다양하다.

지난 번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남부 아파트촌에서 북한 남성 리정철이 긴급체포된 것을 본 적이 있다. 김정남이 쿠알라룸푸르공항에서 암살된 지 나흘 만에 사건용의 선상에 북한국적인 사람이 공식적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현지 수사당국이 조사해보니 리정철은 이번 사건을 앞두고 평양에서 급파된 간첩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한참 전인 2013년 말레이시아에 입국해 현지 업체 직원으로 취직하고 떳떳한 신분으로 있던 외국인 근로자였다. 그렇게 그가 지난 4년간 얌전하게 지냈던 건 김정남이 살해되던 바로 그 순간을 위해서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동면에서 깨어날 타이밍을 기다리는 북한의 또 다른 ‘슬리퍼 에이전트’에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체포된 간첩 42%가 탈북자로 위장해 잠입한 간첩이라고 한다. 2013년 이후 10여년간 총 49명의 북한간첩이 구속됐고, 이중 21명(42%)이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임무는 △고 황장엽 전 비서와 같은 특정인사 암살 △국가기밀 탐지 △탈북자의 북한 이송·재입북 유도, 위장귀순 후 지령대기 △탈북자 동향 파악 △재중 국정원 직원 파악 △남한침투 공작원과의 연계 △위폐전환 △재미교포 유인 △무장간첩 소재파악 등이었다.

이런 고정간첩이나 잠자는 첩보원이 겨우 이 정도일까? 간첩 잡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고 우리나라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시절 문화·연예계 내 정부 비판세력 퇴출활동을 벌인 것이 들통 나 세상이 온통 떠들썩하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 조사에선 당시 청와대가 좌파 성향 감독들의 이념 편향적 영화 제작 실태 및 좌편향 방송 PD 주요 제작 활동 실태 등을 파악하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그것뿐이 아니다. 배우 문성근(64)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자신과 배우 김여진씨의 나체 합성사진을 유포한 데 대해 “세계적 개망신”이라며 비판했다.

문성근씨는 “합성사진을 국정원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극우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서 굉장히 저급한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그런 일이 국가기관 결제를 받아서 했다고 하니까 어이없다”면서 “아마 이건 세계적인 개망신 뉴스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김여진씨도 SNS에 “나체 합성사진 유포로 인해 많은 각오를 했었고, 실제로 괜찮게 지냈다. 덕분에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며 “그래도 이건 예상도 각오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 추함의 끝이 어딘지 똑바로 눈 뜨고 보고 있기가 힘들다”는 글을 게재했다.

김씨는 “그게 그냥 어떤 천박한 사람들이 킬킬대며 만든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의 작품이라니. 지난 일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지금의 저는 괜찮지 않다”고 말한다.

현재 국정원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로 지난 정부 국정원 문제들을 파헤치기 위해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댓글 조작사건 등을 비롯해 국정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을 재조사 중이다.

과거 이 나라의 적폐가 이들뿐이겠는가? 지난해 촛불혁명으로 어느 때보다 과거 정권을 통해 쌓인 적폐를 걷어내 달라는 사회의 요구가 많다. 그러나 보수야당을 중심으로 적폐청산을 시작도 하기 전에 견제구가 나오는 이유는 적폐청산 행보가 결국 과거 집권세력이었던 자신들을 향한 칼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특정세력을 벌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법·제도를 만들고 각 사회기관 등에 공정과 정의를 관행화하여 사회문화로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이라는 말한다. 그는 “앞으로 여러 정권을 통해서 이 노력이 계속되어서 그것이 하나의 제도화되고 관행화되어 문화로까지 발전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과거의 적폐는 청산해야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 있는 잠자는 첩보원은 얼마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국정원이 간첩은 잡지 않고, 나체 합성사진이나 만들어 유포하는 한심한 작태를 보였다. 적폐청산을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적폐는 단연코 청산해야 나라가 반듯하게 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