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눈물’ 닦아줄 ‘착한 갑’을 기다리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요즘 유명 인사들의 ‘갑질 논란’이 한창이다. 이들이 ‘갑질’을 하면서 당하는 ‘을의 눈물’을 왜 모르는 것일까?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다. 변하는 이치에 따라 언젠가는 갑이 을이 될 수도 있고, 을이 갑이 될 수도 있다. 갑(甲)과 을(乙)은 계약서에 자주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갑은 돈을 주고 일을 시키는 사람(또는 회사)’이고, ‘을은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사람(또는 회사)’이다.
그런데 ‘돈을 가진 사람’의 수는 적고, ‘돈을 받고 일해 줄 사람’은 많기에 당연하게 불공평한 상황이 만들어 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거래처가 ‘갑’이 되고, 납품업체는 ‘을’이 된다. 그런데 ‘갑’이 어떤 이유로 납품업체를 바꿔버리면 ‘을’의 매출에 타격을 주게 된다. 그래서 ‘을’은 ‘갑’에게 눈치 보며, ‘갑’이 불공정한 요구를 하더라도 들어줘야 하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갑질이 요즘 들어 도를 넘고 있다. ‘갑질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갑’은 소수의 이익을 주장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불평등과 차별을 합리화하거나 당연시하고 있다.
최근 ‘호식이 두 마리 치킨’, ‘미스터 피자’ ‘총각네 야채가게’ 등 프렌차이즈 업계와 종근당 대표 그리고 박찬주 대장 부인의 갑질과 함께 사례도 다양하기 이를 데 없고 한도 끝도 없다.
‘국회의원의 대리기사 폭행사건’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 ‘부천 백화점 모녀 갑 질 사례’ ‘인천시의회 의장의 횡포’ ‘포스코 상무의 라면사건’ ‘블랙야크 회장의 공항직원 폭행사건’ 등등···.
갑의 횡포에 대해 국민 100명중 95명이 심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중 가장 심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은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재벌 등인 것으로 보아 갑의 횡포는 권력 지향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고용주와 직장상사, 거래처와 고객으로부터 절반이 넘게 횡포를 당했다고 답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에 따르면 “내가 누군지 알아?”가 과거엔 통했지만 앞으로는 망신을 당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몇 해 전에 한 전경이 교통법규를 위반한 관용차를 적발하여 딱지를 끊으려 하자 수행비서가 얼른 막아서며 ‘차관님의 차’라고 했다. 그랬더니 “차관님이면 다른 분 보다 모범을 보이셔야지요”라며 소신대로 딱지를 끊었다.
재산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양 특권의식에 빠지기 쉬워 갑질이 일어난다. 그러나 직위와 명성, 재산과 학력 등을 제대로 갖춘 정통 상류층들은 물의를 일으키면 오히려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아무 때나 신분을 노출하려 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지 알아?”보다는 오히려 겸손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경향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진짜 갑’은 스스로 자신을 알리지 않아도 남이 먼저 알아보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나 ‘가짜 갑’은 스스로 자신을 알리지 않으면 남이 알아주지 않기 때문에 목청을 높여 내가 누군지를 알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편 을의 입장에서 ‘갑질’에 대해 손가락질 하기는 쉽다. 그러나 실상 자신이 ‘갑’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앉는다면, “나는 어떻게 처신했을까?” 라고 자문해 보면 좋겠다. 아마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지 않을까 싶다.
인간관계가 힘의 논리와 능력, 우열의 관점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 것에 비정함을 느낀다. 그러나 우주의 진리는 돌고 도는 것이다. 그걸 강자와 약자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물론 강자는 갑이고 약자는 을이다. 무슨 일이든 이기는 것은 강(强)이고, 지는 것은 약(弱)이다. 강자는 약자로 인하여 강의 목적을 달성하고, 약자는 강자로 인하여 강을 얻는다.
따라서 강자는 약자에게 강을 베풀 때에 ‘자리이타(自利利他)’ 법을 써서 약자를 강자로 이끄는 것이 영원한 강자가 되는 길이다. 물론 약자도 강자를 선도자로 삼고 천신만고가 있을지라도 약자의 자리에서 강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을의 눈물’을 닦아주는 강자의 길이고 약자도 갑이 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