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수 시인의 뜨락] 분단 72년만에 다시 떠올리는 문익환의 ‘평양 가는 기차표’

문익환 목사의 시비 <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한빛고 전 교장] 문익환(1918~1994)은 만주북간도 용정출생으로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로 통일운동과 사회운동에 앞장섰다.

한반도가 해방된 지 어언 72 년, 해방은 곧바로 남북분단으로 이어졌다. 미소냉전의 결과가 한반도의 허리를 갈라놓았고 남과 북의 정치꾼들이 거기에 편승하여 각 지역에 정부를 세움으로써 남북 대치가 시작된 것이다.

몇 년 지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형제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다 1953년 7월27일, 종전이 아닌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제법상 한반도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분쟁지역이다.

분단은 양 지역 모두에게 다방면에 걸쳐 말할 수 없이 큰 후유증을 남겼다. 부모형제가 이산가족으로 살아야 하였고 양쪽에서 군비경쟁으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 무엇보다도 더 큰 후유증은 남북의 독재정권들이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하여 분단을 이용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반동분자 미제간첩, 불순분자 빨갱이로 몰아 감금, 폭행, 투옥하거나 심지어는 처형하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 문익환은 “서울역이나 부산역 광주역에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요구”한다. 그리고 그 염원을 이루기 위해 그는 단독으로 평양으로 날아가 김일성 주석을 만나 통일에 대한 회담을 하게 된다. “걸어서라도, 헤엄쳐서라도, 넋이 되어 서라도 갈 것이오” 아마 그는 저 세상에서 서울과 평양을 동시에 살고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한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평화협정체결’을 입에 올렸다. 김대중, 노무현도 발설하지 못한 그 말을 문대통령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현 정권이 촛불혁명에서 탄생한 정부이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비국가세력(국가세력을 제외한 세력)만이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주체임을 똑똑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보여진다.

평양 가는 기차표

​나는 올해 안으로 평양에 갈 것이오

기어코 가고야 말겠소

이건 잠꼬대가 아니오, 농담이 아니오

이건 진담이오

​(뱃속 편한 소리하고 있구만

누가 당신을 평양에 가게 해준답디까

국가 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객쩍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소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오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오

이 땅에서 오늘 우리가 역사를 산다는 것은

온 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오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오

서울역이나 부산역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요구하는 것이오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렇소 난 머리가 돌았소 돌아도 한참 돌았소이다.

머리가 돌지 않고서야

어찌 이 잔혹한 역사를 산다고 할 것이오

평양 가는 기차표를 팔지 않겠다면

나는 걸어서라도 갈 것이오

임진강에 몸을 던져 헤엄쳐서라도 갈 것이오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으면 어떡하죠

그야 하는 수 없지요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이 되어 가는 거죠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나는 평양으로 갈 것이오

(1989년 첫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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