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정부의 ‘동북공정’과 요하문명의 실체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6월 26일 ‘덕화아카데미’는 요하문명(遼河文明) 권위자인 항공대 우실하 교수를 초청하여 ‘요하문명의 발견과 동북아 상고사’ 강연회를 가졌다.
요하문명은 우리 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으로서 현재 내몽골 우하량, 적봉을 비롯한 요하지역에서 큰 세력을 형성하며 살았던 우리 민족의 옛터전이다. 중국의 황허문명보다 3000~4000년 더 오래된 역사이지만 요하문명은 안타깝게도 현재 중국의 역사로 뒤바뀌어 가고 있다.
중국은 지금 우리 민족 동이족(東夷族)의 수장 치우(蚩尤)를 한족(漢族)의 황제(黃帝)로 탈바꿈시키더니 요하문명마저도 중국역사에 편입시키고 왜곡하여 기세 등등 동북공정을 펼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는 요하문명을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고고학계에서조차 크게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우실하 교수의 열강을 몇 대목 살펴본다.
중국의 동북공정의 요체는 무엇일까?
첫째, ‘요하문명의 핵심’ 내용인 중화문명의 서광이 요하에서 비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 중국은 최초의 문명서광을 장강유역의 하모도문화로 보았다.
둘째, ‘상주북토(商周北土)’는 요하문명 지역으로 상나라, 주나라 시대부터 중원 왕조에 속해 있는 북쪽의 영토였으며, 이 시대부터 이미 북방의 모든 소수 민족은 중화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동북공정의 뼈대다.
셋째, ‘화하일통(華夏一通)’은 진나라, 한나라 시대를 기점으로 만주 일대가 중원 왕조의 판도 안에 들어왔고, 이 지역의 모든 민족은 화하족(中華民族)으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 고구려와 수나라가 싸우고, 고구려와 당나라가 싸운 것은 전쟁이 아니라 내전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은 독립국가끼리 하는 것이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싸운 것은 전쟁이 아니라 내전이라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고구려를 말할 때 항상 ‘동북지방정권 고구려’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넷째, ‘거란왕조(契丹王朝)’와 ‘만족굴기(滿族屈起)’다.
거란과 만주족 청나라의 역사가 모두 중화의 역사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인들은 칭기즈칸(1162~1227)을 중국인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벌이는 역사공정은 기본적으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재 중국 국경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신화시절부터 중화민족이고, 그들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라는 것이다.
이런 역사관을 한국인이나 몽골 인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럼 진짜 요하문명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그러나 명확한 것은 요서와 요동을 포함한 만주지역은 중원과 전혀 다른 문명권이었다는 사실이다. 동북아시아 지형도를 보면 신석기시대 4대 문화가 왜 만주와 한반도로 전파되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새로운 문화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를 통해 몽골초원을 거쳐 전파되었다. 몽골초원에서 대흥안령 남단을 거쳐 요서·요동지역으로 넓게 이어진 초원길을 두고, 사막과 강과 산맥을 넘어서 중원지역으로 내려갈 이유가 없다. 북방 유목민족은 광대한 초원을 동서로 넘나들며 동·서문화로 뒤섞였다. 바로 그 동쪽 끝에 만주와 한반도가 있다.
요하문명에서 발견한 유물과 유적 가운데 중원에서 하나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 있다. 빗살무늬토기, 피라미드식 적석총, 치(雉)를 갖춘 석성, 비파형동검 등이다. 이는 요하문명을 주도한 세력이 중원세력과 다른 집단이며, 주맥(主脈)이 만주와 한반도, 일본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문화권은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4대문화인 △빗살무늬토기문화 △거석문화 △채도문화 △세석기문화를 모두 수용하고 융합했다. 요하문명 세력들이 앞선 새로운 문명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문화를 흡수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렇게 신석기시대 4대문화권이 중첩되고 융합되는 곳은 세계적으로 이 지역이 유일하다.
그렇다고 요하문명 세력들이 전부 한반도로 내려왔다고 볼 수는 없다. 당연히 중원으로도 들어갔을 것이다. 요하문명을 놓고 “중국 것이다, 한국 것이다”라고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역사란 흐름과 교류의 역사다”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요하문명이 중국 땅에 있기 때문에 중국이 요하문명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데, 이는 ‘역사 민족주의’라고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우실하 교수는 “중국은 자국 문명의 기원을 완전히 새로 쓰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우리도 요하문명·홍산문화에 대한 연구가 역사·고고학자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다방면에 걸친 연구를 통해 우리의 역사·문화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