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화쟁’의 교훈···이 시대 협치의 정치는 어디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정치권에서는 ‘협치’를 하자면서 가는 곳은 ‘대치’(對峙) 국면으로 접어들어 여간 안타까운 것이 아니다. 무더위에 국민들은 짜증이 난다.
정치는 사륜마차가 굴러가는 것 같고, 하나의 배를 여러 사공이 저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서로 각각으로 행동하면 한 방향으로 갈 수 없다.
협치와 비슷한 뜻으로 쓰인 예가 <한비자>의 ‘공명편’(功名編)에 나온다. 군주의 걱정은 신하가 호응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니 ‘한 손으로 박수를 쳐서는 제아무리 빠르게 칠지라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一手獨拍 雖疾無聲)고 했다. 잘 다스려지는 나라에서는 군주는 북채와 같고 신하는 북과 같으며, 신하의 재능은 마차와 같고 그의 임무는 마차를 끄는 말과 같다고 덧붙인다.
옛날 신라의 ‘화쟁’(和諍)은 원광(圓光)이나 자장(慈藏)에서 비롯돼 삼국통일시대 원효(元曉)가 집대성했다.
원효가 화쟁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것을 강조하게 된 것은 신라에 들어온 불교 이론들이 매우 다양하여 논쟁이 격심했기 때문이다. 당시 각각의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이론만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이론들을 배척했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와 이론적인 상호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창안한 것이 화쟁의 방법이다. 화쟁의 대상은 그의 시대에 나타난 모든 불교이론들이다. 논리적 근거는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일심(一心)에 두었다. 또한 화쟁은 언어적으로 표현된 이론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언어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했다.
원효에 따르면 진리를 전달하고자 언어를 사용하지만 언어와 진리가 고정적이고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다만 진리의 전달 도구로 사용할 뿐이라는 것이다. 언어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하나의 이론에 집착하는 것을 막아준다. 이 바탕 위에서 원효는 극단을 버리고 긍정과 부정을 자유자재로 하며, 경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구체적인 화쟁을 전개한다.
우선적인 화쟁의 방법은 언어의 한계를 지적하고 부정(否定)을 통하여 집착을 떠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정만으로 집착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정 자체에 집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부정의 부정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하여 긍정(肯定)과 부정의 극단을 떠나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긍정과 부정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원효는 화쟁론을 통해 서로 다른 주장들이 결코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점은 원효가 들고 있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의 예화에서 잘 드러난다. 코끼리 전모를 다 볼 수 없는 장님들은 각자가 만지고 있는 부분이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코끼리가 “벽과 같다”고 하며, 또 다른 이는 “기둥과 같다”고 한다. 그야말로 ‘백가(百家)의 이쟁(異諍)’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원효는 “모두 옳다”(皆是)고 한다. 각 주장들이 코끼리가 아닌 다른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원효는 “모두 틀렸다”(皆非)고 한다. 코끼리 ‘전체’를 생각한다면 각각의 주장 모두에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개시와 개비는 동전의 양면이다. ‘개시개비’는 좌가 맞으면 우가 틀렸고, 우가 옳다면 좌가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넘어 ‘복수의 옳음’을 용인한다. 그리고 ‘나의 옳음’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인정함으로써 더 큰 옳음을 모색하고자 한다. 요컨대 개시가 ‘벽’과 ‘기둥’ 둘 다 코끼리의 모습이라고 하는 모순과 역설을 공존하게 하는 원리라면, 개비는 모순적 상황을 새로운 변화로 이끌고자 하는 ‘갈등전환’의 관점이다.
화쟁의 정치란 단 하나의 옳음이 아니라 복수의 옳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옳음’이 절대적일 수 없으며 ‘저들의 옳음’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함께 ‘더 큰 옳음’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정치를 말한다.
화쟁의 정치는 다툼이 없는 평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투되 평화롭게 다투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다. 갈등을 현안 해결과 더 큰 발전의 에너지로 만들어가는 일, 그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고 협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