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 피할 수 없는 촛불국민의 명령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요즘 대선정국에 적폐청산론(積弊淸算論)이 한창이다. 이 ‘적폐청산 론’에서 적폐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뜻한다. 따라서 ‘적폐청산론’은 ‘쌓이고 쌓인 폐단들을 청산하자’는 공론을 말한다. 지금 대선 정국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말하는 이 ‘적폐청산론’은 “그간의 박근혜 정권에서 보였던 폐단들, 특히 정치검찰과 국정원 정치개입 등 국가권력의 사유화 부분을 일소하자”는 주장과 관련되어 있다.
4월 5일 국회에서 진행된 ‘권력적폐 청산을 위한 긴급좌담회’ 기조연설을 보았다. 청와대·검찰·국정원 등의 개혁 방안을 발표한 것이다. 한 후보는 △대통령 집무공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이전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분리 같은 정책을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사추천 실명제 도입 △청와대 경호실 폐지 △국정원 수사기능 폐지 및 해외안보정보원으로 재편 등의 비전도 설명했다.
그 후보는 “촛불민심에서 나타난 ‘이게 나라냐’는 탄식의 근본 원인은, 국가권력 사유화로 인한 국가시스템 붕괴였다. 그 중심에 청와대와 검찰, 국정원이 있다”거나 “무엇보다 먼저 권력기관의 적폐를 청산하고 정의가 이기는 시대를 만들겠다.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일에 타협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동안 부정부패가 쌓이고 쌓여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하지 않나, 하수인이던 고영태는 세관장 자리를 앉히는 대가로 거액을 챙기질 않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전횡을 귀 아프도록 들었다.
오래 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유행하던 말이 있다. “민나 도로보 데쓰!” 모두 도둑놈이라는 일본말이다. 권력이 썩으면 도둑놈들이 판을 친다. 이 도둑들을 두고는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수 없다.
권력적폐 청산 3대 방안을 한 후보가 제시했다.
첫째, 청와대 특권을 버리고 국민과 소통하겠다. 적폐청산의 시작은 국민과 함께하는 청와대다. 국민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의 특권을 내려놓고, 대통령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겠다. 그리고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 소통하겠다. 국민대통령 시대에 대통령이 있을 곳은 구중궁궐이 아니라 광화문 청사다. 대통령 집무 청사를 광화문으로 옮기겠다.
둘째, 확실한 검찰개혁으로 법치의 기본을 바로 세우겠다. 검찰개혁의 첫 걸음은 부패한 정치검찰의 청산이다. 권력사유화의 도구가 되었던 정치검찰은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부패검찰, 정치검찰을 청산하지 않고서는 법치를 똑바로 세울 수 없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여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겠다.
셋째,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 그동안 국정원은 국내정치에 깊숙이 개입했다. 간첩을 조작하고 국민을 사찰했다. 불법선거운동을 일삼았다. 국민사찰·정치 및 선거개입·간첩조작·종북몰이 등 4대 범죄에 연루되고 가담한 조직과 인력은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 국정원 적폐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보기관으로 쇄신하겠다.
이대로만 실현이 되면 나라는 한결 깨끗한 나라가 될 것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 좋은 공약을 실천하지 못하면 구호만 거창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다를 바가 없으며 탄핵이라는 비극이 거듭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조 영조시대에 윤기(尹?, 1741~1826)라는 사람이 지은 <협리한화>(峽裏閑話)에 ‘큰 도둑 작은 도둑’ 얘기가 나온다. 당(唐)나라 때 이섭(李涉)이란 사람이 도적을 만나자 시를 한 수 지어 주었다. “지금 세상 절반은 그대 같은 사람들이네.”(世上如今半是君) 세상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 멀쩡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절반이 도적놈이란 뜻이다.
송(宋)나라 때 정광(鄭廣)은 원래 해적이었다. 투항하자 나라에서 그에게 벼슬을 주었다. 하지만 관청에 출근해도 아무도 그와 함께하지 않았다. 불쾌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출근했더니 동료들이 시(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광은 동료들에게 졸작 한 수를 보여드린다고 하며 이렇게 읊었다.
“정광이 시 한 수 벼슬하는 여러분께 올리는데/ 문관이건 무관이건 보아하니 똑 같네요/ 벼슬아치는 벼슬 살며 되레 도적질을 하고/ 정광은 도적질 하다가 되레 벼슬아치가 되었지요.”(鄭廣有詩上衆官, 文武看來摠一般. 衆官做官却做賊, 鄭廣做賊却做官)
관직을 이용해 도적질을 하는 벼슬아치가 도적질을 하다 벼슬을 하는 자신만 못하다는 말이다.
벼슬을 하는 것과 도적질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하지만 윤기는 벼슬아치가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나라와 백성을 망친다는 점에서 그 죄가 도적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과거와 인사, 소송 판결 등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남의 땅을 빼앗고 백성의 고혈을 빨아 죽게 만드는 자들이야말로 더 큰 도둑놈(大賊)이 아닐까?
윤기의 이 말을 듣고 그의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 세상의 도적을 따져본다면, 안에서는 높은 초헌을 타고, 밖으로는 일산(日傘)을 펼쳐 쓰고 깃발이며 도끼를 세워 들고 다니는 자가 정말 큰 도적이라네. 쥐나 개처럼 훔치는 자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리고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시달린 나머지 생업을 잃고서 항심(恒心)이 없어진 경우라네. 그런데 지금 큰 도적이 작은 도적을 잡는다고 설치니, 그 아니 우스운가?”
도둑 없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대선후보들이 모두 적폐청산과 개혁을 말하고 있다. 1천만 촛불국민은 공정한 나라, 원칙과 상식이 똑바로 선 나라를 만들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제 국민의 명령에 대선후보들이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