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뜨락] 김남조···’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진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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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김창수 시인, 한빛고교 교장 역임] 김남조 시인은 대구 출생으로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는 기독교 박애정신에 바탕을 둔 시를 주로 썼다. 정제된 언어로 깊은 내면을 시어로 잘 승화하고 있는 시인이다.

겨울나무들은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그렇게 다 벗어 자신을 내려놓을 때 나무는 일그러진 것들을 사랑할 줄 알게 되고 상한 살을 헤집고 입을 맞출 수가 있게 된다. 자기가 없으니까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이름이 없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공을 내세우지 않는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나’가 없다.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그래서 겨울나무다. 어머니도 예전에는 겨울나무로부터 사랑과 입맞춤을 받고 자랐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겨울나무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생명의 못자리가 될 수 있다.

생?? 명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벌거벗고 언 땅에 꽂혀 자라는

초록의 겨울 보리,

생명의 어머니도 먼 곳

추운 몸으로 왔다

진실도

부서지고 불에 타면서 온다

버려지고 피 흘리면서 온다

겨울나무들을 보라

추위의 면도날로 제 몸을 다듬는다

잎은 떨어져 먼 날의 섭리에 불려 가고

줄기는 이렇듯이

충전 부싯돌임을 보라

금 가고 일그러진 걸 사랑할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상한 살을 헤집고 입 맞출 줄 모르는 이는

친구가 아니다

생명은

추운 몸으로 온다

열두 대문 다 지나온 추위로

하얗게 드러눕는

함박눈 눈송이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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