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방조 공영방송, 방통위·이사회 여야 나눠먹기 개선 시급

[아시아엔=윤사현 전 광주방송(kbc) 정책심의실장] 방송은 공동체의 의제를 설정한다거나 사회 환경을 감시하는 등 여러 기본 기능을 수행한다. 방송의 여론형성과 감시기능은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끊임없는 유혹을 받아왔다. 이에 따른 부작용과 역기능을 극복하기 위해 유럽에서 태동한 방송제도가 공영방송이다.

공영방송의 목표는 자본이나 정치권력으

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해 방송의 공공성과 형평성을 유지하자는 것이다. 현재까지는 최고의 방송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공영방송의 이념은 전파가 국민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소유인식을 반영한다. 방송의 내용은 국민의 알권리를 기반으로 국민이 바라는것(want)과 국민에게 필요한 것(need) 사이에서 제작자의 상식과 고민이 더해진다.

이같은 공영방송시스템이 독재권력의 방송통폐합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수 없다. 그만큼 우리의 공영방송이 정치권력과 가까운 출발을 했다는 시사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 직속의 방송통신위원회를 두고 있는데 방송 통신의 정책 기획, 심의, 조정, 재허가 등이 이 기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우선 이 컨트롤타워의 인적구성을 정치권력이 독점하고 있다. 5명의 위원회는 대통령과 국회 여야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되 집권당 인맥의 위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도록 짜여진다. 그 산하에는 방송 내용을 세부적으로 간섭할 수도 있는 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KBS이사회나 MBC방송문화진흥회는 모두 해당 공영방송의 사장을 선임하고 감독하는 경영기구다. 하지만 그 구성 역시 모두 정치권의 추천에 따르니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정치적인 독립성이 근본적으로 침해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공영방송이 그나마 공공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고민한 것은 1980년대 말 방송노동조합의 출범과 함께였다. 방송인들의 힘겨운 투쟁과 희생을 통해 경영과 방송현업의 분리를 근간으로 하는 편성규약이 마련되었다. 1990년대부터 두 공영방송은 방송사 내외의 갈등과 긴장 속에서 그 이름에 걸맞는 신뢰도를 축적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았다. 새로 등장하는 정치권력의 전리품 정도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보도자료와 기자회견을 통한 출입처 발생기사가 만연하고 발로 뛴 탐사저널리즘은 점차 소멸하고 있다. 입법·사법·행정 3부를 감시하는 제4부라는 자긍심은 엿보기 어렵다.

최고의 방송시스템인 공영방송을 유지하려면 적어도 제도적으로 전파의 소유인식이 제대로 반영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전파의 공공성과 방송의 독립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공영방송이 발달한 유럽의 경우 사장선출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참여가 배제되어 있다. 대신 각 지역 대표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다원주의적 참여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다.

영국 BBC의 트러스트(이사회)는 정치권력의 이익을 반영하는 우리 공영방송 이사회와 대조를 이룬다. BBC트러스트는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이나 자본의 간섭에 노출될 때 최일선에서 저항하는 방패막이를 자임하고 있다. 공영방송 BBC에 대한 세계의 신뢰가 읽혀지는 부분이다. BBC에 대한 막강한 신뢰도는 전파가 국민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경영진의 인식에다 방송인들의 자긍심과 꾸준한 책임감이 더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KBS이사회, MBC방문진 등의 구성을 여야 정치권이 나눠먹시기식으로 ‘자리나눔’ 하는 현 제도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경영과 편성의 분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방송의 공공성을 침해하는 그 어떤 시도도 무겁게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이제 공영방송은 언론개혁 사안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개혁의 여러 과제들 중 하나다. 공영방송을 이대로 정치기득권의 먹이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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