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박근혜 대국민담화에 숨겨진 의도 4가지

[아시아엔=황진선 논객닷컴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문화부장·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의 4일 대국민 담화에는 큰 두 줄기, 곧 국민에 대한 사과와 변함없는 국정수행 의지가 담겼다. 사과에는 검찰의 수사, 나아가 특검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뜻도 포함됐다. 박 대통령은 침통한 얼굴로 여러 차례 국민께 마음의 상처를 드려서 가슴이 아프다며 고개를 숙였다. 늦었지만 박 대통령의 검찰 수사 자청과 비교적 솔직한 사과는 정치권과 국민에게 잠시 숨통을 틔워주고 현 정국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시간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야당은 물론 퇴진 목소리를 점점 높이고 있는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자신에게는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정치적 도의적 책임만 있을 뿐 법률적 책임은 없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박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 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은 정당화하면서 그 위법적 운영은 최순실에게 책임을 넘겼다.

그는 이와 함께 “저와 함께 헌신적으로 뛰어주셨던 정부의 공직자들과 현장의 많은 분들, 그리고 선의의 도움을 주셨던 기업인 여러분께도 큰 실망을 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 역시 미르·K스포츠 재단의 모금 과정이 선의로 이루어졌으며,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냈다는 뜻으로 읽힌다.

박 대통령은 담화 후반부에서 어느 누구라도 검찰 수사를 통해 잘못이 드러나면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자신도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전반부의 해명은 검찰 수사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이 국민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면 적어도 법령에 근거해 만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두 재단은 설립 신청 하루만에 허가를 받은 사실상의 최순실 재단이었다. 또 그런 급조된 재단에 대기업들이 774억원을 자발적으로 냈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검찰에서 ‘대기업들의 자발적 모금’이라는 기존 주장을 뒤집고 “청와대 지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뿐 아니라 앞으로 국정을 어떻게 운용해 나가느냐도 중요하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 속히 회복해야 한다”면서 “국민이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의 원로, 종교 지도자, 여야 대표와 자주 소통하며 국민 여러분과 국회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다”고 국정 수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한다든가 책임총리에게 내치를 맡기겠다는 언급은 없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에게 국정을 이끌어갈 동력이 있는 걸까. 국민이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받아들일까. 박원순 서울시장이 말한 대로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신뢰를 잃은 것은 아닐까.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특검 수용, 총리 후보 지명 철회, 국정에서 손을 떼고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할 것을 요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권 퇴진 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이 야당과 아무런 상의 없이 김병준 총리 후보자를 발표한 것은 뼈아픈 실수다. 만약 여야 대표와 협의하는 과정을 거쳐 김 후보자를 발표했다면 야3당의 반발과 비난의 강도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거국중립 내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총리 후보에 대한 국회 동의의 선결 요건인 인사청문회는 열리기 어렵게 됐다. 인사청문회를 보이콧하기로 한 야3당이 이를 철회하고 청문회를 열어 김 총리 후보자 임명에 동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김 총리 후보가 스스로 사퇴 선언을 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박 대통령이 후보 지명을 철회함으로써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 후에 여야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치해 후임 총리 추천을 부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래야 정치권과 국민의 불신이 조금이나마 더 가라앉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조기 개헌과 조기 대선을 주장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1년 4개월 동안 사실상의 식물 정부 아래 방치하기에는 우리의 경제와 안보 현실이 너무 어렵고 절박하다는 것이다.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더라도 헌법상 외치와 국방은 총리에게 넘기기 어려워 북한의 핵 위협 등 안보위기 대응체제가 제대로 가동될 수 없을 것이라는 염려도 있다. 일리 있는 얘기들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한 이후에 여야 정치권이 논의할 일이다. 거국내각의 총리가 개헌과 조기 대선 협의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