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결혼했다”던 그때 그 사람, “당신이 너무 미워요”
[아시아엔=황진선 <논객닷컴> 편집인, 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전 <서울신문> 사회부장·문화부장·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다. 지지율이 오를 수 있을까. 소폭 오르더라도 10%를 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이미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평가가 끝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정호성 전 부속 비서관에게 청와대 문건과 관련해 “최 선생님(최순실)에게 컨펌(confirm·확인)한 것이냐”고 묻거나, “빨리 확인을 받으라”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의 아바타였다는 인식은 점점 더 굳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분별력이 부족한 혼군(昏君)이라는 인식을 불식할 수 있을까. 사드 배치 같은 정치적 현안을 포함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에 대해 자유 질의응답식 기자회견이나 토론을 열어 자신의 언어로 국민과 정치권을 설득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검사들과의 대화를 연 것을 상기해 볼 수 있다. 자유토론 형식의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것을 생중계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하지만 ‘수첩공주’가 그런 시도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설혹 질의응답 회견을 하더라도 국정수행 능력을 증명할 가능성은 더더욱 없다고 봐야 한다. 이는 곧 지지율 상승 기대는 난망이라는 뜻이다. 회복 불능이다.
그런 박 대통령이 외교부와 문화체육부 등 정부 부처 차관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하고 한광옥 비서실장 등 비서진과 주교황청 대사 등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부산 엘시티(LCT) 비리 의혹을 엄중하게 수사하라고 법무부장관에게 지시하는가 하면, 한·중·일 정상회담에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정수행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한 국민은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다. 특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이 엘시티 수사를 지시하다니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이 같은 행태가 이어진다면 국민의 불안감과 분노는 커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역점을 기울인 일은 아버지 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였다. 지난해 10월27일 박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설명할 때는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몇몇 의원들은 무서움을 느꼈다고 했다. 아버지와 관련한 일에 대해 얘기할 때만은 영혼이 없는 남의 말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했다. 박 대통령에게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핵심은 홀대받는 아버지와 5·16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박정희 성역화 사업’에도 돈을 펑펑 쓰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박정희 관련 사업 예산은 3400억원에 이른다. 박정희기념관과 기념공원, 새마을운동 기념공원 조성 등에 썼거나 쓸 돈이다. 중복사업도 많다. 내년이 박정희 탄생 100주년인 만큼 성대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뜬끔없이 광화문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장군과 같은 반열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한데 박 대통령의 그런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버지의 업적과 평가를 갉아먹고 있다. 딸에게 분노하는 국민이 늘어나는데 아버지에 대한 평가가 좋을 리 만무하다. ‘독재자 박정희’는 생전에 자기 사후(死後)에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했다. 딸 탓에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겠다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박정희 재평가는 물론 성역화 작업도 필시 차질을 빚을 것이다.
국회는 지난 17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특검법)’과 ‘국정조사계획서 승인’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특검팀 인력은 105명으로 사상 최대 규모, 수사 기간은 최장 120일이다. 이르면 다음 달 초부터 가동된다. 여야 의원 18명으로 구성된 특위도 최장 90일까지 국정농단 의혹을 조사한다. 과연 박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이어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를 버텨낼 수 있을까. 그 기간에 국정 혼란과 마비는 어디까지 이를까.
새누리당의 김무성 전 대표 등 비박계는 박 대통령에게 퇴진을 촉구할 것이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대로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박 대통령이 곧바로 퇴진해 대선을 치르게 되면 야당에 정권이 넘어가는 것이 뻔하므로 가급적 시간을 벌어 반전의 계기를 모색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야 3당 역시 민심은 안중에 없는 박 대통령의 버티기 대응 탓에 즉각 퇴진과 탄핵 추진의 투 트랙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데 탄핵 과정을 민심이 참고 견뎌 낼까 의문이다. 참으로 한가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탄핵 절차를 밟게 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오기까지 길게는 1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국정은 마비된 데다 국격은 땅에 떨어지고 지친 국민은 분노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상황을 더 나빠지게 하지 않으려면 민심을 바로 읽어야 한다. 검찰 수사에도 적극 협조해야 한다. 박근혜 퇴진 시위대의 분노가 폭발하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국민에게 용서를 받기가 어려워진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처럼 사면을 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박 대통령은 2006년부터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말을 해왔다. 박 대통령 지지자들은 2012년 대통령에 당선하자 박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결혼 청첩장을 만들어 공개했다. 박 대통령에게 그런 애국심이 남아 있다면 지금이라도 국민과 국가를 위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본인은 물론 아버지를 덜 욕되게 하는 길이다.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최소한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한다.
무능한 데다 자신의 큰 잘못은 외면한 채 상대방의 작은 잘못을 찾아 공격하기에 급급하고, 거짓말을 일삼는다는 인식이 더 확산되면 더더욱 출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11월12일에 이어 19일에 전국 주요도시에서 열린 촛불 집회와 시위는 평화롭게 끝났지만 앞으로도 평화시위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19일 시위에는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도 참여했다. 대학생과 고교생들이 함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4?19 혁명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민심은 이미 ‘국정 농단의 피의자’ 박근혜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