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백과사전’ 펴낸 동화작가 채인선 “미국인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얼마 전 우연히 서점에서 ‘다문화백과사전’(한권의 책 발간)이란 책을 발견하고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다문화에 관한 책은 많지만 백과사전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본 채인선(50) 작가는 어떤 이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3대 동화작가’다. 1996년 창비에서 주관한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에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유아용 그림책부터?청소년 소설까지 저서가 30권이 넘는다. 대표작은 내짝꿍 최영대, 나의 첫 국어사전. 초청강연도 종종 받는 동화책 분야 저명인사다.
8일 오전 지하철 2호선 문래역 인근 커피숍에서 만난 채 작가는 가수 심수봉을 닮은 단아한 모습이었다. 다문화백과사전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전 채 작가는 유아 교육에 관심이 많은 기자에게 30분에 걸쳐 ‘포대기 육아법’ 등 ‘아이를 잘 키우는 법’에 대해 먼저 알려줬다. 동화작가로서 해박한 지식이 엿보였다.
다문화백과사전 집필동기에 대해 그는 “4년의 뉴질랜드 생활이?동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2000년 딸아이의 학업문제로 뉴질랜드에 갔어요. 그곳에선 제가 다문화 사람이었죠. 유색인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뉴질랜드란 사회가 문화다양성을 굉장히 강조하는 나라였어요. 거리, 학교, 관공서 어디에서나 ‘문화다양성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의미의 구호들이 넘쳐났죠. 지식인들도 언론매체를 통해 자주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요. 이민자의 나라라 그럴 수 있지만, 지속적인 계몽활동에 감동을 받았죠.”
이어지는 에피소드.
“하루는 딸아이가 친구들과 공원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백인 아이가 ‘여기는 우리가 애용하던 자리다. 너희 나라로 가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나 봐요. 그랬더니 주변에 앉아있던 다른 아이들이 일어나 그 백인 아이에게 ‘적절치 못한 말이다. 사과하라. 선생님께 보고하겠다’ 하더라는 거예요. 실제로 그 백인아이는 학교에서 엄한 처벌을 받았고요. 필요 이상의 우대란 생각이 들 정도로 뉴질랜드의 이민자 정책은 인상적이었어요.”
2004년 돌아온 한국도 많은 외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뉴질랜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분위기. 다문화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책도 읽고 강연회도 찾아 다녔다. 외국에 노동자로 나가고 일본 농촌에 시집도 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과거를 잊고 외국인노동자, 이주여성들에 대해 편견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문화가 주를 이루면서 미국 백인들이 흑인을 바라보던 시선까지 그대로 옮겨온 것 같았어요. 외국에 살다 오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사람처럼 행동한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이건 아닌데, 올바른 역사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다문화백과사전은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태어났다.
다문화백과사전은 세계시민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논리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했지만 어른이 읽기에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역사, 과학, 사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다문화 가치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적절한 삽화, 용어 설명으로 ‘다문화백과사전’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다름의 가치, 상호 존중과 배려, 외국인 혐오증 등 다문화를 떠올렸을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을 두루두루 이야기한다고 해서 다문화백과사전이라고 지었어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의 직장생활, 늘 사전을 끼고 살아야 하는 작가로서 사전에 대한 관심이 큰 것도 작용했고요.”
인터뷰 말미,?얼마 전?남프랑스에서 가서 깨달은 점을 이야기했다.?마르세이유 인근 항구에 앉아 다양한 사람들을?자세히 관찰해 봤더니?진짜?백인도 진짜 흑인도 없더라는 것이다. 옅은 황색인과 짙은 황색인이냐 구분만 있을 뿐. 그런 자각 후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모두가 개성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인간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 존재할 수 있어요. 우리가 서도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될 수 없어요. 남자가 없으면 여자가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와 다른 남들 때문에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세계시민으로서 다양한 사람과 어울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가꾸는 일에 함께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