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단풍] 남도기행 강추···화개장터·소쇄원·유선관·무등산·월출산 그리고 신안 갯벌
담양 소쇄원
[아시아엔=김국헌 수필가,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남도기행은 익산에서 전라선을 타고 섬진강을 내려가는 길로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섬진강은 전북 진안에서 출발하여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를 굽이쳐 흐르면서 보성강과 합쳐 광양만으로 흘러드는데 226km로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이은 5대강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을 했는데 행인지 불행인지 섬진강은 거기에서 빠져서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다. 섬진강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이룬다. 구례에서 섬진강을 건너면 하동 화개장터다. 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가 흥얼거려진다.
화개장터에서 동쪽으로 가면 박경리의 대작 <토지>의 고장, 악양면에서 최참판 댁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의 조선 양반의 생활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강을 건너 광양은 임권택 감독의 명작 <천년학>의 고장으로 봄이 되면 청매실 농원의 매화가 만발한다. 하동에서 순천에 이르는 길은 봄이 되면 흐드러진 벚꽃길이다. 내년 봄 쌍계사 황매화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순천은 김승옥의 <무진기행> 고장이다. 김승옥의 말대로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무진이 있지만, 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을 연상시키는 서정문학의 극치다. 순천에는 승보사찰 조계산 송광사가 있다. 불교의 삼보 가운데 나머지 두가지, 법보사찰은 합천 해인사, 불보사찰은 양산 통도사다. 순천에는 이밖에도 태고종의 총본산인 선암사가 있다. 구례 화엄사도 남도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순천에는 낙안읍성이 있다. 여기에 들어서면 조선의 서민생활로 되돌아간다. 가공의 세트가 아니라 생활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서산 해미읍성, 강진의 병영성 등이 있으나 낙안읍성이 제일 근사하다.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고장이다. 건국 전야에 벌어졌던 좌익과 우익 투쟁의 가슴 아픈 현장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다. <태백산맥>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갈리지만 작품으로서 그것이 차지하는 위치는 높다. 1943년 선암사에서 태어난 조정래는 자신이 소설에서 표현한 어지러움을 몸으로 겪었다. 벌교에는 득량만에서 나는 꼬막이 유명하다. 꼬막정식 한 그릇이면 온몸이 푸근해진다.
호남의 웅도 광주의 무등산은 1187m인데 인구 100만 이상 도시에서 1000m 이상의 산을 끼고 있는 도시가 동북아에서 다섯 도시 밖에 되지 않는다는 설명이 있다. 그런가 하고 세어보니 서울 북한산 836m, 대구 팔공산 1193m, 부산 금정산 801m다. 베이징 수백 리 이내에서는 산을 보기 어려우며, 일본의 후지산은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시즈오카(靜崗)에 있다. 무등산(無等山)은 등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너무 우람하여 “등수를 매길 수 없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뾰쪽한 화강암 위주의 서울, 경기도의 오악과는 다른 넉넉함과 푸근함이 느껴진다. 무등산 기슭에는 송강 정철을 위주로 한 가사문학관이 있다.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장진주사(思美人曲, 續美人曲, 將進酒辭)는 우리 가사문학의 정수다.
담양에는 소쇄원이 있다. 창덕궁의 비원이 왕궁 정원을 대표한다면 소쇄원은 최고의 민간정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종 때 양산보가 조성하였는데 성리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도가적 삶도 지닌 조선시대 선비들의 경관에 대한 순응과 경외가 잘 드러나고 있다.
영암에는 월출산이 있다. 가히 호남의 금강이라 불러 손색이 없는 악산(岳山)이다. 근처에 일본에 한자를 전해준 왕인 박사의 탄생지가 있어 일본인들이 많이 온다. 강진 정약용의 다산초당에서는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가 이루어졌다. 강진에는 또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있다. 대부호였던 그의 집은 지금도 당시 생활규모를 미루어 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고향이다. 우리 국어의 아름다움이 이토록 잘 배어나올 수 없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하게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해남 윤씨 종댁 ‘녹우당’에 가면 윤선도와 윤두서, 정약용, 김정희의 교유를 볼 수 있다. 모두 천재인 이들은 잠시 반짝 하였던 영·정조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다.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는 시조라는 문학장르의 우수성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학창시절 애송 시조였다.
내 벗이 몇이냐 하면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해남 우수영은 조선시대 수군의 전라도 우수영에서 유래된다. 임금이 계신 한성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전라 우수영은 해남, 좌수영은 여수다. 경상 우수영은 통영, 좌수영은 부산이었다. 우수영은 명량해전의 격전지다. 이순신은 궤멸상태에 빠진 조선 수군을 재건하여 臣 尙有十二隻(아직 열 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신은 죽지 않았습니다)의 각오로 130여척의 왜 수군을 물리쳤다. 울돌목 거친 해류를 이용해 침략군을 완파한 이순신의 명량해전은 세계 해전사에서 넬슨의 트라팔가 해전과 비유된다.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한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八次郞)은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좋으나, 이순신에 비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한다.
완도 보길도에는 윤선도가 조성한 세연정이 있다. 제주도로 향하던 그가 풍랑으로 보길도에 들렀다가 매력에 빠져 10년을 머물면서 세연정과 낙석재 등 건물을 짓고 부용동이라 칭했다. 정자에서 바라보는 연못의 운치와 주변을 가득 메운 동백꽃의 조화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다. 청산도는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을 찍은 것으로 김명곤과 오정해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돌담길을 내려오는 장면은 서편제의 절정이다. 완도에 가서 배를 타는 품을 들여 청산도에 가보면 서편제의 명장면이 떠오를 것이다.
신안군은 한국 천일염 산지의 중심이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소금은 광염이다. 인체에는 녹말·단백질·지방질 외에 비타민과 칼륨·칼슘·마그네슘 등의 무기 염류가 필요하다. 서해안과 같이 갯벌이 잘 조성된 해안은 세계에 다섯 곳밖에 없다. 서해안 갯벌은 그 가운데서도 특히 영양분이 풍부하다.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보고다. 중국 대륙을 휩쓸고 내려온 영양분을 황하와 장강이 운반하는데 막상 중국 동해안에는 축적되지 않고 한국 서해안에 주로 축적되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들이 꽃게나 조기를 잡으려고 한국에 몰려오는 이유다. 증도에는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는 해양리조트 엘도라도가 있는데 들러 커피 한잔 마시며 남도기행을 중간 결산해도 좋겠다
해남 두륜산 대흥사는 대찰이다. 임진왜란 때 8도승병도총섭이던 서산대사 휴정의 의발이 남아 있고 부도가 모셔져 있다. 서산대사의 시는 특히 청년에게 지표가 될 만하다. 바로 백범 김구가 공주 마곡사에서 은신할 때 마음을 다잡던 시구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
불수호란행 (不須胡亂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금일아행적 (今日我行蹟)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훗날 뒷사람의 길이 될지니.
두륜산 기슭 대흥사 숲길 입구에 1913년 지어진 한국 최초의 여관 유선관이 있는데 대흥사를 찾는 신도나 수도승이 객사로 사용하였다. 특히 정원이 아담하다. 소쇄원이나 세연정 같은 대표적 민간정원은 아니지만 집안에 조성된 정원으로 옛날 부호나 누리던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유선관에서는 인위적인 일본 정원과 다른 자연미와 함께 정평 있는 12첩 반상의 전라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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