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 당선하고 싶은 그대, ‘하심’보다 더 좋은 전략이 없소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가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도무지 하심(下心)할 줄 모르는 사람을 보면 측은하기조차 하다.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데 어찌 조금 배우고, 조금 가졌다고, 조금 지위가 높다하여 겸손할 줄 모르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수행도 마찬 가지다. 출가수행자나 재가수행자나 수행의 근본에는 하심이 있다.
하심이란 마음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 하심이다. 하심 하나만 제대로 실천해도 보살이라 칭송을 받을 것이다. <법화경>(法華經)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에 “상불경보살은 이름 그대로 항상 상대를 부처님같이 공경한다”는 뜻이 있다. 그야말로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이다.
<금강경>(金剛經)에도 우리가 가장 버려야 할 것으로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首者相)을 들고 있다. 그 첫째가 아상이다. 아상을 버리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고 낮추지 않고는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누구나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중국 당나라 때 백낙천(白樂天, 居易, 772~846)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문장가에다가 뛰어난 학문의 대가였다. 엄청난 독서를 하여 알음알이는 누구도 당할 자가 없었다. 그래서 교만하고 오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시샘을 받고 좌천 되고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한번은 지방 근무를 명 받고 근무하던 중 도림선사라는 분이 도인이라는 말을 듣고 만나기로 하고 찾아갔다. 백낙천이 질문하기를 “부처님 가름침의 대의가 무엇입니까?” 했다.
도림선사가 “모든 죄를 짓지 말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라”고 했다. 백낙천은 속으로는 ‘공연히 왔다’고 실망했다. “그 말은 세살 먹은 아이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 “세살 먹은 아이도 다 알지만 필십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백낙천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돌아보니 머리와 입으로는 수없이 성현의 글을 읽고 머리에 가득 담아 가지고 다니면서 오만하고 남을 무시하고 다녔던 것이다. 부끄러워 머리를 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도림선사의 제자가 되었다.
학문과 참선을 많이 하고 계율을 잘 지킨들 마음 속에 아만과 독심(毒心)이 가득하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행자는 모름지기 자기의 마음을 살펴서 아만심(我慢心)을 경계해야 한다. 아만심을 품은 사람은 자신만이 옳고, 자신만이 바르다고 하며, 타인을 무시하거나 능멸하기 쉽다.
아만심을 잘못 가지게 되면 상대방이 어질고 훌륭한 덕성을 지닌 좋은 사람이라도 나쁜 사람으로 폄하한다. 그리고 자기만 못하다고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며 얕잡아 본다. 또한 자신의 허물은 교묘히 감추고 남의 허물만 밝힌다.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수처럼 공격하여 상처내고 결국 심한 경우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부처님은 그 만심을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만심(慢心)이다. 자기가 다른 이에게 우월감을 갖는 것을 말한다.
둘째, 과만(過慢)이다. 자신보다 뛰어난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교만심을 내는 것이다.
셋째, 만과만(慢過慢)이다. 상대방이 나를 능가하는데도 반대로 자신이 상대방을 능가한다 하여 과만보다 더욱 교만을 부리는 것이다.
넷째, 아만(我慢)이다. 자신이 아는 것만 믿고 여타의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섯째, 증상만(增上慢)이다. 깨닫지도 못하고서 깨달은 양 행세하는 것이다.
여섯째, 비하만(卑下慢)이다. 절대평등의 성품을 모르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비굴한 마음이다.
일곱째, 사만(邪慢)이다. 사악한 행동을 하고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면서 타인을 타박하는 것을 말한다.
일곱 가지 만심 중 한 가지라도 가지고 있으면 남이 먼저 알고 멀리하게 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은 자신을 잘 살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