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46] 한나라당 ‘박근혜+김덕룡’·’이부영+손학규’ vs 이회창의 역학관계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야권의 계파 재구성은 상식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 한나라당도 그랬다. 그것은 (언론이 애용하는 표현을 빌려) 차기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들의 부상(浮上)과 그들의 재기가 곧 자신의 영달임을 간파한 당내 중간보스의 재계파화로 집약된다. 그들의 정치적 면모가 여기서 다시 돋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입으로 말하는 개혁 메시지가 현장정치에서 실천으로 담보되지 않는 까닭도 따지고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정치적 승리의 환상과 그에 뒤따르는 실질적 행복의 반대급부 크기에서 비롯되고 있었던 터다.
세기전환과 함께 모처럼 대권을 내준 한나라당 속사정은 그러나 편할 리 없었다. 이회창의 낙선으로 이미 한 차례 크게 낙담한 당내 계파들은 사실 그를 다시 옹립할 것인지 여부로 흔들린다. 그것도 단순세포분열이 아닌 동상이몽의 다차원적 분화로 이 총재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게 갈라진다. 이는 곧 계속 그를 따를 것인지 아니면 몸집을 불려 자신들 또한 정치적 자생력을 갖출 것인지 여부의 녹록찮은 계산을 바탕에 둔다.
계파의 분류는 흔히 당내 ‘핵심’과 ‘주변’ 혹은 ‘주류’와 ‘비주류’ 등 거시변수에 주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념의 좌우편향과 당내 실질적 영향력 동원정도를 바탕으로 삼거나 ‘성별·당력(黨歷)·지역’ 변수를 고려하여 미시화할 수도 있다. 이는 곧 각기의 변수를 따로 정밀히 관리·조합하는 별도의 분류기준과 그에 따른 역사적 정밀추적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정치적 호흡과 이력의 기본이 워낙 짧은 한국사회에서 이에 관한 통사적 재편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대신 정권별·시기별 준거에 따라 이를 종합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는 예측불가능한 당 중앙의 구성과 정책집행력, 이합집산정도 등 감안해야 할 변수가 잠정 작동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이회창을 중심으로 ‘친이(親李)’와 ‘반이(反李)’계로 나뉘어 있었고 각 계파 안에서도 견제와 충돌을 거듭하는 다소 복잡한 형국이었다. ‘친이’계라 하더라도 정권 회수에 목표의 최대치를 둘 뿐, 이회창을 무조건 지지하진 않는 최병렬과 그를 암묵적으로 견제하는 ‘하순봉·양정규’의 정치적 길항도 주목해야 했고 대구·경북을 등에 업고 아예 새로운 미래를 겨냥하며 이 총재를 옹립하려 한 강재섭도 관전 포인트였다.
이회창을 정면에서 반대하는 확실한 비주류로 박근혜와 김덕룡은 이 총재 중심의 정권탈환에 이의를 제기하는 한편, 총재의 리더십과 당 운영방식에 비판을 집중한 손학규와 당 보수노선에 문제를 삼는 이부영 부총재 등으로 ‘반이’계 역시 4원화되고 있었다. 보수우익의 이념을 지속가능한 미래로 삼으려는 한나라당으로선 여러 지점으로 분산·강화되는 계파의 대척점이란 곤혹스런 대상이었다.
이들을 정점으로 자기계파를 결성·강화하려 하거나 다시 이를 의식·견제하려는 반대파의 정치활동이 모습을 드러내는 건 필연이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 사이의 격돌과 긴장의 지탱은 말리지 못할 현상이다. 누가 자발적으로 각기 그 계파로 흘러들어가고 또 나왔는지, 그 후 그들의 면면은 정치적으로 또 어떻게 변하는지는 여기서 생략한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는 그 확연한 윤곽을 드러낼 만큼 정치적 선명성이 덜 했고 지속기간 또한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투명했을망정, 힘의 이동과 균열은 분명했고 이를 단호히 제어하려는 시도 역시 의심할 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