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47] 민주당 이인제와 노무현의 ‘날선 긴장’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민주당의 경우도 한나라당의 그것을 거울처럼 되비친다. 비록 본격적 대선 일정이 시작된 건 아니지만, 같은 시기 민주당은 이인제 최고위원과 노무현 상임고문, 그리고 김근태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당내 주도권 재구성에 나선다. ‘그들’이 대권을 지향하는 가시적 주자였다면, 한화갑 최고위원과 김중권 대표는 속내를 드러내진 않았어도 어디까지나 김대중의 복심(腹心)을 읽거나 당을 이끄는 ‘제도적 권위’의 중심이었다.

한화갑과 김중권이 중립적 연대를 지탱하는 가운데 노무현은 표류와 불일치로 도드라지는 이인제의 이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면, 투쟁경력을 공유한 김근태와 협력한다. 권노갑의 집중지원을 등에 업은 이인제는 ‘한화갑·김중권·노무현·김근태’와 긴장하는 한편, 노무현과 김근태는 당 지도부와 정치적 우호관계를 지탱한다.

민주당 대선후보가 아직 선명한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당시, 당내 역학관계의 균형을 깨는 또 다른 계기가 마련된다. 정치적 파괴력이 적잖던 일로 그건 누구보다 DJ 자신을 겨누는 당내 소장파의 칼끝과 맞닿고 있었다. 대통령의 위상뿐 아니라 대통령을 그 자리에 오르도록 보필한 최측근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당내 초·재선 의원들의 저항은 철저한 모럴리티로 윤색되고 있었다. 이른바 당내 정풍운동의 시발이었다.

그 해 봄날은 여름보다 뜨거웠다. 언제는 아니 그랬는가마는 모두가 대통령 될 성싶은 사람들만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 위에서 정치적 격전을 예비하고 있었다. 정치가 곧 명분의 발견이자 그럴듯한 핑계로 뒤덮이는 온갖 사연의 무덤이라면, 민주당 소장파의 공격 역시 출발은 순수하고 대견한 일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초라하게 치른 재보선 책임과 대통령의 국정운영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청와대 보좌진의 과오까지가 표면상의 까닭이었지만 기실 속내는 ‘계파로’ ‘계파를 치는’ 또 다른 정치적 공격이었다.

MBC 앵커출신으로 언변과 지명도의 프리미엄을 유감없이 누리던 정동영(鄭東泳)이 정치적으로 급부상한 시기도 이때다. 2001년 6월의 권부가 그를 주목한 건 공격의 선명한 명분보다 새로운 세력형성으로 인한 실익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미 알려진 자신의 존재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모종의 급진주의가 그를 지배한 셈이다. 이해찬의 권유와 김대중의 수용으로 정계에 입문한 정동영의 행보는 예상보다 빨랐다.

김대중을 의식하긴 하되, 심복들을 먼저 겨냥하고 차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각인하려는 효율적 정치 전략이 그의 의중을 지배하고 있었다. 민주당에서 개인적 당세를 확장하기란 사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의 공격명분과 정치적 실익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은 안전하지만 힘겨운 ‘메뉴’였을 것이다. 하필 정동영이 그 가운데 강공대상으로 설정한 계파는 가장 노회하고도 막강한 세력이었다. 일상의 전술 대신 정면을 공략해 들어간 그의 의표란 극히 비상식적인 비판도, 전략적 공조에 따른 협공도 아니었다. 2000년 말 권노갑을 향해 2선 후퇴를 권고한 일도 좋은 예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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