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51] ‘필리버스터 정국’서 되돌아보는 16대 친노 반노 그룹 분포도

2016-02-26 12;30;15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친노그룹이나 반노 집단 가릴 것 없이 재집권의 꿈은 입신양명과 또 다른 ‘가문의 광영’을 잉태할 회심의 모티브였다. 나아가 실질적 관리능력을 잃어가고 있던 동교동계 역시 상황의 추이를 지켜본 뒤 ‘되는 쪽’에 호남의 힘을 얹겠다고 작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진영이든 사실상 기득권을 빌미로 정치적 공격의 화살을 당기는 일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당내 장로그룹으로 자신의 자리를 호락호락 내주려 하지 않는 동교동계를 상정할 경우 ‘기득’의 의미는 희석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상은 ‘표’에 나타난 인사들이다. 이는 DJ의 위상이나 당내 역할과는 별도로 1) 민주당 창당을 전후하여 입당을 단행한 인사들과 2) 야당에서 당적을 옮긴 인물들의 면면과 함께 어쩔 수 없이 한솥밥을 나누며 조우해야 했던 3) 노무현 주변사람들의 친소관계를 체계화시킨 결과다. 이는 기왕의 민주당 토착세력을 제외한 ‘입당’세력들로 당 소속 의원 총수의 거의 절반에 달하는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애당초 ‘친노’ 반열에 속하지 않았으면서도 ‘중도’와 ‘반노’의 입지를 지탱하여 당내 역학구도를 이용,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나간 면면과 ‘그들’이 정치에 손대기 전 무슨 일을 하며 욕망의 텃밭을 일구려했는지 주목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분과 핑계로 꾸며지는 정치의 세계에 한 인간의 삶의 궤도변경을 어떻게 다시 변명할 것인지 그 한계의 확장이란 여기서 별로 중요치 않을 것이다. 단지 누가 어디서 어디로 옮기고 움직였는지 기왕의 표에 드러난 그것들과 함께 견주어 볼 일이다.

DJ 정권말기에 일어난 또 한 번의 의원당적변경은 기왕에 불붙은 신당창당논의와 내분의 파괴력을 능가할만한 효과를 발휘한다. 민주당의 전용학과 자민련의 이완구가 무릅쓴 한나라당 ‘행(行)’은 ‘둘’이라는 숫자의 제한성이나 이적 당시 그들의 소속문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특히 이완구의 경우는 애당초 자기가 떠나 온 한나라당을 다시 찾아들어갔다는 점에서 ‘연어형(?魚型)’ 계파이동의 대명사로 각인된다. 본인으로서야 평생을 따라붙는 이 같은 이력이 괴로운 일일 수 있겠지만 이 땅의 직업정치인들에게 ‘이익’이란 어떤 명분도 만들어낼 달콤한 유인요소였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당적변경(혹은 이탈)이 세상의 눈길을 사로잡은 독특함은 곧 DJ정권의 결과론적 정치한계와 직결되는 일이다. 그것은 야권 계파의 대약진으로 평가받는 김대중 정권의 공과의 한 항목으로 기록된다는 사실 말고도 그의 승리를 끝까지 모범적 민주화의 전례(前例)로 굳히는 데 장해가 된다. 사소한 부피의 ‘배반’일망정, 이들의 당적 이동은 세기의 전환도 정치현장에선 무의미하며 그걸 한때 새천년의 시작이라고 스스로 들떠 유포한 제도적 권위의 중추 역시 또 한 번의 권력교체기 앞에 무기력해져 가고 있음을 고스란히 반증한다.

김대중의 퇴장이 무색할 정도로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이적하는 경우나 한때나마 한나라당을 떠나 자민련에 몸담는 일이 자신의 삶의 모두인 양 치부하던 이의 원대복귀란 하나같이 다가오는 대권의 향배가 다시 한 번 시계추의 진동마냥 여야교체의 자연사(自然史)로 이어질 것이라고 쉽게 낙관한 결과였을 것이다. 게다가 현실은, 특히 정치현실은 세상 바뀔 즈음이면 비루하고 구차한 뒷골목 보다 요란한 환상의 메뉴를 넘쳐나도록 예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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