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의 한국 계파정치 42] 김대중 집권 초기 20명 남짓 한나라당서 국민회의로 갈아타
[아시아엔=박종성 서원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김대중의 대권 장악은 한 인간의 정치적 승리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작게는 평생 적수(敵手) 김영삼의 대권을 잇는 숙원의 해결로 인식할 일일 것이다. 하지만 크게 보면 그건 호남 계파의 일대 약진과 설욕의 정치적 기회가 밀물처럼 몰려온 대사건이다. 압박과 설움에서 벗어날 통쾌한 호재(好材)는 그러나 만만한 정치자원이 아니었다. 몸에 익숙하기만 했던 야권의 외투를 집어 던지고 이제 드디어 문제해결의 단호한 주역이자 보란 듯 군림해야 할 새로운 여권 수장으로 그의 정치적 전진은 도드라진다. 집권의 감격과 실적 창출의 강박도 여느 때보다 강했다.
누구보다 합리적 변신과 모범적 준거로 일관해야 했던 김대중의 존재감은 그러나 김영삼에게 물려받은 구제금융기 한국의 위기와 정면 대응해야 할 부담으로 가려진다. 그것은 정치적 철갑의 무게감과 동시에 이를 결코 피할 수 없다는 새로운 상황의 압박으로 구체화된다. 돌파해야 할 국가의 여건은 일상의 정치적 공방을 일삼던 과거와는 다른 틀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판’과 ‘공격’을 엄격히 구분해야 할 정치적 식견뿐 아니라 모처럼의 수권을 단행한 구 야권의 탈태와 변신를 자극한다. 하물며 ‘물고 늘어지는’ 과거의 정치체질을 가시적 성과물의 창조와 능률적 재생산으로 바꿔야 할 일이기도 했다. 아니, 김영삼 정권의 치욕적인 유증을 마치 선물처럼 어루만져야 했던 과업의 혹독함이란 곧 ‘경제의 정치적 통제 (the Political Control of Economy)’였다. 그건 곧 자본의 피폐를 권력과 지모로 돌파해야 할 새로운 관리체제의 등장이었다.
심지어 경제위기를 극복할 황금의 열쇠만 마련된다면 주변의 과오와 한계쯤은 지나치고도 남을 만큼 재정적자를 둘러싼 국가의 스트레스는 넘쳐나고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라도 과거의 정치적 악습과 체질적 모순은 용서될 지경이었다. 당면한 큰 과제에 밀려 애초의 흠결 따위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15대 대선 직후 한국사회는 흔들리고 있었다. 계파의 이동과 표류가 또 다시 반복되려 하건만 이를 제지할 의지도 기운도 엿보이지 않음은 대체 뭘 의미했던 걸까.
그것이 정치적으로 책임지어야 할 사건이라거나 사법적 판단을 요구할 만큼 예민한 대상이었다면 논란의 여지는 적잖았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정치윤리의 지탱을 생명처럼 여겨야 할 소속 정당의 현주소가 덧없는 화젯거리로 전락하는 정치현실이란 다시 암울하기만 했다. 혹여 그것이 최고 권력자의 의중이었다거나 모종의 정치적 암시에 따른 결과였다면 그건 오늘 모두에게 무엇으로 다가가는 걸까.
그것이 김대중의 정치공학이나 주변 계파 수장들의 의도적 결과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있다 하더라도 이를 확증할 정치변수들과 계파 이동을 무릅쓴 당사자들의 진솔한 고백을 기대하기란 무망할 것이다. 도리어 이는 유권자들로 하여금 환멸의 학습과 직업정치인들의 일탈이 운명이자 체질인 양, 받아들이도록 변질되고 있었다.
하필이면 정권 초기에, 그것도 평생 동안 민주와 자유 아니면 평등과 인권을 입버릇처럼 부르짖던 인물이 권력의 정상에 자리한 마당에 스무 명도 넘는 의원들이 이권과 ‘자기안일’만 바라보며 기꺼이 당적을 버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기왕이면 집권여당에 몸담고 싶은 욕망은 졸지에 야당이 되어버린 한나라당에서 국민회의로 당적 이동을 재촉하는가 하면, 장관과 상임위원장을 보장하거나 심지어 개인비리수사 무마를 대가로 당 소속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촌극마저 불사한다. 게다가 몸값 흥정까지 마다않는 정치적 비행(卑行)경로는 일상의 상상을 벗어나고 있었다.
모두가 정치개혁에 동참한다는 미명 아래 말로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수식·강화하고 있었지만 속내는 한결같이 돈과 자리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 아니라고 둘러대는 일도 더는 힘겨웠다. 그 결과, 15대 국회는 정당별 의석 분포뿐 아니라 지배구조에도 적잖은 변화를 겪는다. 앞서 밝혔듯, 그것은 ‘여소야대-여대야소’를 둘러싼 저 오랜 시소(seesaw)의 지속과 그에 따른 정치보복 아니면 반사이익의 지탱으로 점철된다.
권력은 순환하고 엘리트는 교체되는 게 정치질서운행의 자연스런 법칙이라 하더라도 여야 의석수를 둘러싼 원내 역학구도 변화는 희화적이었다. 부침을 거듭하는 현상의 반복도 꼭 조작된 ‘운명’ 같았고 그에 따라 희비 엇갈리는 권력의 속내 또한 영락없는 신의 장난처럼 얄궂기만 했다. 약속이나 한 듯, 여야 의석은 정권의 변화에 따라 향배를 달리했고 정치적 이해관계의 유·불리에 따라 과반이라는 마(魔)의 ‘널’을 넘나들었다.
김영삼 정권 출범이 모처럼의 재문민화로 관심을 모았다면 야권의 정권 접수가 여소야대로 출발하는 이치는 더더욱 난처한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쉽사리 불러낼 의회권력도 아니요, 정치공학이 능사(能事)라 한들 판에 짜맞춘 듯 힘의 안배를 임의롭게 조율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발적 선택을 빙자한 ‘정치적 인간’들의 행보 변화는 의회를 자유롭게 통제하고픈 권부의 의지와 기이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 변화를 주도한 인물들의 기민한 행보는 권력의 ‘덧없음’과 극도의 이기주의를 영락없이 반영한다. 하지만 모두 한결같은 까닭으로 자신의 행적을 변명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고파도 그만둬야 할 ‘정치’가 눈에 밟히는 경우도 있었고, 거저 얻은 ‘권력’이 입고 있는 옷보다 부담스런 사례들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 있는 자리보다 안온한 미래를 예약하고자 알아서 미리 떠나려는 성급한 위인들도 발에 채이도록 넘쳐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