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갈등을 화해로 바꾸는 3가지 비법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바야흐로 갈등의 시대다. 개인 간, 계층 간, 종교 간, 국가 간 갈등 등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강등이 횡행하고 있다. 갈등을 화해로 풀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갈등과 화해의 뜻을 살펴보자. 갈등이란 칡(葛)과 등(藤)나무가 합쳐진 단어다. 칡과 등나무가 서로 복잡하게 얽히는 것과 같이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의지나 처지, 이해관계 따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충돌을 일으키는 것을 이른다. 화해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다툼을 그치고 서로 나쁜 감정을 푸는 것을 말한다.
병신년(丙申年)은 붉은 원숭이 띠다. 붉은 색은 도전과 열정을 나타내고, 원숭이는 재주와 지혜를 상징하기에 올해는 지혜를 갖고 도전의 한 해가 되기 때문에 어쩌면 갈등이 더 심해질 지도 모른다.
갈수록 세계는 저성장, 저물가로 인해 경제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갈등과 분쟁이 더욱 고조되어가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도 국가 간 긴장은 군사긴장으로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이어 이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사정거리 1만3천km에 달하는 장거리 탄도탄 실험을 한다고 한다.
이를 말리고 제지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인데 중국은 여전히 북한 제제에 선뜻 동참하려고 하질 않는다. 우리나라는 OECD 34개국 중 사회갈등지수가 2위다. 그리고 사회 관리지수는 27위 수준 속에서 사회갈등 비용이 최대 240조원에 달하는 상황인데, 한반도 평화는 요원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화해’가 아닐까? 유사 이래 갈등은 한 순간도 멈춘 적은 없다. 무엇으로 이 갈등을 풀어나갈 것인가? 그 방법은 화해다. 수많은 갈등구조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절대적인 해결책이 바로 화해다. 갈등의 원인은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하지 않고, ‘틀린 것’으로 정죄(定罪)하는 데에 있다.
그래서 갈등을 푸는 방법은 자기를 살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대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분란만 커지고 갈등이 깊어진다. 인연의 매듭을 푸는 것은 상대를 바꾸려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고 나를 바꾸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어찌 보면 수많은 갈등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 사람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일어난다.
“그건 도저히 이해가 안 돼 이해할 수 없어!” 그렇다. 모든 일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입장 바꿔 생각하면 이해될 수 있는 일도 많다. 매사에 서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것이다. ‘저 사람은 저렇게 다르게 사고하고 다르게 행동하는구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기는 것이다.
그 사람이 바뀌길 바라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갈등을 풀고 애초에 갈등을 만들지 않는 방법이다. 갈등은 대화로 푸는 것이 아니다. 이해와 양보로 푸는 것이다. 이해가 없는 대화는 논쟁에 불과하다. 양보가 없는 대화는 더 큰 갈등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특별히 남녀간 문제는 대화를 풀어지지 않는다. 관점과 접근방식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는 문젯거리를 놓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꼬이게 되어 있다. 어쩌면 대화가 되는 것이 비정상이고 안 되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른다. 만일 별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문제에 부딪혔을 때 쉽게 갈등이 해결이 된다면 상대방이 인격적으로 대단히 성숙해 있거나 두 사람 다 혹은 한 사람이 눈이 콩깍지에 씌었기 때문이다.
모든 대화의 근본은 이해와 양보다. 그렇다면 이해는 무엇일까? ‘이해 안 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이해다. 우리가 갖게 된 생각과 가치관의 배경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럼 양보는 무엇인가? ‘양보가 안 되는 것을 양보하는 것’이 양보다. 양보할 만한 것이었으면 싸우지도 않는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갈등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존재니까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중요한 것은 갈등이 너무 깊어져 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골이 생기거나, 서로를 겨누는 화살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자기 기준만을 생각하며 상대에게 강요하거나, 비난한다면 갈등은 해소되지 않는다.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상대의 기준을 존중하면서, 내 중심으로만,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꼬아놓은 내 마음부터 차근차근 풀어내는 것이다. 그 방법은 첫째, 내가 가지고 있는 일부를 상대편과 나누어 가짐으로써 우리가 함께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둘째,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옛말과 같이 서로 칭찬해 주고 서로가 좋은 말을 주고받으면서 친밀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셋째, ‘우리는 남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인류가 모두 한 가족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세상이 더 화목하고 평화롭게 될 것이다.
사람이 서로 갈등을 겪을 때에 분을 이기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맞서 싸우지 않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참아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업(業)이 쉬워진다. 그렇지 않고 지금 맞받아 갚아버리면 상대가 또 갚게 된다. 이같이 서로 갚기를 쉬지 아니하면 그 상극의 업이 끊일 날이 없다.
상극의 마음이 화(禍)를 불러들이는 근본이 되고, 상생의 마음이 복을 불러들이는 근본이다. 그러므로 모든 갈등을 화(和)와 유(柔)로 풀면 능히 갈등을 이길 수 있고, 촉(觸) 없이 그 일을 성취할 수 있는 대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