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사자방 의혹’과 경봉 스님 ‘인생의 4대의혹’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이명박 정권의 이른바 ‘사자방 의혹’이 있었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요. ‘사자방’이란 ‘사대강 의혹, 자원외교 의혹, 방산비리 의혹’ 등 세 가지 의혹을 총칭한 것이다. 그런데 나라에만 의혹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4대의혹’도 있다.

인생의 4대의혹이란 첫째, 나는 어디서 왔는가? 둘째, 나는 어디로 가는가? 셋째, 그럼 언제 가는가? 넷째, 나는 누구인가다. 과연 우리 중에 이 네 가지 의혹을 푼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그분이 바로 부처이고 보살이다.

지혜의 칼로 이 인생의 4대의혹을 풀고 불조(佛祖)를 침묵시킨 대선지식(大善知識)이 있다. 바로 경봉(鏡峰, 1892~1982) 대선사(大禪師)다. 경봉은 이른바 ‘인생의 4대 의혹’ 즉, “자기가 자기를 모르니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누구인가?” “두렷이 밝고 지극히 신령한 이 마음자리가 어디에 있다가 부모의 태중(胎中)으로 들어간 것인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죽는 날은 언제인가?”의 네 가지를 화두로 걸고 말 못할 고행을 다 했다.

경봉은 다른 세 가지는 아니더라도 ‘이 몸을 끌고 다니는 참된 주인공’은 반드시 알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번민을 거듭하던 경봉은 어느 날 “한 세상 태어나지 않은 셈치고 참된 주인공을 찾을 때까지 목숨을 걸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 보리라. 그리 하다가 죽으면 또 어떠하리” 라는 서원을 세웠다.

정진을 거듭하던 어느 날 마침내 화두가 뚜렷이 들리기 시작했다. 오매일여(寤寐一如), 이미 그에게는 밤낮의 구분이 사라졌다. 닷새쯤 흘렀을까. 갑자기 벽이 무너진 듯 시야가 넓게 트이더니 드디어 ‘일원상’(一圓相)이 오롯이 나타났다.

1927년 겨울의 일이다. 자타(自他)와 주객관(主客觀)이 모두 무너진 경계가 하나의 둥근 원으로 표출된 것이다. 불이(不二)의 경지를 맛본 경봉은 한 수의 게송(偈頌)을 읊었다.

“天地口呑是上機/ 石兎乘鶴遂泥龜/ 花林鳥宿江山靜/ 蘿月松風弄阿誰”(천지를 삼키니 큰 기틀이로다./ 돌 토끼 학을 타고 진흙거북 쫓아가네./ 꽃 숲엔 새가 자고 강산은 고요한데/ 칡덩굴 달과 솔바람 뉘라서 완상하리.)

그러나 좋은 경지를 맛보긴 했지만 왠지 막막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 뭣꼬’의 화두는 여전히 의심의 덩어리가 되어 캄캄한 절벽으로 남아있는가? 경봉은 다시 좌정을 하여 화두삼매(話頭三昧)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열흘쯤 흘렀을까? 새벽 두시반경 바람도 잠이 든 듯 잦아든 시각에 갑자기 ‘파바바박’ 하며 촛불이 크게 흔들렸다. 그 순간 경봉은 문득 세상의 열림을 맛보았다. 비로소 개안(開眼)의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경봉은 무릎을 치고 일어나 얼씨구나 어깨춤을 추었다. 창호지로 바른 문짝을 찢어질 만큼 호탕하게 웃었다.

깨달음의 열락(悅樂)을 만끽한 경봉은 그 솟구치는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다. “我是訪吾物物頭/目前卽見主人樓/呵呵逢着無疑惑/優鉢花光法界流”(내가 나를 온갖 것에서 찾았는데/ 눈앞에 바로 주인공이 나타났네./ 허허 이제 만나 의혹 없으니/ 우담바라 꽃빛이 온 누리에 흐르네.)

경봉의 깨침은 여느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의문에 가득찬 자기 자신을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벼랑 끝까지 몰고 간 끝에 생생하게 확인한 체험견성(體驗見性)이다. 그의 견성은 자기를 관념적으로 확인하는데 그친 것이 아닌, 한점 의혹도 남아있지 않은 깨달음이었다. 그는 마침내 조사선의(祖師禪義)를 체득한 것이다.

한 마디로 위로는 완전한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上求菩提 下化衆生)의 모범적인 삶의 궤적을 보여준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이룬 후 경봉은 마음 속에 있는 또 하나의 경봉, 즉 진짜 주인공과 수시로 문답시(問答詩) 형식의 태평가(太平歌)를 부르며 깨달음의 경지를 거듭거듭 확인하는데 추호의 게으름이 없었다.

“하하 우습다/ 내가 그대 집 속에 있었건만/ 그대 눈이 밝지 못해/ 늦었을 뿐이네.” 이처럼 경봉은 단순히 주인공을 깨달아 아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주인공과 하나가 되어 마음대로 활용하는 경지를 만끽한 것이다.

그의 태평가는 그대로가 자유롭고 걸림 없는 도인의 노래였다. 모든 번뇌의 적을 물리치고 주인공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걸림 없이 사는 도인의 경지, 그가 살아온 90여 년의 생애는 무애(无涯)의 경지를 노니는 불보살의 삶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세수 91세 되던 해(1982년 7월), 입적이 가까웠음을 느낀 효행상좌 명정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스님 가신 뒤에도 스님을 뵙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주위를 둘러보던 경봉은 잠시 침묵 후 입을 열었다.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그날 새벽 경봉은 마치 옷을 갈아입듯이 이승의 인연을 접었다.

경봉은 입적 16년 전(1966년) 후학들이 자신의 수의(壽衣)를 짓던 날, 이미 일지(日誌)를 통해 생사의 경계를 넘어선 한편의 글을 남겼다. 바로 경봉 대선사의 열반게(涅槃偈)다. “옛 부처도 이렇게 가고/ 지금 부처도 이렇게 가니/ 오는 것이냐 가는 것이냐./ 청산은 우뚝 섰고 녹수는 흘러가네./ 어떤것이 그르며 어떤 것이 옳은가 쯧!/ 야반삼경에 촛불 춤을 볼지어다.”

옛 선사 뿐 아니라 수행인은 모름지기 이런 치열함이 있어야 한다. 그런 대정진(大精進) 없이 결코 생사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이다. 경봉 대선사의 ‘인생 4대의혹’을 통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가, 어디로 가는가, 그럼 언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를 확연히 깨달았는지?

‘인생의 4대의혹을 풀지 못하면 언제까지나 범부(凡夫) 중생(衆生)의 탈을 벗을 수가 없다. 옛 부처나 지금 부처나 모두 한 부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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