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국가 위기와 예수의 무화과나무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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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엔=지춘경 포도나무교회 목사] 올해 1월4일 새벽 4시 반 인도 서북부 미얀마 접경 지역에서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최소 4명이 숨지고 1백여명이 다쳤다고 한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곳은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맞물려 마찰하면서 지진이 빈발하게 일어나는 지역 중 한 곳이다. 근처 파키스탄에서는 2005년 대지진으로 7만5천여명이 사망했으며, 지난해 4월에는 네팔에서 강진이 일어나 9천여명이 숨졌다.

그러면 이번에 지진으로 숨진 사람들의 죽음은 자신의 죄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까닭은 예수 당시의 히브리인들은 “극한 재앙이 죄인에게만 닥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하여 여기에 대한 답을 주고 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비유

예수의 비유는 이렇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3년이 되도록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자 이 사람은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그러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누가복음 13:7)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포도원지기가 대답하기를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누가복음 13:9)라고 대답하였다.”

비유의 주인공인 무화과나무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포도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비유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열매 맺지 못하는 삶을 훈계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비유는 교회와 성도들을 교훈하고 있다. 비유에 나오는 과수원지기는 교회의 머리로 교회를 살피는 예수를 의미하며, 포도원은 하나님의 교회를, 무화과나무는 성도들을 상징한다.

이 말씀을 하기 전에 예수는 두 사건에 대해 말한다. 한 사건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에 관한 것이다.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진행하면서 제물을 드리던 중에 빌라도의 군사들에 의해 살육당하여 그들의 피가 그 제물에 묻힌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그 망대에 18명이 치여 죽은 사건이다.

예수는 이 두 사건을 예로 들어 죽음의 문제를 죄와 연결지어 말한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누가복음 13:2).

죄의 문제는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이어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누가복음 13:4)고 말한다. 실로암 망대 사건에 대해서도 똑같이 회개하라고 말한다.

결국 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 비유는 두 사건의 죽음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 비유를 통해서 “‘죽음’이 이처럼 갑자기 오므로 빨리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 아닌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할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위의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가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하여 말하는 의도는 “회개하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면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말했다. 예수도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한 첫마디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것이었다. 세례요한과 예수의 첫 화두가 왜 회개에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회개’가 죄인들의 영적 피흘림이며 회개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장22절은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한다. 구약의 중심은 레위기다. 레위기서는 피 흘림으로 가득 차 있다. 왜냐하면 피흘림이 있어야 죄가 사해지고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다.

회개하면 왜 천국이 가까워질까? 그것은 회개하면 죄와 사망이 더 이상 내 안에서 왕노릇하지 못하며 그 잘난 자아가 살아서 뱀처럼 머리를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개한다”는 말은 돌이킨다는 뜻이다.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온다는 말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내가 선악판단의 주인이 되어 살았지만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주인 되게 하겠다는 고백이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임하므로 귀신이 쫓겨나고, 죄로 인한 병이 치유되며 상처들이 별이 되어 반짝이므로 생명의 싹이 자라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이렇게 힘든 것은 회개가 없기 때문이다. 회개가 없으므로 성도들이 도저히 변하지 않는다. 머리와 입만 있지, 가슴이 없고 행실의 열매가 없다. 그리스도인들에게 회개가 없으므로 ‘자기 부정’과 ‘내려놓음’이 없다. 따라서 자기 부정과 내려놓음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십자가의 체험이 없다. 이에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고 그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회개를 통해서만 자기 부정이 되기 때문에 회개는 예수를 만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땅에서 높아지고, 존중받고, 부유해지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자신 속에서 살아나는 자아를 부정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죄로 가득한 자아와 세속적인 욕심 및 이기적인 가치관을 죽일 때 비로소 나의 관점이 타인을 향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회개를 통해 천국이 가까워지는 영적원리다.

아름다운 행실의 열매 맺어야

우리는 평생 자신의 고집 속에 갇혀서 불행한 삶을 살다간 사람들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그는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 자신이 선악판단의 중심이 됨으로써 자신의 의에 따라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다간다. 자신이 선악판단의 주체가 됨으로써 남에게 변할 것을 요구할 뿐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평생 남 탓만 하다가 죽는다.

갈라디아서 2장20절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려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내가 주님과 함께 죽어 나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희생제물이 되게 하겠다”는 고백이다.

이생의 삶은 육신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뿐이다. 이것을 죽이지 않고서는 결코 나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산제사가 될 수 없다. 가장 가치 있는 주님과의 삶을 위하여 나를 부인하고 내려놓겠다는 고백의 실행이 바로 산제사이며 행실의 열매다.

“그리스도와 함께 산다”는 말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산다는 것을 뜻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성도는 예수와 함께 부활도 체험하여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에 죄가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의가 살아나는 것이다. ‘예수의 의’는 사랑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의’는 내가 선악 판단의 주체가 되는 ‘이기적인 의’였지만, ‘예수의 의’는 공의(公義) 안에 ‘사랑이 있는 의’다. 그럼으로 예수의 의가 자신에게 전가되면 사랑의 실천이 최우선 목표가 된다. 나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나아가 북한의 고통 받는 주민들과 아프리카 오지에서 굶주리는 어린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을 향한 소망과 꿈을 꾸며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포도원에 심어지기 전에는 세상 풍속을 따라 이 세대를 본받아 살아왔으나 회개하고 난 후에는 행실의 열매를 맺는다. 과거의 행실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골로새서 3장8~10절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바울 사도는 “사람이 더러운 옷을 벗고 새옷으로 갈아입듯이 그리스도인은 과거의 부끄러운 행실을 벗어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창조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빛은 진리이며 말씀이다. 말씀을 받아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야 빛 가운데 행하며, 빛 된 행실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찍어버리겠다” 는 의미는?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겠다’는 말은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의미한다. ‘버린 바 된다’는 말씀이다. 설사 구원이 있더라도 불 가운데서의 구원이다. 뜨거운 불속에서 발가벗겨진 채로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죽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을 날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죽음은 갑자기 오는 것이다. 인도에서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을 날을 알지 못했던 것처럼 죽음은 갑자기 온다. 그러므로 심판의 그 날을 대비하여야 한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사람의 일이지만 그 계획을 이루어 가는 분은 하나님이다. 아담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말했다. <도덕감정론>에서는 “신은 전능하신 사랑의 존재로서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은 개개인의 이익추구의 에너지를 인류 일반의 이익으로 연결시키는 통합자”라고 말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것이다. 2016년 남은 한달, 우리의 등 뒤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써 아름다운 행실의 열매를 맺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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