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언제든 뛰어오를 도약대에 섰다

[Country in Focus] 비약적 국가발전 시간문제…3대 선결과제

밖에서 보는 이란의 얼굴은 그닥 아름답지 못하다.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불가촉천민 국가(pariah state)’로 여겨진다. 핵무기 개발로 유엔과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탓이다.

이란이 외부인의 눈에 곱게 비치지 않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이슬람 성직자인 물라(mullah)가 지배하는 신정국가, 여자들에게 히잡을 쓰도록 강요하는 곳, 외국 작가와 만화가가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욕했다고 공개 암살령을 내리는 나라, 이슬람 광신도들이 미국을 ‘그레이트 사탄’이라 부르며 성조기를 짓밟는 나라, 이스라엘을 지상에서 절멸하겠다고 공언하는 나라, 테러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배후로 의심받는 나라 등등의 인상은 어제오늘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 대한 바깥세상의 헐뜯기는 간단없이 이어져 왔고 이란은 실상 그런 비난의 소지를 제공해 왔다.

정작 이란에 들어가서 본 이란의 모습은 어떨까. 밖에서 생각하던 추악한 얼굴과는 판이하게 아름답고 친절한 나라라는 느낌을 갖는 게 나만은 아닐 것이다. 공항 안전검색에 관한 한 가장 여유로운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남들에게 테러 국가라는 그릇된 비난을 받다보니 테러리스트 공격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일까? 국내선 비행기 타는데 신발을 벗으라고도 하지 않고, 허리띠를 풀라고 하는 법도 없다.

이란은 로마신화에서 나오는 정월의 신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밖에는 할퀴어지고 뒤틀린 얼굴, 그리고 안에서는 온화하고 친절한 얼굴이 둘 다 모두 이란의 현재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안과 밖 다른 야누스의 두 얼굴

그런 이란의 발전 잠재력은? 이란은 국토 면적 한반도 7.5배, 인구 8000만 명인 대국이다. 그런데 ‘대(大)이란’ 또는 ‘이란땅(Iranzamin)’이라 부르는 곳은 이란 국경 밖에도 있다. 조지아·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등 코카서스 3국은 과거 이란 영토였을 뿐 아니라 지금도 종족·언어·문화적으로 깊은 유대를 갖고 있다. 이란 서북지역에 아제르바이잔이란 주가 있을 정도다. 터키말을 쓰는 아제리인들은 테헤란 인구의 25~33%이고 최고지도자 알리 카메네이 역시 아제리인이다. 이라크 동쪽 절반은 역사적으로 이란 영토였고, 지금도 이란 계통 주민들이 많이 산다. 또 이라크 국민 다수가 이란과 같은 시아파여서 종교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북쪽 투르크메니스탄·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 일부는 이란 영향권이라 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서부 파키스탄은 이란 계통의 한 갈래인 파슈툰인이 주종을 이룬다.

이란은 이렇듯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군사적 힘을 키울 때 직간접적으로 입김이 닿을 수 있는 주변국을 많이 갖고 있다. 당분간은 ‘내 코가 석자’ 처지를 면하기 어렵겠지만 10~20년 안에 근본적으로 변화가 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결과제가 있다.

첫째, 이슬람 성직자가 국가지도자를 맡고 정부 요직을 독점하는 신정체제는 시아파 이슬람 전통 때문에 완전 폐지가 어렵다 하더라도 구조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이란이 신정체제를 취한 데는 그럴만한 역사적 연원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 규범·상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는데다 물라들이 근본주의 초강경파 노선을 택함으로써 안팎에서 거부반응을 낳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고지도자가 일상적 통치에 개입하지 않는 체제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 또 최고지도자의 선택에 어차피 혈통이 개입하는 것이 아닌 바에 무협소설에서 장문인 뽑듯 하지 말고 국민적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쪽으로 개선을 검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둘째, 미국과의 관계개선이다. 대미 관계는 1979년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 이후 개선 조짐조차 없는 상태다. 지난 34년 간 이란은 미국에 대해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 부었고, 비난과 부정적 태도를 견지했다. 그러나 실제 이란인들에게 물어보면 미국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 태도를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과거 냉전시대 소련이나 중국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물론 이란이 미국과 관계개선을 원한다 해서 쉽사리 성사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는 이스라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생존을 내세워 아랍 주요 국가들을 하나씩 무력화하고 이제 이란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지 않고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쉽지 않다.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관건

이란은 종교적 열정을 정치 자본으로 삼는 체제이기 때문에 이스라엘과의 관계 변화를 꾀하는 것 자체가 자기 부정이고 어떻게든 움직여 볼 여지가 좁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이슬람 역사를 보면 종교적으로 용납하기 어려운 세력과 손잡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에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이미 이라크에서 미군이 전면 철수한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미군이 물러날 경우 새로운 정국이 펼쳐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이라크 반정부 세력이나 아프가니스탄 반군은 모두 수니파다. 따라서 이란의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이라크 정부가 미국의 지원이 충분치 못하다고 느끼면 이란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 아프가니스탄도 하자라족을 비롯한 북부동맹 세력이 다시 활성화돼 이란과 손잡을 수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친이란 입장을 취하게 되면 이란은 더 이상 고립된 세력이 아니다.

이란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한다고 해서 동맹이나 우방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해 부질없는 구두선과 지탄을 그만 두고 미국과 정상적 관계를 맺게 되면 경제·외교상 많은 이득을 얻게 된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종교적 신념이나 국가적 자존심으로 다루지 않는 실용적 접근은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실질적 혜택이 뒤따를 것이라 전망할 수 있다.

셋째, 수출산업 육성이다. 현재 이란경제는 석유·천연가스와 석유화학 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경제제재 때문에 국제 금융거래를 못하지만 국내 은행은 매우 많다. 테헤란은 ‘세계 대도시 가운데 은행이 가장 많은 도시’라는 평이 있을 정도다. 테헤란의 바자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가운데 하나다.

마샤드, 이스파한, 시라즈 등 다른 도시의 바자르도 규모가 크고 거래가 활발하다. 바자르뿐 아니라 길거리마다 각종 상점이 즐비하다. 이처럼 상업활동이 분주한 것은 내수시장이 일정한 규모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각종 거래제한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상당한 수준이다.

여기에 수출산업을 적극 개발해 보탠다면 이란경제는 금세 날개를 달 수 있다. 수출가능 품목은 생산량 세계 1위인 피스타치오 등 견과류와 말린 무화과를 포함한 농업제품이 있고 페르시아 양탄자를 전 세계에 내보낼 수도 있다. 스웨터 등 니트 섬유제품과 각종 피혁제품도 발전 가능성이 있다. 관광산업 또한 훌륭한 외화획득 섹터다.

세계 최대 테헤란 바자르 ‘활기’

바자르에서 만난 상인은 “터키는 1년 관광객이 2000만 명인데 이란은 50만 명에 불과하다. 이란의 관광자원을 감안하면 1000만 명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란의 외국인 입국자는 200만 명이었다고 한다. 50만 명이 어디서 나온 숫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웃 국가의 순례객과 비즈니스?입국자를 제외한 순수 외래 관광객이 50만 명 미만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있는 듯했다.

이란의 앞날은 밝다. 이란의 두 얼굴 가운데 밖에서 본 모습은 일그러진 거울에 비친, 왜곡되고 과장된 얼굴이다. 이란은 동남아에서 버마가 그렇듯이 서아시아의 숨은 보석이다. 버마에 비한다면 발전 진도가 훨씬 빠를 것이다. 출발점이 버마와 비길 수 없을 정도로 앞서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버마 만달레이 길거리는 지저분하다. 시 정부가 중년 여성들을 고용해 아침마다 길거리 청소를 하지만 사람들은 전혀 구애받지 않고 쓰레기를 버린다. 그러나 이란 시라즈 거리는 깨끗하다. 건물이 좀 낡았고 고층빌딩이 없을망정 사람들이 길거리에 쓰레기 버리는 것은 못 봤다. 대중교통 역시 다양하고 편리하다.

그 진가가 감춰져 있다는 것 외에는 이란과 버마의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버마가 이제 막 걸음을 뗀 어린애라면 이란은 이미 군대 갈 나이가 다 된 청년이다. 지금은 비록 풍족하게 살지 못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열심히 일하면 밝은 앞날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인프라도 꽤 잘 돼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무엇보다 물가가 싸다. 아마 한 10년쯤 지나면 이런 모습이 이란에서도 사라질 것 같다. 그전에 꼭 한번 다녀오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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