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38] 법은 거미줄?···한국인 70% “법적용 공정하지 않다”

한국 법치주의의 현실과 ‘사기’의??법치관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얼마 전 외신이 전한 한 토막의 일화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용인 즉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보스턴 자택 앞길의 눈을 미처 치우지 않아 벌금(한국의 과태료에 해당)을 물게 됐다는 기사였다. 미국 국무장관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2015년 1월 27일 케리 장관은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국왕 사망에 따른 조문외교를 펼치고 있었다. 그날 미국 보스턴 일대에 폭설이 내려 시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럼에도 케리 장관 집 앞의 눈이 방치되자 한 시민이 민원을 제기하고 이에 시당국은 ‘눈치울 때까지 매일 벌금 50달러’라는 시 조례에 따라 하루치 벌금을 통지했다. 케리 장관 측은 즉각 잘못을 인정하고 벌금을 납부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이런 일이 한국에서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우리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시행 중인 제설除雪조례가 있다. 법은 그 위반행위의 경중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법적용의 형평성이 살아 숨 쉬는 사회에서는 당연한 법치의 한 단면이지만 왠지 우리에게는 낯선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 것은 나만의 소회가 아닐 것이다.

생각이 이에 미치니 5, 6년 전인가 CNN화면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다. 미국 연방하원의원 5명이 워싱턴DC 수단대사관 앞에서 인권탄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이다. 경찰은 의원들이 폴리스라인을 넘자 망설임 없이 의원들의 손을 등 뒤로 모아 노끈형 수갑을 채웠고 의원들은 순순히 체포에 응하고 있었다. 의원들 중에는 민주당 하원 원내서열 10위 안에 드는 여당 실세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도 가능할까?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 예를 하나 더 들어 보겠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버트런드 러셀의 사례

영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이 88세 되던 1961년의 일이다. 러셀은 당시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주도하던 중 그해 2월 18일 런던의 국방부 청사 앞에서 연좌시위에 참석, 대중에게 불법행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8월 12일 중앙경찰재판소에서 징역 1월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내려지자 방청객 한 사람이 외친다. “부끄러운 줄 알라. 88세 노인에게 징역이라니!” 그러자 판사가 응수했다. “나잇값을 하시오.” 판결 후 러셀은 1주일로 감형돼 병원구역에서 복역했다.

방청객과 판사의 재치문답을 소개하자는 게 아니다. 이 사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영국의 법치주의 현실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학자의, 평화를 위한 핵무기 반대라는 정당한 목적을 가진 행동이라도 법이 허용하지 않는 불법적 수단에 의한 것이라면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는 영국 법치주의의 전통이다. 아울러 법은 공정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법치확립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한국인 70%는 법적용이 공정하지 않다고 보아

나는 법치의 핵심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싶다. 첫째 법은 공정하고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법적용의 일관성, 형평성), 둘째 법은 투명하고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한다(법의 개방성, 투명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의 적용은 효율적이고 시의적절해야 한다(법적용의 적시성, 경제성)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법적용의 공정성, 일관성이다.

법제처장으로 있을 때 한국법제연구원에 의뢰해 국민의 법의식에 관해 조사한 적이 있다(2009년). 그때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약 70%는 법이 공정하지 않다고 보고 있으며, 3명 중 1명은 법대로 살면 손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바로 많은 국민들은 법적용의 형평성, 일관성 결여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중고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감옥에 10년을 살더라도 10억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20% 가까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참으로 충격적이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의 기성질서에 대한 불신이자 사회적 신뢰의 위기다.

그 후 2012년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고등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더욱 놀랍다. 이들 고교생 94%가 권력과 돈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10명 중 7명은 법률이 공평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무려 90%가 법이 잘 안 지켜지고 있으며 정치인, 고위공직자가 가장 법을 안 지킨다고 답했다. 고교생들 역시 법적용의 형평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지금 국민의 법의식을 조사한다 하더라도 법과 법치주의에 대한 불신은 이 보다 높았으면 높았지 낮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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