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43] 새 대통령이 한나라 명재상 ‘조참’에게 배워야 할 것은?
귀한 것은 맑고 고요하다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소하가 한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조참은 제나라의 승상에 봉해졌다. 제나라의 도혜왕은 나이가 어렸으므로 조참이 여러 유생들을 불러들여 나라의 안정을 꾀할 방도를 모색하였다. 그러나 여러 유생들의 의견이 분분해 조참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 교서膠西에 갑공蓋公이라는 사람이 황로학설에 정통하다는 말을 듣고 조참은 그를 불러 조언을 구했다. 갑공은 조참에게 “국가를 다스리는 이치로 귀한 것은 맑고 고요한 것이니 그렇게 되면 백성들은 스스로 안정된다”고 일렀다. 조참은 갑공의 말을 받아들여 제나라를 안정되고 편안하게 만들어 백성들로부터 현명한 승상이라고 칭송을 받았다.
귀한 것은 맑고 고요하다는 갑공의 말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더럽고 혼란한 것이 귀할 수는 없다. 문제는 맑고 고요하다는 추상적인 정의를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한나라 효혜제 2년에 소하가 죽었다. 이 소식을 들은 조참은 자신이 곧 한나라의 재상이 될 거라며 하인에게 행장을 꾸리도록 재촉했다. 악군이 유방에게 소하가 첫 번째이고, 조참이 두 번째라 했던 것처럼, 소하가 없는 한나라의 재상 자리는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고 조참은 판단한 것이다. 제나라를 떠나기 전 조참은 자신의 후임에게 “제나라 감옥과 시장은 간사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그러한 곳에 대해서는 삼가고 소란스럽게 해서는 안 될 것이오”라고 당부하였다. 이에 후임자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그런 사소한 것보다 더 큰 것이 무엇이 있겠냐고 묻자 조참은 “감옥과 시장이라는 곳은 선과 악이 모두 용납되는 곳이오. 만약 당신이 그곳을 소란스럽게 한다면 간악한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 용납될 수 있으리오? 나는 이 때문에 이 일을 우선시하여 말한 것이오”라고 답했다.
백성들의 삶을 소란스럽게 만들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안정이라는 것이 조참의 생각이다. 감옥과 시장은 아주 특수한 곳으로 선과 악이 용납되는 곳인데, 이를 무시하고 악을 소탕한다는 등의 이유로 그곳을 소란하게 한다면 다른 곳으로 악의 영향이 번져 나라가 일시에 혼란스러워 진다는 게 조참의 논리다.
소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은 화합을 해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책 중의 하나가 정부조직법을 다 뜯어고쳐서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등을 없애고 각 부처를 통폐합하여 이름마저도 헷갈리게 지은 것이다. 그 부처들이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동력이었는데 그것을 통폐합시킨 것은 국정은 물론 국민들의 삶을 혼란스럽게 만든 처사다. 소란은 분열을 일으킨다. 소하가 죽은 뒤 조참은 소하가 만든 법령과 제도를 바꾸거나 고치는 일이 없었다. 굳이 고칠 이유가 없는 제도를 이전 정권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일부러 바꾸는 일은 국력의 낭비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이 있어 바꿀 것은 엄격하게 바꾸는 것이 지도자의 바른 태도다.
소규조수蕭規曹隨의 지혜
조참은 한나라 제후국의 관리 중 언사가 질박하고 중후한 자는 기용을 하고, 언사가 야멸차고 명성만을 추구하려고 하는 자는 모두 배척하고 쫓아냈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사소한 잘못을 덮어 주어 소란을 만들지 않니다. 이로 인해 그가 관리하는 상국부相國部에는 거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참은 정사를 돌보기보다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보내는 일이 많았다. 이에 효혜제가 조참의 아들에게 대체 무슨 마음으로 정사에 등한한 지를 알아보라 지시를 내렸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묻자, 조참은 노여워하며 아들에게 2백대의 채찍질을 가한 뒤 천하의 일은 네가 말할 것이 못된다고 꾸짖었다.
그 후 조참은 효혜제를 알현한 자리에서 소하와 자신 중 누가 더 현명한가를 물었다. 효혜제는 소하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자 조참은 “고제와 소하가 천하를 평정하였고, 법령도 이미 명확해졌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팔짱만 끼고 계시고 저희 대신들도 직책만 지키면서 옛 것을 따르기만 하고 바꾸지 않으려고 하니, 이 또한 옳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한 고조 유방과 소하가 이미 법령을 명확히 했는데 지금에 와서 정사를 맡았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게 그것을 바꿀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라는 답이다. 그러한 연유로 자신은 옛것을 따르고 최소한의 직책만 지키며 유유자적하고 있는 것이지 정사에 등한한 것이 아니라는 조참의 해명은 언뜻 보면 게으른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소하보다 못하다는 것을 진실로 인정을 했기에 그와 같은 답을 할 수 있었다.
조참은 타인의 공을 인정할 수 있는 고결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다. 조참이 언사가 그럴싸하고 명성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내친 이유는 그 사람들이 사회를 소란스럽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것을 이미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맑고 고요함은 질박하고 중후함에 있다. 명성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행동은 경박한 경우가 많다. 자신의 공을 내세우려고 남의 공을 깎아내리는 사람에게 신의란 있을 수 없다. 조참이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소하를 시기하여 그의 법령을 무시했다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규蕭規’보다 어려운 것이 ‘조수曹隨’다. 뛰어난 법령을 만든 것보다 그것을 지켜가는 게 더 힘들다. 조참의 정책으로 인해 평화를 얻은 한나라 사람들은 노래를 지어 그의 미덕을 다음과 같이 칭송했다.
소하가 법령을 제정하였으니
명백하여 한 획을 그은 것 같네
조참이 그를 대신하여
지켜 가며 바꾸지 않았네.
그 맑고 고요함대로 정책을 집행하니
백성들이 한결 편안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