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44] ‘과거청산’ 명목으로 전직 대통령 법정에 세우는 나라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모든 법령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은 상황에 의해서 결정된다. 바꾸지 않고 지키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고, 개혁을 통해 잘못된 것을 과감하게 바꾸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다. 우리가 ‘소규조수’의 고사에서 배워야할 것은 백성의 편안함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내는 통치의 지혜다.
자신의 임기 중에 뭔가 그럴듯한 것을 이루어내야겠다는 조급증에 빠진 지도자들의 소영웅주의적인 태도는 백성들의 삶을 힘들게 만든다. 조급증은 미성숙의 다른 표현이며, 자신의 이익밖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이다. 이들은 타인에 대한 긍정보다 부정을 먼저 앞세운다. 그러한 사람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 교화가 어지러워지고, 풍속이 문란해지고, 금지의 법령이 속출하여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고 나라가 혼란해진다.
복거지계覆車之戒와 반면교사反面敎師
중국 남북조시대 송宋나라의 범엽范曄이 편찬한 <후한서後漢書>의 ‘두무전竇武傳’에 ‘복거지계覆車之戒’라는 고사가 나온다. 두무의 딸이 후한後漢 환제桓帝의 황후가 되자 두무는 그 덕에 장관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조정은 환관들의 횡포에 의해 매우 어지러운 상황이었다. 이에 뜻있는 유생들이 환관들을 처벌해야한다는 상소를 환제에게 올렸다. 환관들은 유생들이 자신들을 모함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그들을 구금했다.
이에 두무가 환제에게 “만일 환관의 전횡을 이대로 방치해 두면 진나라 때의 실패를 반복하는 것이며, 엎어진 수레의 바퀴를 다시 밟게 될 것입니다”라고 직언을 했다. 그 말을 들은 환제는 체포된 사람을 모두 풀어 주었다. 여기서 앞수레가 엎어진 것을 보고 뒷수레가 경계를 삼는다는 ‘복거지계’의 고사가 유래했다. 우리의 정치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복거지계’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명백하게 획을 긋는 소하의 강건한 법령도 부재하고, 고요함으로 신속하게 집행하는 조참의 부드러운 정책도 부재한다. 앞선 정권에 대한 부정 그리고 자신의 정적들에 대한 복수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정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복거지계와 반면교사의 지혜가 필요하다. “가장 심한 범죄를 저지른 자 이외에는, 소수의 나쁜 사람을 체포하거나 가두거나 제명하지 말고 단위에 남겨 정치적으로 고립시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말이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과거청산이라는 이유로 역대 대통령들을 법정에 세우는 후진적 정치 풍토는 더 이상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잘못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것보다 미래를 위한 반면교사로 내세울 수 있는 아량이 필요하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과거에 있었던 일보다는 현재의 일에 더 마음을 쓰며 현재의 시점에서 좋은 일을 발견하면 그것을 향유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더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조참은 과거보다는 현재를 우선했고, 현재 속에서도 백성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조참은 소하의 법을 지켰기 때문에 존경받은 것이 아니라 백성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잘 알았기에 그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던 것이다. 그 점에 대해 사마천은 “백성들이 진나라의 잔혹함에서 벗어난 이후 조참은 그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도록 하였으므로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의 미덕을 찬미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백성의 마음을 아는 것이 통치의 근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