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 41] 세월호 원인조사 대신 유병언 일가 내력 캐기 급급했던 언론
본말 전도된 사회와 ‘대분망천’ 자세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대야를 머리에 인 채 하늘을 볼 수 없기에 빈객과의 사귐도 끊고 집안일도 돌보지 않고 밤낮없이 미미한 재능이나마 오로지 한 마음으로 직무에 최선을 다해 주상의 눈에 들고자 했다. 그러나 일은 제 뜻과 달리 잘못되고 말았다.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
본말本末이란 사물이나 일의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은 부분을 통칭하는 말이다. 흔히들 일의 앞뒤가 뒤바뀌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에 몰두하는 것을 보고 ‘본말이 전도되었다’고 표현한다. 정치인들의 해외시찰 내지 연수는 본말이 전도된 경우가 많다. 말이 해외연수지 실상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해외에 나가 유흥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들의 본말전도는 비단 해외연수만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 자체가 본말전도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세월호 사건이 났을 때 국민들은 무슨 원인으로 배가 침몰했는지를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고 싶어 했는데,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유병언 일가의 드라마 같은 내력만 집중적으로 파헤쳐 본말을 전도시켰다.
본말전도는 정치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학교에서는 졸다가 학원에 가서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의 태도도 본말전도의 예다. 어찌 보면 비정상이 정상처럼 행해지는 우리 사회 자체가 본말전도인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가 ‘비정상의 정상화’를 국정의 우선 과제로 삼았다고 하는데, 그 말 자체가 본말전도가 아니기를 바란다.
무엇이 ‘본本’이고 무엇이 ‘말末’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안목이 삶의 질質을 결정한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집중하면 인생 자체가 낭비가 되고 만다. 인생이란 중요한 것에만 집중을 해도 모자랄 만큼 짧다. 돈과 명예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마련이다. 현실에서 둘을 동시에 추구하기란 그리 녹록치 않다.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마천은 자신의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대야를 머리에 인 채 하늘을 볼 수 없다. 戴盆望天’이라고 했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마천은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신의 정신적 모습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그런 태도에 대해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바가 전혀 없었다고 고백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봐주지 않는 상황에서 다행히도 사마천은 선친의 공과 주상의 덕으로 입궐을 하게 되었다. 성은聖恩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해도 모자를 판인데 남들처럼 친구도 사귀고 가사에도 신경을 쓴다면 자신의 도리를 다할 수 없다는 게 사마천의 생각이었다.
‘대분망천’은 사마천의 그러한 태도를 단호하게 표현한 것이다. ‘대분戴盆’은 자신의 생활과 엮인 사적인 일들을 비유한 것이며, ‘망천望天’은 대의에 입각한 공적 임무를 비유한 것이다. 사마천은 ‘망천’의 자세를 취했기에 ‘대분’에 해당되는 일들을 과감하게 버렸다. 그러나 사마천의 그러한 노력은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대분망천’했음에도 불구하고 궁형(거세형)이라는 치욕스러운 벌을 받게 되었다.
사마천은 대분망천이 언급된 편지의 첫 단락에서 “사건의 본말은 쉽게 밝혀지는 게 아닙니다”라고 밝혔다. 사마천이 살던 시대도 지금의 우리 현실처럼 본말이 명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세상은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본말의 전도는 인간사의 복잡성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결과의 전도와 상관없이 ‘대분망천’의 자세는 모든 사람이 지켜야 할 처세의 근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