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36] 유방과 조광윤을 좋아하는 이유

술잔을 들면서 공신들의 병권을 없애다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유방과 함께 내가 거론하고 싶은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조광윤趙匡胤이다. 송나라 태조 조광윤은 별 볼일 없는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하급 군인이었고, 집안은 가난하였기에 젊은 시절부터 방황하며 떠돌다가 절도사 곽위를 만나 그의 부하가 되었다. 곽위는 후한後漢을 무너뜨리고 후주後周의 태조가 된 인물로, 조광윤은 그가 황제가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를 계기로 조광윤은 곽위의 양자이며 나중에 후주의 세종이 된 시영柴榮의 눈에 들어 드디어 절도사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세종이 거란을 토벌하는 도중 병으로 죽게 되자 그의 어린 아들 공제恭帝가 황제에 등극했다. 이때 조광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진교의 변陳橋之變’이라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건의 전말은, 조광윤이 거란을 물리치기 위해 출정하여 진교에 머물던 중, 술에 취한 그에게 부하들이 황포를 입혀 황제로 추대하자 이를 거부하지 않고 진교에서 회군하여 황궁을 점령하고, 공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황제에 즉위하여 송나라를 세운 것이다. 이를 두고 후대 사람들은 정권찬탈을 위해 조광윤이 계획적으로 만든 사건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반대되는 입장도 있다. 무엇이 맞는지는 나로서는 단정할 수 없거니와 내가 여기서 조광윤을 거론하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송 태조 조광윤은 무인 출신답게 성격이 거칠고 화를 잘 내기도 했지만 그러한 자신의 행동에 대해 곧바로 반성을 했다고 한다. 황제가 되었지만 일상생활을 소박하게 꾸렸고, 무인이었지만 당대의 사대부들을 고루 등용하여 문무의 조화를 꾀하는 문치주의 정책을 굳건히 펼쳐나갔다.

또한 공제로부터 권좌를 물려받은 후 그를 죽이지 않고 극진히 대접하여 세인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이러한 그의 행동은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었고, 그와 함께 나라는 절로 안정과 평화를 이룰 수 있었다.

송 태조가 민심을 얻을 수 있었던 요인은 그의 소박한 품성도 있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문치주의를 실현한 데에 있다. 송 태조는 무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문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진교의 변’ 때 자신을 황제로 추대한 부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술잔을 돌리며 그대들의 고마움은 잊지 않겠지만 당신들의 부하들이 딴 마음을 먹고 그대들에게 황포를 입히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지 누가 장담하겠냐고 하자 신하들이 두려움에 떨며 그 자리에 엎드려 일어날 줄 몰랐다고 한다.

송 태조는 자신의 뜻은 백성들이 편히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니 이제 그대들은 정치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 편히 쉴 것을 권했다. 송 태조의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권고에 눌린 공신들은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 낙향했다. 이러한 일화에서 유래된 것이 바로 술잔을 돌리며 병권을 없앴다는 뜻의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으로,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통합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고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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