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연의 사마천 한국견문록34] 노무현·이명박·박근혜에게 아쉬운 것들···통합의 리더십

말 위에서 얻은 나라,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없다

[아시아엔=이석연 전 법제처장] 2013년 말에 나는 지승호 작가와의 대담집 <페어플레이는 아직, 늦지 않았다>를 출간했니다. 출간 후 여러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았는데, 그 모든 게 더 큰 부담이 되어 나를 자꾸 돌아보게 된다. 과연 나는 일관된 소신으로 매사 잘 처신하고 있는지, 라는 성찰의 마음이 들 때마다 서문에 썼던 내용을 떠올린다. 쑥스럽지만, 당시의 심정을 소회하면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보려 한다.

이 대담집을 펴내면서 일관되게 견지하고자 했던 내 생각의 틀을 형성해준 역사적 인물과 그의 생각이 있다. 바로 위대한 역사서이자 문학서인 <사기>를 쓴 사마천과, 그가 <사기>를 집필하면서 견지했던 ‘불허미 불은악 不虛美 不隱惡’의 정신이다. 거짓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악을 숨기지 않는다는 뜻의 이 말은 비판하되 공功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인간 지혜의 원천인 <사기>는 젊은 시절부터 오늘까지 필자 곁을 떠나지 않은 책이다.

젊은 시절은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불허미 불은악’의 자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남의 공을 깎아내리는 무책임한 비판이 아니라 공생共生의 길을 모색하는 비판의 자세가 바로 직언의 본령이라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 초 법제처장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나는 당시 여권 일각에서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정부 산하 기관장의 임기 전 사퇴를 거론한데 대하여 비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의 정권에 의해 임명된 인물들을 내편이 아니라고 무분별하게 정리하는 것은 민심을 무시하는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나는 말馬 위에서 나라를 얻었다고 해서 말 위에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사기>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논리로 집권을 했지만 그 논리로 계속 통치할 수 없다. ‘노사모’의 논리로 집권한 노무현 대통령도 ‘노사모’의 논리로 계속 통치를 해서 국민과 멀어졌다”는 논지를 통해 ‘통합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 내용이 정권 출범 초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언론에 의해서 대서특필되었다.

초심初心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리더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중요한 덕목이다. 일관된 자세를 잘 견지하려면 귀가 사방으로 열려있어야 한다. 리더가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한다면 그 조직은 머지않아 와해될 것이다. 또한 달콤한 말만 늘어놓는 아랫사람이 득실거리는 조직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러한 논리는 국가의 통치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필연의 법칙이다.

항우를 격파하고 천하를 통일한 한 고조 유방은 성정이 다소 거칠었지만 귀는 열려있던 인물이다. 그는 지식인들의 기회주의적인 습성은 미워했지만 그들의 바른 이야기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여 중원이 안정되었을 때, 남월南越을 평정하여 왕이 된 위타尉陀를 설득하여 한나라의 신하가 되게끔 한 인물이 있는데 그가 바로 육가陸賈(육고라고도 발음)다.

육가는 유학을 통치의 이념으로 여기는 전형적인 선비로 유방에게 늘 <시경>詩經과 <상서>尙書 등을 인용하면서 조언을 했다. 조언이었지만 유방에게는 듣기 싫은 ‘쓴 소리’처럼 여겨졌던 모양이다. 한 고조 유방이 “나는 말등에 올라타 천하를 얻었소. 어찌 <시경>과 <상서> 따위를 쓰겠소”라며 불쾌한 심정을 토로하자, 육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등에 올라타 천하를 얻었다고 하여 어찌 말등에 올라타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옛날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무력으로 정권을 얻었지만, 민심에 순응하여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와 같이 문文과 무武를 함께 쓰는 것이 나라를 길이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옛날 오나라 왕 부차와 지백智伯은 무력을 지나치게 쓴 탓에 멸망하였고, 진秦나라는 형법만을 쓰고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조씨趙氏는 멸망한 것입니다. 만일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인의를 행하고 옛 성인을 본받았다면, 폐하께서는 어떻게 천하를 차지할 수 있었겠습니까?*_「역생,?육가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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