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안용(獨眼龍)을 아십니까?···唐이극용·日마사무네엔 못 미쳐도 ‘덕화만발’ 최선 다할 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독안용(獨眼龍)이라는 말이 있다. 애꾸눈을 가진 영웅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애꾸눈을 가진 덕망이 높은 선사(禪師)를 이르기도 한다. 필자가 요즈음 갈 데 없는 이 독안용 신세다. 30여년 당뇨병을 알아왔지만 병 관리를 잘해 그런대로 버티어 왔는데 작년 가을부터 여러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참으로 당뇨병은 고약한 병이다. 마침내 양쪽 다리의 동맥이 막혀 잘 걷지를 못하게 되었다. 그래도 양쪽 다리의 혈관시술을 받고 말 못할 통증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쪽 눈에 문제가 생겼다. 오른쪽 눈 망막에 이상이 생겼고, 왼쪽 눈에는 녹내장이 찾아왔다. 이 두 가지가 다 치료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치료라야 다만 진행속도를 늦추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눈을 쓰지 않을 방법도 없고 그만 눈을 혹사한 탓인지 지난 일요일(8월23일) 아침에 일어나니까 오른쪽 눈이 보이질 않았다.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다시는 지난 5년간 써오던 ‘덕화만발’을 더 이상 쓸 수 없을 것 같아 상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아름다운 우리들의 카페에 그간 써두었던 덕화만발 글을 억지로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일은 우리 덕화만발 가족들이 올려주신 각종 글에 대한 ‘댓글’도 달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간신히 “하하하하하하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하하하하하하하!”를 써 예를 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는가 보다. 현대의학이 너무나 발달되어 오른쪽 눈 뒤쪽에 약물을 주사하고 약을 먹고 안약을 넣는 악전고투 끝에 천만 다행으로 오른쪽 눈이 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한다. 곧 덕화만발 가족들 염원으로 다시 눈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었다. 덕화만발 가족들에게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한쪽 눈이라도 성해 이렇게 떠듬떠듬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하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설사 한 쪽 눈이 영 회복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한쪽이 부실하면 한쪽이 더 실해지지 않을까 해서다. 세상에는 한쪽 눈의 영웅인 독안용도 많다.

<오대사>(五代史)의 <당기>(唐記)에 나오는 얘기다. 당나라 희종(僖宗)은 말년(873)에 대홍수와 큰 가뭄, 가혹한 세금징수로 농민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산동 일대의 농민봉기의 기세를 타고 황소(黃巢)가 난을 일으켰다. 병력 수십만명을 갖게 된 황소는 낙양(洛陽)을 함락하고 수도 장안(長安)으로 진격해서 스스로 제제(齊帝)라 칭하고 대제국(大帝國)을 세웠다.

성도로 난을 피한 희종은 돌궐(突厥)의 사타족 출신 이극용(李克用, 後唐의 太祖)을 기용해서 황소의 군대를 제압하게 했다. 황소의 군대들은 이극용의 용맹에 벌벌 떨었다. 이극용은 황소의 부대를 맹렬히 공격해서 장안에서 몰아냈다. 이때 이극용의 나이 고작 28세였다. ‘독안’(獨眼)은 원래 ‘애꾸눈’을 뜻하는데 이극용의 한쪽 눈이 감기다시피 작아서 당시 사람들은 그를 독안용(獨眼龍)이라고 불렀다.

일본의 전국시대 센다이(仙臺)의 영웅 다테 마사무네는 독안용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영주였다. 말 그대로 눈이 하나뿐이었다. 5세에 천연두에 걸려 오른쪽 눈을 잃었다.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이었다. 지금도 센다이에서는 ‘다테 오도코’라는 말을 쓴다. 다테 마사무네처럼 멋진 남자란 뜻이다.

다테 마사무네는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 영웅이 천하를 놓고 대결하던 시절에 태어났다. 그는 젊었을 때는 일본의 동북지방을 근거로 삼아 천하의 패권을 노려볼 만한 인물로 꼽히기도 했으나 결국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복속했다.

1590년의 일이었다. 마사무네는 지방 영주들과 전투를 벌여 아이츠 지방을 손에 넣었다. 당시 이미 패권을 쥐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영주들에게 전투금지령을 내려놓았다. 이 명령을 어긴 마사무네에 대하여 히데요시는 지금의 도쿄 근교인 오다와라(小田原)까지 와서 해명하도록 명했다.

마사무네는 잘못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상경(上京) 명령을 거부하고 싸울 것인가 아니면 천하쟁투를 포기하고 복속할 것인가! 마사무네는 후자를 택했다. 오다와라에서 10만 대군을 이끌고 공성전(攻城戰)을 벌이고 있던 53세의 히데요시는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23세의 청년장군 마사무네의 목을 막대기로 툭툭 치면서 “조금만 늦었더라면 여기가 위험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의 유명한 칼을 만드는 장인은 마사무네 집안이 이어오고 있다. 700년째 대를 이어 명검을 만들고 있다. 그 집안의 명장이 이런 말을 한다. “제가 칼 속에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칼을 만들고 나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옵니다. 이 칼에 내 이름이 새겨지고 내 정성이 들어갑니다. 1000년 뒤에도 저는 이 칼을 통해서 살아 있을 것입니다.” 일본인들은 무사도(武士道)를 ‘죽는 것’이라 정의한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치열하게 사는 것’이란 뜻이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비록 한쪽 눈을 못 보는 독안용이 될지라도 죽는 그 순간까지 혼과 정열을 다해 영원히 남는 덕화만발을 쓰고자 한다. 그전처럼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댓글’이나 ‘답글’도 자상하게 쓰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들의 카페 ‘덕화만발’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천진(天眞)하여 사(邪)없는 마음이 천심(天心)이다. 어떠한 사람이 눈이 밝은가? 비록 독안용이 될지라도 자기의 그름을 잘 살피는 이가 참으로 눈이 밝은 사람이다. 천심과 천진으로 나의 그름을 잘 살피도록 노력하겠다. 예전만 못하더라도 더욱 따뜻한 격려와 이해와 용서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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