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경제칼럼]’안심전환대출’···”소문난 잔치 먹을 거 없다”더니 바로 그 꼴

 

미국 금리인상?가시권 내로···빈부격차 극심·가계부채?최악에 주택가격만?크게 올라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미국 금리 인상이 드디어 가시권 내로 들어왔다. 요사이 미국을 여행해 보면, 부동산 특히 주택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 모든 지표 지수가 거의 동일하게 그런 결론을 내고 있다고 한다.

7년 걸려서 금융위기가 지나간 거다. 물론 경제의 근본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고, 단지 그때의 금융위기를 다시 거대한 버블을 만들어서 경제를 금융위기 이전 상태로 만들어 놓은 거다. 즉 금융위기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여지는 충분히 있다. 겉 땜질만 한 거다.

여전히 빈부 격차는 극심하고, 빚도 무척 많고, 눈에 띄는 신기술은 없다. 그런데 부동산 등의 자산가격만 회복 시켜놓고 나서는 이자율이 다시 올라가는 거다. 경제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자산버블만 만들어 놓으면, 금세 버블이 다시 터지고 이자율은 다시 내려갈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장기적인 이야기지만 미국 이자율이 오르면 한국도 이자율을 올리거나 원화가치를 엄청 떨어뜨리거나 아니면 둘 다 하거나 해야 한다.

필자는 원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자율이 매우 높아진다고 하자. 그러면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이 터지게 되어 있다. 그 경우 한국사회의 근본 패브릭이 와해될 것이다. 따라서 원화가치를 엄청 떨어뜨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얼마 전 안심전환대출이라는 새로운 금융상품이 나와서 상당히 기뻐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로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즉 있으면 도움 되고, 없어도 견딜만한 사람들에게만 이용가능한 상품이었다.

즉 원금도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과 신용등급이 좋은 사람들만 신청자격이 있었던 것이다. 원금 갚아나갈 능력이 없어서 이자만 내고 있는 사람들과 신용등급이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다. 능력 있어서 원금까지 갚아나가고 있는 사람과 신용등급도 좋은 사람들이야 이자가 좀 오른들 참을 만한 것이 이 모든 논의의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요컨대 안심전환대출은 정작 돈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이용할 수 없었던 상품이었다.

마치 다음 사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지진이 나서 대피소를 만든다. 그런데 지진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만 이용하게 만든다면?”

“아픈 사람을 위해 약을 만들었다. 그런데 건강한 사람들에게만 약을 준다.”

“안경을 만들었다. 그런데 눈이 좋은 사람만 살 수 있도록 했다.”

“컬러 텔레비전을 만들었다. 그런데 장님들만 살 수 있도록 제한을 두었다.”

하긴 얼마 전까지 서울시의 건널목에 ‘맹인용 건널목’이라고 안내판이 붙어있었다. 시각장애인은 그것을 못 읽을 것이고, 비시각장애인은 그것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일을 겪고 나면, 경제학을 공부한 것이 부질없고 허망하고 시간 낭비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처참하고 쓸쓸한 생각마저 든다. 내 인생이 내겐 너무도 중요하니, 이런 사람들과 거리를 될 수 있으면 멀리 두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놀자고 그럴까봐 그냥 전반적으로 두렵다.

그저 재미난 예 몇 개 더 들고 이 씁쓸한 글을 마치려 한다.

성경(기타 종교경전) 속에 “회개하라”고 써있는 부분이 있다.

나쁜 사람들은 본래 성경을 잘 안 읽는다. 성경책을 읽을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회개하라”는 구절을 읽고 심각하게 충격받을 정도의 사람은 원래 회개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구절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미 교회 온 사람들에게 교회에 와야 된다고 설교하는 목사들도 헛 힘을 빼는 거다. 영어로 ‘Preaching to Choir’라고 한다. “성가대까지 할 사람들에게 설교할 필요가 뭐 있으리” 하는 소리다.

내가 보기엔, 성경 속에는 ‘신앙생활이 잘 안 되는 이유와 그 해결책’, ‘교회에 대해 실망했을 적에는 어떻게 해야 되나’ 이런 내용이 많이 들어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정작 그런 내용은 없거나 거의 안 보인다. 그래서 성경을 사람들이 잘 안 읽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막상 읽어야하는 사람은 안 읽게 되고, 읽는 사람은 읽을 필요가 없는, 묘한 패러독스다.

어떤 정책이건 “왜 그런 정책이 필요했었지?”를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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