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상인 메디치家는 어떻게 거부가 됐나?

 

2008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에 들어가는 '티파니 보석전'에 선보이는 펜던트 '메디치 가문의 마리(Marie de Medici)'.

2008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전시에 들어가는 ‘티파니 보석전’에 선보이는 펜던트 ‘메디치 가문의 마리(Marie de Medici)’.<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영수 국제금융학자] 지난해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경제학자로서 필자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등 르네상스의 상인들이 어떻게 돈을 벌었나 그게 궁금했다.

방문 전 남종국 교수의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이라는 책을 사서 읽었다. 아주 유익했다. 적극 권하고 싶다.

정리하면 “권력자들에게 돈을 꿔주거나 뇌물을 주고 이런 저런 특권(주로 독점권)을 받기로 흥정했다가 결국 권력자에게 뒤통수 맞고 망했다”라는 패턴의 스토리가 계속 된다. 게다가 이들은 좋은 별장 짓고, 미술품 구매하고, 그러면서 망했다는 줄거리다.

르네상스의 천재 예술가들을 메디치가 키웠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는 메디치 가문의 명예회장 자신이 천재적인 소양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이 흉내 내려도 낼 수 없는 일이다.

필자가 이 책과 여행에서 배운 건 다음과 같다.

1)메디치가 사람들은 이윤이 아주 박해도 장사를 한다. 이 사실에 좀 놀랐다. 지구의 반대편의 물건을 사서 파는데, 약 3배 정도의 가격차가 있었다고 한다. 당시는 해적과 산적과 전염병 지역을 통과하는 코스를 18개월에 왕복해야 했던 당시 중세전체가 무이윤의 시대였다.

그런데 자그마한 이윤을 노리고 상대적인 위치를 높여간 것이다. 나중에는 고이윤의 비즈니스를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다 저이윤의 비즈네스를 했다고 한다. ‘박리다매’ 그게 이들의 철칙이었다. 물론 모든 비즈니스의 철칙이기도 하지만.

지금부터 전 세계는 작은 이윤의 시대로 들어가는 추세에서 참고가 될 것 같다. 필자가 생산하는 제품 가져가서 10배나 남기던 모 회사는 그래도 남는 게 없다고 불평 하더니, 결국 망했다.

“박한 이윤을 보고 일을 한다?” 이게 바로 메디치가의 비즈니스 철학. 다른 사람이 엄두도 못내는 위험을 피해가는 방법이 바로 여기서 왔다고 한다. 그렇게 박한 이윤을 보고 비즈니스를 하니, 좋은 기회가 나오면 당장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2)상상도 못하는 원거리 중개매매(Arbitrage)를 노린다는 거다. 그 옛날에, 중국 비단을 유럽전역에 판 건 말할 것도 없고 슬라브족 노예를 아프리카에 팔아서 상당히 돈을 벌었다는 기록이 있다. 콜럼부스도 제노아 출신 이탈리아 상인이다.

3)약속한 것은 꼭 지킨다. 그건 정말 배울 만하다. 당시 이탈리아 사회 전체에 그런 풍토가 있었던 거다.

4)돈만 대는 사람이 3분의 2(혹은 4분의 3)을 대고, 사업하는 사람이 3분의 1(혹은 4분의 1)을 대고, 이익을 반반씩 나누는 포맷이 오랫동안 계속 됐다. 요사이 사용해도 괜찮을 듯하다. 한번 장사하러 나갈 적에 약 250억원 정도 자본을 모아서 나갔다니 재력이 상당했던 거다.

5)가족들 사이에서도 돈거래가 깨끗했다고 한다. 거기다 가족 관계이니 서로 회사를 만들면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거다.

6)어려서는 오지에 보내서 점원부터 일을 배우고, 나이가 들어서야 본사로 불러서 일을 시켰다고 한다. 어느 나라처럼 30살도 안 돼 경영전략본부장 같은 자리에 앉히는 일은 없었단 얘기다.

7)언제나 펜을 들고 다니며 늘 ‘기록, 기록, 기록!’을 하였다. 적자생존의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졌다는 거다.

8)몽골제국과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신기한 게 아니었. 최근 필자가 즐긴 미드인데, <마르코폴로>를 꼭 한번 보시기 바란다. 참고로 <몽골 퀸>이란 책도 함께 권한다.

9)역사적으로 어느 한 사람의 부가 그 나라 예산의 4분의 1 정도가 되면 너무 커진 거고, 그러면 몰락하게 된다. 여기서도 그런 법칙이 적용됐다.

10)유럽귀족들이 호화생활을 한 건 돈을 빌릴 때 채권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비즈니스 하려면 차도 좋은 것 사고 그래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11)당시 이탈리아에선 전경련 같은 걸 만들어서 독점경제체제를 유지했다고 한다. 동이나 서나, 고나 금이나 부의 독점에 대한 욕망은 못 말리는 것 같다.

12)이들은 성직자들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자기들보다 더 탐욕스럽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자기 아들을 아예 교황으로 만들어버린다. 그가 속죄전(면벌부) 팔아서 로마의 성베드로성당 만든 사람이다. 종교개혁의 원인 제공자, 바로 그다.

13)크게 돈을 번 뒤, 자신이 왕이 되어보고자 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금방 몰락했다. 상도의 기본을 어겼기 때무이다. 양산박 영웅들의 제1철칙은 관군과는 싸우지 않은 거다. 그런데 산적들이 그걸 어기면 바로 죽는 거다. 왕은 왕도가 있고, 상은 상도가 있고, 도적은 도적의 도가 있다.

14)대단한 외교 수완이 있었다. 마키아벨리도 메디치 가문의 컨설턴트였다. 돈 주고 머리를 사는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나지 않도록 국제적인 노력을 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돈 버는데 큰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국제정세를 꽉 쥐고 흔들었다고 한다. 막강한 정보력과 막대한 돈, 그리고 엄청난 두뇌를 가진 부하들의 합작품이 메디치가의 부를 가져다 준 것이다.

15)해군력, 보험, 금융 등 인프라를 정부가 책임져주던 도시는 오랫동안 흥했고, 그렇지 않은 도시들은 곧 망했다. 필자가 늘 하는 이야기지만, “뇌물을 줘도 통하지 않고, 법대로 한다” 이것만 해도 나라는 흥한다. 거기에다가 도로망과 인터넷 등만 잘 갖추어 주어도 나라는 흥하게 돼있다.

이자율도 내려가고 장사가 잘 되니 나라가 흥하게 되는 것이다. 부패하고 치안이 불안하면 장사꾼들은 떠나고 만다. 장사꾼들은 뇌물을 주면서도 실은 뇌물 없이 룰대로 굴러가는 사회를 바란다. 공명정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그런 룰 말이다. 그러면 누구나 지키게 된다. 장사가 흥하는 지름길이다.

그걸 어떻게 달성할까? 언론이 바로 서면 된다. 언론을 어떻게 바로 세울까? 필자 생각으로는 기자들이 토론(디베이트)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언론사들 사이에 경쟁을 붙여야 한다. 선거공영제처럼 어느 정도 규모와 신뢰가 커진 언론은 정부가 보조를 해주는 것도 좋다. 물론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도 마찬가지다.

반대로, 염라대왕같은 언론들이 괴기스러운 프로파겐다로 독립사고가 불가능한 노년층을 집중 공략하는 나라는 굉장히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16)메디치가 후예들이 지금도 국제 금융가 집안으로 대를 잇고 있다.

이탈리아에 메디치 가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거기선 밀라노엑스포가 열리고 있다. 올해 주제는 ‘지구 식량공급과 생명에너지’라고 한다. 결국 사람들 사는 건, 메디치 시절이나 지금이나 이 두가지에 달려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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