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팔이 소년서 총리 오른 인도 모디의 광폭행보를 주목하는 이유

[아시아엔=편집국] 처자식도 없이 하루 3시간만 자며 국정에 몰두하는 사람. 총리 취임 1년간 19회에 걸쳐 18개국을 누비며 두달 이상 해외에 머물며 12억7천만 인도인의 오늘의 먹거리 찾기와 미래비전 설계에 온몸을 던지는 사람,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얘기다. <아시아엔>은 <이데일리> 김민구 논설위원의 ‘차(茶)팔이 소년과 한국몽(韓國夢)’ 칼럼을 동의를 받아 <아시아엔> 독자들께 소개한다-편집자

그는 기념비적 인물이다. 카스트제도(인도 신분제도)의 하층민 간치(Ghanchi·상인)출신인 그는 어린 나이부터 차(茶) 행상에 나서야 할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가난에 찌들어 살던 그는 세상과 부자를 증오해 염세주의적이며 급진적인 길을 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가난과 불행을 남의 탓으로 여기지 않고 백절불굴의 의지로 이겨내 국가 최고위직인 총리에 오르는 ‘인간 승리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총리 얘기다.

모디 총리는 한때 우리 국민 DNA속에서 꿈틀대던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다. 처자식도 없이 하루 3시간만 자며 국정에 몰두했다. 또한 총리 취임 1년간 이번 방한을 포함해 총 19회에 걸쳐 18개국을 누볐다. 1년 재임기간 중 해외에 머문 기간만도 두 달이 넘었다.

인도호(號)를 이끄는 모디 총리의 경제교과서는 한국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한국 전화로 통화하고, 한국 차(車)를 타며, 한국 컴퓨터로 일하고, 한국 TV를 본다”며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줬다.

그는 또 인도가 제조업 육성 없이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다며 그 해법으로 한국에 눈을 돌렸다. 모디 총리는 제조업 혁신방안으로 내놓은 ‘메이크 인 인디아’를 통해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세계 제조업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이른바 ‘인도몽’(印度夢)의 야심을 달성하는 데 한국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가 방한 기간 동안 빠듯한 시간을 쪼개 유일하게 방문한 산업현장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인 점도 같은 맥락이다. 인도 내 조선소 설립과 기술이전 등 협력방안은 표면적 이유다. 그는 기술이나 자본도 없던 1970년대 초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헝그리 정신으로 현대중공업을 세계적 기업으로 일궈낸 점에 매료됐다. 정 회장이 거북선 그림이 있는 500원짜리 지폐를 영국 금융기관 바클레이스에 보여주고 투자를 받아낸 기업가정신과 이를 적극 지원한 고 박정희 대통령의 리더십이 살아 숨쉬는 현장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메이크 인 인디아는 저성장·저투자 늪에 빠진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소다. 우리로서는 지나친 중국 의존도에서 벗어나 중국을 필요하면 견제하고 중국과 인도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생긴 셈이다.

인도의 제조업 야망은 또한 우리 제조업이 제2의 르네상스를 맞을 절호의 기회다.

성장 한계에 부딪힌 제조업체들이 광활한 인도시장으로 발길을 옮겨 인도 제조업과 국내 제조업체 공동발전이라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그러나 모디 총리의 방한은 국내 제조업에 희망과 숙제를 동시에 안겨줬다.우선 인도판 ‘샤오미(小米) 쇼크’가 일어나지 않도록 산업기술을 첨단화해야 한다. 국내 제조업체의 인도 대거 진출로 인도 제조업이 발달해 중국 샤오미처럼 국내 산업계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얘기다.

또한 강성노조와 반(反)기업정서로 휘둘리는 초라한 민낯도 우리 제조업의 슬픈 자화상이다. 미국과 일본이 해외로 진출한 기업을 다시 본국으로 불러오는 ‘리쇼어링’을 통해 제조업 강국을 꿈꾸고 있지만 우리는 경직된 노동시장과 ‘옥상옥’ 규제, 사라진 기업가정신으로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쩌면 수년 후에는 모디 총리가 제조업 혁신사례를 배우러 한국이 아닌 미국이나 일본으로 비행기를 돌릴지도 모른다. 국내 제조업 혁신을 일궈낼 수 있는 ‘한국몽’(韓國夢)을 키워야 할 때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