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거인 알리바바 마윈④] 무수한 좌절에서 건져준 건 ‘무협지’였다

<사진=AP/뉴시스>

[아시아엔=안동일 동아시아 연구가] 청년시절 마윈은 무수한 좌절을 경험한다. 그때마다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던져준 것이 독서였다. 그 가운데 우리에게도 유명한 진융(金庸)의 무협소설은 그에게 에너지의 보고였다. 알리바바 직원들은 마윈을 풍청양(風淸揚)이라는 별호로 부른다. 김용의 소설 <소오강호>에 등장하는 고수의 이름이다. 또 마윈의 집무실을 ‘도화도’(桃花島), 회의실을 ‘광명정’(光明頂)이라고 부른다. <사조영웅전>의 주요 배경들이다.

마윈을 위시해 알리바바 직원들이 무협소설 캐릭터를 별호로 삼는 것은 기업의 중국성(中國性)을 홍보하고자 하는 전략이자 각각 장기(長技)를 지닌 무림 고수들처럼 직원들에게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우리 학부모들에겐 달갑지 않게 여겨지는 무협소설이 마윈과 동료들에겐 동류의식의 상징이며 창의성의 기폭제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마윈은 고교 졸업 후 대입에 실패하자 자신이 공부에는 재능이 없다 여기고 서호에 있는 호텔에 찾아가 입사시험에 응시했다. 사촌동생과 같이 입사시험을 봤지만 마르고 서비스에 부적합한 얼굴이라는 이유로 사촌동생은 붙고 마윈은 떨어졌다. 그 이외에도 닭튀김 체인점인 KFC를 비롯해 무려 30번이나 취업을 거절당했다.

결국 마윈은 외모가 필요하지 않는 잡지사에 취직했고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윈은 항저우 기차역에서 루야오(路?)의 소설 <인생>을 읽게 된다. 주인공이 이상과 현실에서 겪어야 했던 좌절의 스토리와 “시련을 겪지 않고, 무지개를 보려 하는가”하는 글귀가 마윈의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요동을 일으켰다. 그는 다시 한번 대입과 싸우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그해 마윈은 다시 대입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수학점수 19점으로 낙방했다. 마윈은 좌절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무협지의 주인공들처럼 계속해서 대입을 준비했다.

칼을 갈고 덤벼든 3번째 도전, 하지만 또다시 수학시험에서 79점을 맞아 80점이 커트라인이던 당시 입학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하지만 마윈은 포기하지 않고 항저우에 있는 사범대에 원서를 접수했고,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때, 입시지원자 수가 계획했던 인원보다 적어 지원자 모두 합격처리 돼, 마윈은 3번의 도전 끝에 대학 문을 밟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한 마윈은 영문학과에 진학해 물 만난 고기처럼 숨겨져 있던 재능을 펼치며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다. 학업은 물론이고 각종 동아리에도 참여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다. 서호 인연으로 계속 연락하고 지내던 호주 부부의 초청으로 호주를 방문했으며, 그들 부부의 원조로 나름 어렵지 않은 대학생활을 즐기게 된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던 그의 의협심과 용기는 대학시절에도 여전히 빛을 발해 항저우사범대 학생회의 주석으로 당선되었다. 마윈의 소문은 항저우에 있는 다른 대학에까지 퍼지게 될 정도로 유명했었다.

무협소설에서는 몰락한 명문가의 후손이 세상을 떠돌다 악전고투 끝에 기연(奇緣)을 만나 절세무공을 전수받고, 그 무공으로 악의 무리를 제압하고 절세가인과 행복을 맞아하는 그런 구조가 전형을 보인다. 마윈이야말로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말로 무협지의 주인공이다.

중국에서는 무협소설이 엄청나게 사랑받아 중국인들의 오락, 상상, 언어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무협소설을 문화적으로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학자들은 무협소설이 ‘성장담’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성장담과 모험담은 독자에게 지적·정서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무협소설을 ‘지식의 보고(寶庫)’로도 보고 있다. 중국에서 무협소설을 공통의 화두로 삼아 비즈니스를 성사시키는 건 자주 있는 일이란다.

마윈은 대학 기간 동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동반자며 반려자인 장잉(?瑛)을 만나게 된다. 김용의 소설이 둘의 큰 공통 화제였다. 대학교 1학년 만나게 된 마윈과 장잉은 서로 지지하고 격려하며 발전해왔고 결혼에 골인하게 된다.

마윈은 알리바바가 지금 위치에 있을 수 있는 것에 대해 장잉의 역할이 크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밝히고 있다.

“당신은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기업가가 되기를 바라시오? 아니면 존경받는 기업가가 되기를 원하시오?”

이렇게 물었을 때, 항상 부인 장잉의 대답은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1988년 우수한 성적으로 항저우사범대를 졸업한 마윈, 개혁 개방이라는 당시의 흐름 속에 그의 마음은 교편이 아닌 창업에 있었다. 하지만 마윈이 교편을 잡을 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주위 사람, 특히 부모님이 교사야말로 훌륭한 직업라고 그를 설득했다. 마윈은 그 말에 순응해 교편을 잡기로 결정했다.

마윈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선택하지 않고 대학교 교편을 잡았다. 당시 항저우전자공업대학에는 기계, IT, 전자 분야의 우수한 교수는 많지만, 무역, 외국어 등의 분야에는 교수가 적은 것을 보고 영어와, 국제무역 강사로 교단에 섰다.

달변에 쇼맨십, 그리고 뛰어난 영어실력을 갖춘 그는 인기 교수였다. 마윈은 이 시절 동료며 제자로 만났던 인연을 통해 창업할 때 두터운 인맥 기초를 다질 수 있었고 이때 만났던 많은 경영인을 통해 상인의 마인드와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듯 마윈의 5년 가까운 기간의 대학 교수라는 직업은 창업의 기본을 쌓는 시간이었다.

무협지 정신은 그를 다시 강호로 불렀다. 무협의 ‘협’은 ‘로망’이다. 물리적인 기술인 ‘무’가 ‘협’에 의해 작동되었을 때 나타나는 아름다움으로 완성된다는 얘기다. 중국에서 ‘협’이란 곧 ‘대의(大義)’다. 땅덩어리 큰 중국에서는 집을 떠나면 모두 타인이다. 따라서 ‘협’은 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몸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의 재난, 위기, 억울함에 과감히 개입하는 것이 협이다.

마윈의 평생 경영철학인 “고객이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면 당신 또한 돈을 벌게 된다”는 것이야말로 ‘무협(武俠)’의 본질인 ‘협(俠)’, 즉 ‘의리’의 원리가 작동한 철학이다.

어느 날 마윈은 자신과 함께 교편을 잡았지만 당시 퇴직해 집에서 쉬고 있는 동료 교수들이 떠올랐다. 100위안도 안 되는 보조금으로 연명하고 있는 그들에게 연민의 정이 생겼다. “항저우에 전문 통역기구를 설립하고 퇴직한 영어교수들을 고용하면 퇴직한 교수들은 보조 수입이 생기고 항저우에는 전문기관이 생겨 좋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마윈은 생각만 해서는 이룰 수 없다는 생각으로 즉시 행동에 나서 동료들과 함께 1992년 전문 통역회사인 하이보통역사(海博??社) 설립한다. 그의 첫 창업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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