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알리바바 마윈③] 짝사랑 중학교 여선생님이 안 계셨더라면···

<사진=신화사/뉴시스>

외국인에게 다가가 서슴없이 말을 걸던 소년

[아시아엔=안동일 동아시아 연구가] 95년 초 어느 날 저녁 무렵 마윈은 자전거를 타고 항저우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마윈이 항저우전자대학 영어강사로 일하면서 통역 번역 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였다.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달리는데 저만치서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 서넛이 맨홀 뚜껑을 들어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불량배들이 맨홀을 훔치는 광경이었다. 당시 맨홀 뚜껑이 없어져 꼬마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자주 있었다. 마윈은 이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는 우락부락한 청년들. 자전거를 타고 인근을 이리저리 달려 봤지만 공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마윈은 다시 현장으로 갔다. 자전거에 내린 마윈이 외쳤다.

“뭣들 하는 짓이요, 당장 멈추시오.”“당신이 뭔데 나서? 닥치고 있어.”

상대방은 험악하게 나왔다.

마윈은 기죽지 않고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맨홀 뚜껑을 훔치려 하고 있습니다. 같이 말립시다.”

그때 마윈은 청년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날 오후 내내 진행된 몰래 카메라 테스트에서 합격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후일 스탠포드대학 강연서 마윈이 직접 밝힌 에피소드다.

마윈은 용감한 시민으로 텔레비전 전파를 탔고 추후 인터뷰로 그의 영어실력이 알려지게 됐다. 이를 기화로 마윈은 그해 가을(1995년) 항저우시에 발탁돼 시 관리들 미국출장에 영어통역으로 함께 미국을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터넷을 처음 접한다. 절묘한 기연이다. 당시 마윈은 이메일도 제대로 못 보낼 정도의 ‘컴맹’이었다. 그러나 그는 인터넷시장이 중국에서도 곧 커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미국에서 돌아와 바로 사업을 시작했다.

마윈은 늘 이렇게 강조한다.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되지 않습니다. 당신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순간 상황은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다. 마윈의 의협심과 따뜻한 마음은 학우들에게도 전달되어 학교 대표를 뽑는 자리에 후보로 거론되었다. 하지만 성적이 좋지 않았던 마윈은 후보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자 학우들이 나서 자신들은 마윈을 원한다며 후보자격을 회복시켜 달라고 적극 요구했다. 결국 마윈이 초등학교 대표가 될 수 있었다.

초등학교 뿐만 아니다. 마윈은 중고등학교 때도 학교 대표를 했고 대학에 가서도 학교 대표를 지냈다. 체구와 외모와는 달리 어려서부터 통큰 친화력과 통솔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성적이 늘 문제였다.

마윈은 초등학교를 남들보다 1년 더 다녔다. 중학교에 올라갈 성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성적은 바닥이었지만 기개와 당당함은 여전했다. 그런 마윈에게 일생을 관통하는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영어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바로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 덕분이었다. 마윈은 새로 부임한 예쁜 처녀 영어선생님을 몰래 짝사랑하게 됐고, 선생님의 마음에 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어느 날 그 여교사가 용기를 가지고 외국인들과 만나 대화하는 것이 영어숙달의 지름길이라고 말해 줬다. 그 길로 마윈은 항저우에서 외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은 곳인 서호(西湖)로 달려갔다. 외국인들은 서슴없이 다가오는 개구장이 소년의 엉터리 영어에 너무도 친절히 응대해줬다. 마윈은 신이 났다.

그 후 9년간 마윈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45분이나 걸리는 항저우호텔을 출퇴근하듯 다니며 만나는 외국인마다 말을 건넸다. 그가 항저우호텔, 혹은 서호에서 지나가는 외국인을 붙잡고 무료로 도시를 안내해 준 억척 소년이었다는 에피소드는 잘 알려져 있다. 이때 만난 관광객 중 몇몇은 계속 마윈과 연락을 했고 자신들의 나라로 그를 초청하기도 했다. 마윈의 첫 해외여행인 호주여행도 이때 사귄 호주인 부부의 초청이었다.

영어에만 매진해 다른 과목은 등한히 했던지 그는 대학 진학을 쉽게 할 수 없었다. 특히 수학이 문제였다. 당시 중국의 입시는 과락제도가 있었다. 그는 대입시험에 두 번 낙방한 뒤 항저우사범대학에 들어가 영어교육을 전공했다. 그 뒤 항저우전자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로 일했다.

당시 그의 수입은 한 달에 12달러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여행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계속 병행했다. 마윈은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많은 외국인들에게 자신의 고향 항저우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개하고 중국의 이미지를 좋게 전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그의 부단한 노력 끝에 마윈은 항저우에서 손에 꼽히는 영어 실력자가 되었던 것이다.

이달초 중국 전 매체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떴다. 마윈의 따스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따끈따끈한 뉴스였다.

마윈(잭마) 회장이 모교인 항저우사범대학에 180억원을 기부했다. 마 회장은 4일 항저우사범대학에서 1억위안(한화 약 180억원)의 ‘마윈교육기금’ 기부행사를 가졌다. 마 회장은 이 자리에서 그동안 만난 모든 교사들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나는 평생 학생”이라며 “내 일생도 누군가에게 한 명의 선생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마 회장은 1988년 졸업 후 수년간 영어교사 생활을 했다. 엊그제 이 행사에서 마윈은 자신에게 영어의 길을 일러준 중학교때 여교사를 떠올렸음직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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