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다산 정약용한테 ‘성완종리스트’ 해법 찾으시오”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 <사진=강진군청>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지난 4월9일 목숨을 끊은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의 폭로로 지금 이 나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청와대도 패닉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인사들 8명 가운데 홍준표 경남지사를 제외하곤 박근혜 대선 캠프의 주동인물이며 박근혜 정권 최고 실세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통령 당선 뒤 유공자로 박대통령이 내린 감투를 하사받았던 인물들이다. 이들이 대통령 비서실장, 국무총리, 국정원장, 여당중진 등 권력최고 정수리 자리를 꿰차고 있으니 그 후폭풍은 거셀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목민관이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 백성을 기르는 벼슬아치란 뜻이다. 옛날의 목민관은 청탁을 배격하였고, 목민관 노릇을 잘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자애로웠다. 그 자애롭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청렴해야 한다. 청렴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검약하여야 했다.

개인적인 씀씀이를 절약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적인 재물을 절약해서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니까 공적인 재물을 사적인 재물보다 절약해 써야만 현명한 목민관이었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목민심서>를 읽어보면 옛날 어진 목민관들의 훌륭한 인품과 뛰어난 정사(政事)를 알아볼 수 있는 대목들이 참으로 많다. 다산의 대선배로 다산이 직접 상관으로 모시면서 함께 벼슬했던 유의(柳誼, 1734~?)라는 분이 있었다. 여러 곳의 목민관 생활을 하였고, 뒷날에는 대사헌·참판 등의 고관을 역임했다. 다산은 여러 곳에서 유의의 행적을 높게 평가하였다.

“참판 유의가 홍주 목사로 있을 때, 찢어진 갓과 성긴 도포에 찌든 색깔의 띠를 두르고 조랑말을 탔으며, 이부자리는 남루하고 요도 베개도 없었다. 이리하여 위엄을 세우게 되니 가벼운 형벌도 내리지 않았으나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 다산 자신이 홍주 목의 소속이던 금정도 찰방으로 근무하면서 상관인 홍주목사 유의의 행실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다산은 “스스로 자신을 규율하는 것이 아전들을 단속하는 근본임을 알게 되었다(知律己爲束吏之本)”고 쓰고 있습니다.

그렇게 청렴하고 자신의 행동에 절제가 있던 유의가 청탁을 깨끗하게 배격했던 목격담을 자세히 설명한 구절도 있다. “참판 유의가 홍주목사로 있을 때, 나는 금정역 찰방으로 있었다. 목사에게 편지를 보내 공사(公事)를 의논했으나 답장이 없었다. 뒤에 홍주에 가서 서로 만나 말했다. 왜 답장을 주지 않았습니까? 그가 답하기를, ‘나는 수령으로 있을 때는 본래 편지를 뜯어보지 아니하오’라고 말하고 아랫사람에게 명하여 서류 상자를 쏟아 부으니 상자의 편지가 하나도 뜯기지 않았는데, 이는 모두 조정의 귀인들의 편지였다.

그래서 내가, ‘그거야 그럴 것이지만, 내가 말한 것은 공사였는데 뜯어보지 않아서야 됩니까?’라고 말하자, ‘만일 공사에 속한 것이라면 왜 공문으로 보내지 않았소’라고 하였다. 내가 ‘마침 그것이 비밀에 속한 일이었소’ 하니, 그가 ‘만일 비밀에 속한다면 왜 비밀히 공문으로 보내지 않았소’라고 하기에 나는 거기에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가 사사로운 청탁을 끊어버리는 것이 이와 같았다.”

다산은 자신이 직접 당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하여 유의라는 어진 목민관의 깨끗하고 공정한 행정을 높이 칭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결백하고 지나치게 막힌 사람으로도 보이지만, 조선이라는 세상은 온통 청탁 관행이 만연해 있던 시대였음을 감안한다면, 유의의 과도한 배격은 역시 훌륭한 조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참으로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그 모든 잘못 중에서도 ‘청탁’이야말로 가장 큰 부정과 부패의 근원이다. 이런 것을 막자고 ‘김영란법’ 같은 것도 만들었는데 그마저도 아마 흐지부지 되는 모양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청렴’에 관하여 여러 가지 좋은 말이 있다. 톨스토이는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인생은 행복하다”, 노자는 “재물과 보화가 가득 차 있을지라도 언제까지나 그것을 지켜낼 수는 없다. 부귀한 지위에 만족하고 교만에 차 있으면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게 된다. 공을 이루고 떨쳤으면 몸을 빼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라고 했다.

선조 당시의 재상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1547~1634)의 ‘목민관의 8가지 자세’라는 것이 있다.

1.세상을 다스림에 있어 백성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몸을 닦는 데는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2.천하의 실정을 안후에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

3.일을 대함에 있어서는 포악함과 성냄을 경계하고 천천히 일의 전후 사정을 파악하라.

4.사람을 다스림에 있어. 착한 자에게는 상을 주라. 상을 주었으면 오랫동안 잊지 마라. 악한 자는 벌을 주어라. 벌을 주고 시일이 지났으면 이를 괘념치 마라.

5.한 이익을 일으키는 것이 한 폐단을 제거하는 것만 못 하고, 한 일을 내는 것이 한 일을 더는 것만 못 하다.

6.다스리는 고을에 일이 생기면 노회한 관리와 연로한 백성에게 물어서 인정에 합하기를 힘써야 하고, 남에게 거만을 부리고 스스로 민심을 떠나게 하지 마라.

7.백성은 마땅히 어루만져 돌봐야 하며, 관속을 대하는 것도 각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

8.모든 일은 때를 따라 자신의 마음을 다해 실천하라.

이 나라 지도자 대부분이 썩었는데 훌륭한 목민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연목구어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우리가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 앞으로 임기 2년 정도 남은 박근혜 대통령이 혁명하는 심정으로 이 부정부패를 송두리째 뽑고 사저로 돌아 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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