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 칼럼] 40년 전 추억 되살려준 동래구청 나들이길

고마운 친구였다. 이실(理實)학회, 마음 편한 학회였다. 봄 가을 세미나도 하고 총회도 하고. 다른 학회와 똑 같았다. 다른점은 500여 회원이 내 친구들이었다. 카르마(karma) 공유, 공직 퇴직 후였다. 신세 또 지고 말았다.

살면서 누구 도움 안 받고 산다? 가능할까? 나로서는 불가능하다. 내 삶의 도처에 날 이끌어 주고 날 밀어준 흔적이 있다. 조금이라도 갚고자 했나? 그랬을 터이지만 백분의 일, 아니 천분의 일이나 될까? 전혀 갚지 못한 경우도 아직 있다. 그 중 한 친구가 박윤기 교수다.

서울에서만 열렸던 이실 모임. 박윤기 교수를 필두로 한 3인방(三人?)은 꼬박꼬박 참석했다. 중간에 슬그머니 가지도 않았다. 끝마무리까지 다 참여했다. 그러고는 부산까지 운전해 갔다.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 몇 년 흘렀다. “2015년 1월 30일 한국안전연구학회 창립합니다. 그날 첫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축사 부탁합니다.” 이렇게 연락이 왔다.

은퇴한다 했는데, 공활동(公活動) 접었다 했는데 이거 난감했다. 집사람이 내게 말했다. “이실학회 할 때 도움 주신 박 교수님이잖우. 보고두 싶고 축사도 필요하니까 연락한 거 아니우? 당연히 가야 하는 거구만. 뭘 그리 고민하시우.” 그래! 가자! 기차 타고 오가는 길 기분도 좋았다.

변한 게 별로 없었다. 토요일 점심시간 지나 도착한 부산. 부산역 광장에서 바라본 앞 동네와 그 뒷산. 뭐 변한 게 없는 듯 했다. 내 기억의 눈이 옛날 풍경에만 초점 맞춰서 그런가? 그게 40년 전이었는데. 수정동이었고 산복도로였다. 울산에서 부산으로 유학 온 자매가 거기 살고 있었다. 40년 전 모습과 생각을 머리에 이고 지하철에 올랐다.

익숙한 땅 이름들. 초량->부산진->서면->동래. 반대 방향으로 가면 한 시절 놀러 다니던 번화가 나온다. 남포동과 광복동이 나온다. 동래역을 빠져 나왔다. 건물이 좀 더 빽빽이 들어섰을 뿐 그때 그대로다. 분위기는 더 아늑하다.

고로케(크로켓 croquette)를 어묵으로 만드는 가게, 이화당이 보인다. 낯이 익다. 그렇지. 첫 이사 가서 살던 동네 바로 이화동이다. 이곳에서 그곳으로 이어지다니. 인생 이어지고 겹침은 끈질기다. 젊은 부부가 튀기고 있다.

그곳 지나 낮은 언덕길. 동래구청 후문. 거기서 높은 굴뚝 나나났다. 뉴평화탕. 그저 단순한 평화가 아니다. 새롭다는 ‘뉴’가 붙었다. 욕탕 새롭게 수리했나. 마당 지나 정문 통과. 길 건너 구멍가게. 내 나이보다 많으신 아주머니다. “목욕탕 하나요?” “그럼요! 많이들 다녀요!”

그 옆 커피숍에 들어갔다. 여기는 젊은 자매 둘이 하고 있었다. RICO라? 미국의 법 이름인데. 조직범죄피해자보상법. 돈세탁 방지하고 범죄로 번 돈 몰수하는 내용이다. 설마 커피 먹는 가게 이름이 법 이름에서 따왔을까? 물어 봤다. 스페인어 “맛있다!”란 뜻이란다. 암. 그럴 테지. 젊은 사람들이 외국 풍물 우리네보다 훨씬 많이 아는 데 말이야.

전생에 살았었나? 동래구청 2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학회가 시작됐다. 내 축사는 이랬다. “신세 많이 지고 살았습니다. 갚으려고 노력은 했습니다. 헌데 갚고 갚아도 또 지게 되는 집사람 신세처럼 그렇게 신세 진 분이 있습니다. 박윤기 교수입니다. 오늘 이렇게 그 신세 몇백 분의 일 갚는 듯해 기쁩니다. 잘 이끌어 가실 분입니다. 많은 도움 부탁드립니다.”

주무시고 가시라는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막내 동생 친구 정기도 방 마련해 놨다며 내일 가시라 했다. 고사했다. 하지만 참석하길 잘 했다. 편안한 마음. 올라오는 열차 속에서 푹 잤다.

부산은 인연의 도시다. 부산은 한일수가 사는 곳이다. 장병근 형도 살고 있다. 다 부산 토박이. 1974년 봄여름을 지냈다. 임시직. 비정규직이었다. 76년에 가서 한 1년 있었다. 본격 직장. 정규직이었다.

인연(因緣)이란 말은 불교 전래 이전에도 쓰인 한자다. 간사한 관리(奸吏)가 권세를 ‘인연’ 삼아 백성 등친다. 이렇게 사용됐다. 불교에서는 숙세(宿世)=전생(前生)의 업보를 의미한다. 어떤 만남을 뜻한다. 길거리에서 어깨 스치기만 해도 연(緣) 맺는다 한다.

발 벗고 살았던 도시라야 몇 되는가. 속세(俗世) 오기 전 전세(前世)에 부산과 무슨 줄로 이어졌었나. 현세(現世) 속연(俗緣)이 내세(來世)에 어디로 인도하려나. 여기에서 정 흘리고. 저기에서 정 받고. 그런 인생이다.

김서두리 왈 “내 친구네 형. 얼굴이 검어. 자나깨나 고민하는 사춘기야.” 꿈에 관세음보살 나타나서 하신 말씀 “黑顔 걱정 말거라. 전생에 자네는 검은 소 흑우(黑牛)였어. 경 읽는 스님 근처에 살면서 그 소리 듣고 지냈네. 그 공덕(公德)으로 사람 된 거지. 착하게 살면 다음 세상에 하얀 피부로 태어날 걸세.”

 

내가 외친다. “죽은 다음에 무슨 소용입니까! 지금 해주세요! 나도 바로 유모차 사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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