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총리 후보로 추천됐었다며?”

정계은퇴 손학규, 50년친구 김근태 조영래와의 가상대화

지난달 31일 오후 국회 기자회견장.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손학규 새정치국민연합 상임고문은 눈시울은 빨갛게 충혈됐으나 미소는 잃지 않았다. 그는 “저는 오늘 정치를 떠납니다. 손학규가 그만 두는 것이 무슨 대단한 일이겠습니까마는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셨던 국민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고 떠나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비서진과 양승조 조정식 유은혜 최원식 의원 등 함께 한 의원들 일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이들 사이에 손 고문의 오랜 친구 둘이 멀찌감치서 은퇴 회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영래(1990년 작고) 변호사와 김근태(2011년 작고) 전 국회의원. 손 고문과 이들은 고등학교(경기고 61회) 대학교(서울대 65학번) 동기동창이자 수년간 민주화운동 동지였다.

조 변호사와 김근태 전 의원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모처럼 만난 세 사람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이야기꽃을 피워갔다. 이들의 가상대화를 통해 지난날의 정치역정과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돌이켜 보자.

조영래 “학규 축하해. 이제 그 좁디좁은 터널에서 광장으로 나왔으니 얼마나 홀가분한가?”
김근태 “내 대신 고생 많았어. 나야 정계 오기 전에 고문당하고 고생했지만 자넨 정치하면서 더 맘 고생도 심했지? 아이쿠 그러고 보니 자네가 복지부 장관은 내 선배네.”
손학규 “고맙네, 친구들. 잘 지냈지? 우리가 못 본지 얼마야? 정치를 그만 두니 이제 내 저녁시간은 되찾았을 것 같아.”
조영래 “맞아, 자네 지난 201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참 슬로건 좋았어. 누구 아이디어야?”
김근태 “우리 세대는 사실 민주화운동 하던 사람들이나 산업현장에서 나라경제를 일으킨 사람들이나 저녁이 없었어.”
손학규 “그런데 국민들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송구하기만 하네 그려. 그나저나 이제 시간이 나니 50년 전 학창시절이 그립네.”

연극반 손학규 웅변반 조영래, 교수가 꿈이었던 김근태

“학규는 연극반이었지? 근태는 무슨 활동했더라…맞아 근태는 교수가 꿈이었지? 그러던 사람이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며 민주화운동 가장 치열하게 한 게 우리 근태 아냐?”
김근태 “맞아. 그런데 영래는 웅변반 했지? 나도 그때 자네처럼 웅변 좀 배웠으면 연설도 좀 잘 할 수 있었을 텐데…내가 서울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것도 교수가 되고 싶어서였지.”
손학규 “우리의 청장년 시기는 군사정권과 유신독재 그리고 또다시 군사독재가 30년 이상 이어지면서 학창시절의 꿈을 그대로 실현시키는 것은 말 그대로 언감생심이었지.”
조영래 “그렇지. 수배, 수감, 도피생활의 연속이었지.”
김근태 “영래, 자네가 1970년 분신자실한 전태일의 평전을 쓴 것은 우리나라 노동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지. 자넨 변호사를 하면서 권인숙 성고문 피해사건 등을 맡으며 고생도 심했지? 학규는 탄광에서 광부도 했구.”
손학규 “전두환 시절에 가장 심한 고초를 겪은 건 근태였지? 이근안 등 고문기술자들에게 혹독하게 당한 자네, 결국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그만…”

김근태 손학규 현실정치 참여, 노무현 정계입문 시닌 조영래

김근태 “그런데 말야, 학규가 1993년 광명 보궐선거에서 나보다 3년 먼저 국회의원 됐으니 그것도 선배네. 그리고 보니 우리 중 영래만 현실정치를 안한 셈이군.”
손학규 “그건 그래. 그렇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영래 말 듣고 정치했으니 영래도 범정치권 아냐?”
김근태 “1980년대 중반 부산에서 변호사 하던 노무현더러 정치하라고 한 게 조영래였지.”
조영래 “하하.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근태 자네는 노무현 대통령 더러 ‘계급장 떼고 맞짱 뜨자’고 했다며?”
김근태 “뭐, 다 지난 일 갖고. 그때 우리가 좀더 국민들 눈높이에 맞춰서 템포를 조절하면서 개혁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 나는 일부에서 DJ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너무 속이 상하다네. 잘못도 있었지만 공은 공대로 평가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해.”

손학규 “그런 점이 많이 아쉽지. 지금도 여전히 네편 내편 가르고. 내 경우는 93년 민자당으로 정치에 입문해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여야 모두에서 비난도 많이 받았지. 시베리아에 홀로 선 느낌이더라구.”
조영래 “이해가 되네. 언제부터 이렇게 대한민국이 편가르기에 빠져들게 됐는지 안타깝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통일로 가는 길이 험난하기만 할 걸세.”
김근태 “이번에 순천 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것은 다행이 아닌가 싶네. 영남에서도 그런 좋은 조짐이 어서 나오길 기대하네.”

안대희 총리 낙마 후 손학규 추천설

조영래 “듣자 하니 안대희 변호사가 총리 후보에서 자진 사퇴하고 학규 자네를 추천했다던 얘기도 들리던데, 사실인가?
김근태 “나도 들었어. 아마 보수언론사 고위층에서 그랬다지. 그런데 청와대에서 부담스러워 하더라나, 그런 얘기였어.”

손학규 “박근혜 대통령이 나같은 사람을 총리 시킬까?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갈 자리는 아니지. 지난 번 야당에 있다 새누리로 간 분들도 계신데…”

조영래 “이봐 학규 친구. 자네 은퇴하고선 다음에 기회되면 슬며시 복귀하는 건 아니겠지?”
김근태 “영래 자네 속마음은 아니면서 괜히 떠보긴…학규는 한번 한다면 하고, 안 한다면 안 하는 사람 아니던가 말야.”
조영래 “맞아 맞구 말구. 학규 자네 지금까지 대통령 빼고 하지 않은 것이 없지. 장관 도시사 여당의원 야당대표 등 모든 것을 다해 봤으니 말이야. 이제는 이런 거 해봐. 몇 년 전 했던 것처럼 전국 돌면서 농민들 삶, 어민들 삶, 자네 젊었을 때 했던 광부들 삶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분들 말동무도 해드리고 말야.”
김근태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 자네 춘천에서 닭도 치고 그랬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 학규 천하 농사꾼일세. 저녁마다 평상에 앉아 모깃불도 놓고, 밤엔 별도 따면서…이거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인데.”

손학규 “맞아, 친구들 말대로 그리 함세. 내가 먼저 저녁이 있는 삶을 제대로 살면 딴 분들도 나를 따르지 않을까? 표를 얻는 것보다 저녁을 되찾는 걸 이제 내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겠어.”

조영래 김근태 “이제야 우리가 50년 전 화동에서 꾸던 꿈을 되찾았군. 학규 자네 평소 늘 하던 말 있잖아? 수처작주(隨處作主). 맞아 이제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게나. 자 그럼 우린 다시 떠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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