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홍명보 감독, 이제 다시 시작이네
홍명보 감독, 사랑하는 아우.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네. 장마철이 다가오고 있네.
이 여름 온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일세.
명보 아우.
지난 한 달이 홍 감독 생애에서 가장 길고 외로운 시간이 아니었나 싶으이. 1무2패의 성적표를 들고 인천공항에 입국하던 날, “지난 반년 밑거름, 남은 반년 차분히. 수고하셨네, 아우!”라고 보낸 문자에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한번 뵙겠습니다”하고 아우가 답을 보냈지. 내가 미안하지, 왜 아우가 내게 죄송하단 말인가? 내가 좀더 적극적으로 응원도 하고 기도도 하고 했어야 했는데…
세월호 참사 슬픔에 잠긴 대한민국에 기쁨의 단비를 우리 대표팀이 가져와주길 바랬던 건 사실이지만, 맘대로 되는 건 아닌 듯했다네. “뿌리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대로 아직 우리의 기초를 더 다져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되네. 아우가 유소년 축구교실을 몇 년째 운영하는 것도 그런 취지가 아닌가 하네.
명보 아우!
지난 10일 사퇴 기자회견 직후 통화에서 나눈 대로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겠나. 요즘 경제가 너무 어렵고 무더위도 한 몫 하여 국민들이 많이 지쳐 계신데, 그분들에게 조그마한 용기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말일세.
명보 아우, 우리가 처음 만난 게 벌써 7년이 다 되어가네.
2007년 11월말 아시아기자협회 총회 개막식에서였지. 돌아가신 앙드레김 선생님과 엄홍길 대장과 한 테이블 앉아 네 시간 이상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난 미안하기도 하고, ‘홍명보 선수한테 저런 면이 있네’ 하고 생각했다네.
그 며칠 뒤 엄 대장과 몇몇이서 저녁을 하며, 그리고 이후 아시아기자협회 행사 등에서 아우의 진면모를 숱하게 확인하여 무척 반갑고 고마웠다네.
명보 아우는 아시아기자협회 행사에 참석하면 항상 뒷자리에 앉아 끝까지 자리를 지켜주었지. 앞에 자리를 마련해도 사양하곤 했어. 그리고 중간에 자리를 뜨는 법이 없더라구. 흔히 조금만 유명세를 타도 얼굴만 내비치는 세상인데.
2010년 11월엔가 남기춘 울산지검장 초청으로 그곳 검찰청 직원들 강의 마치고 이튿날 같이 올라오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우를 알아본 이들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하는데 거절하거나 심지어 외면도 하지 않고 포즈를 취하는 걸 보고 내가 “그렇게 일일이 응해주니 보기 좋네” 했더니 “제가 더 고맙고 영광이지요. 조금만 시간 내면 되는 일인데요” 하였지, 기억나지?
엄 대장과 대화하던 것도 생생하게 기억나는군. “대장님은 등반하면서 대원들에게 지시하거나 대화가 가능하지만, 축구감독은 그게 안돼요. 일단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그때부턴 선수들과는 단절이 돼요. 그래서 축구에선 특히 평소 연습하며 소통하는 방법을 훈련하는 게 중요해요.”
명보 아우.
지난 런던올림픽 때 브라질과 4강전에서 패배 후에 그쪽 감독한테 가서 인사하던 장면이 눈에 선하이. 그런 모습이 아우의 참모습이고, 내가 많이 배운다네. 그때 3-4위전에서 홍 감독이 경기 막바지에 김기희 선수를 경기장에 들여보내는 걸 보고 얼마나 기뻤는지… 2002년 월드컵때 김병지 선수 등 몇 명이 시합에 못나간 것이 늘 미안하다고 하던 아우 아니었나?
아마 이번에 감독직을 사퇴하게 된 원인 중 하나였다고 보도된 회식자리도 선수들 격려하고 위로하기 위해서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난 이해한다네. 내가 잘못하고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세태에서 아우는 늘 자신이 책임을 지는 게 몸에 배어있지.
명보 아우.
이제 다시 시작하세나. 그리고 언젠가 아우가 다시 사령탑을 맡으리라 믿고 기원하네. 원칙과 소신을 갖고 책임질 줄 아는 지도자는 언젠가 다시 쓰임을 받는 법이지.
글이 길어졌네.
이제 모처럼 20여년만에 편한 맘으로 대표선수와 코치, 감독직을 벗고 자유로운 몸이 된 것을 축하하네. 터널에서 광장으로 나왔으니 말이야.
언젠가 우리가 나눈 얘기 기억나나? 가난 때문에 축구공 대신 동물 오줌보에 바람을 넣어 축구를 하는 아이들, 실력 있으면서도 무슨 이유에선가 그라운드에 들어가지 못하는 선수들이 맘껏 뛰어 놀고, 기량을 발휘할 그날을 앞당기는 것, 그것 말일세.
아우, 그 꿈이 우리 모두의 꿈이 되리라 믿고 또 그 길을 향해 달려 가세나.
2014년 7월17일 이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