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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동짓날 긴긴 밤’ 홍사성
가장 긴 밤이었으나/ 가장 가까운 새벽이/ 지금, 문밖에 성큼 다가와 있다-시 가운데. 사진은 칠보산자연휴양림에서 본 동해일출. <산림청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제공> 가장 긴 어둠이지붕 위에 내려앉고 있다 숨소리도 얼어붙는 조용한 시간 한 해 동안의 긴긴 사연어느 날은 곧고 어느 날은 굽었던 길그 또한 나의 길이었다 겨울이 깊고 밤이 깊을수록조금씩 밝아오는 내일이제부터 한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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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늘의 시] ‘시월 상달’ 홍사성
오늘 내가 이만큼인 것도/ 할머니 어머니/ 그 간절한 비손 덕일지니…(본문에서) 비손은 표준어로 ‘빌손’ 또는 ‘비손(祈手)’이라고도 쓰이며,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논밭 추수 끝내고마당설거지까지 끝내놓으니강아지도 거들던 일손 한가해졌도다돌아보니 올해도 하나부터 열까지성주신 은덕 아닌 게 없도다 대문에는 문전신 마당에는 터주신 안방에는 조상신 부엌에는 조왕신 장독대에는 장독대신 뒤깐에는 측신 창고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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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중양절(重陽節) 홍사성
들국화 산이 한 걸음 물러서고하늘이 한 겹 더 깊어졌다서리 맞은 국화 한 송이늦게 피어 노랗게 웃는 계절강물은 오래된 노래인 듯몸 낮춰 흘러가고괜히 바쁜 척하던 날들은되레 부끄럽기만 하다 높은 산에 올라야넓은 세상 보인다 했던가그리 대단한 것도 없고그리 미운 것도 없다짓누르던 욕심들국화주 석 잔으로 씻어내고아직 못 버린 마음은흰 구름에 띄워보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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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백중’ 홍사성
밀양 백중놀이 <사진 국가유산청> 밭 매던 호미 씻어 헛간에 걸어놓고장롱 속 새옷 꺼내 입고 백중불공 가는 날 갓 익은 백 가지 과일 다섯 가지 곡식거룩하옵신 삼보님께 육법공양 올리오니 백중사리 물 들어오듯 사해공덕 흘러넘쳐삼재팔난 사백사병 영영소멸하옵기를 노총각 노처녀는 눈 맞추고 짝 맞추고홀아비 과부는 등 떠밀려 새살림 차리기를 날 낳고 길러주신 선망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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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칠석(七夕)’ 홍사성
보고싶다일 년 내내 오늘만 생각하며 기다렸으니 보고싶다더 기다리면 눈이 짓무를 것 같으니 보고싶다그동안 애가 다 타도록 안부 궁금했으니 보고싶다너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어디로든 가서 보고싶다까마귀들이 이어준 다리가 아니라도 보고싶다벼랑 끝이라 해도 천둥 내려친다 해도 보고싶다다시 이별의 눈물 흘리게 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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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말복(末伏)’ 홍사성
이젠 참는 것도 지쳐가는 늦여름이다얼마나 견뎌야 겨드랑이 시원해지려나아직도 불가마 끓듯 온세상이 화탕이다 찬물 샤워에 부채질 수박화채 한 그릇버텨서 산 게 아니라 살아서 버티는 중스스로 위로해가며 막고비 넘겨야 한다 사는 날까지 살아내자면 별 방법이 없다어떤 날이 찾아올지 조금 더 기다려보자흘린 땀 서 말 넘지만 며칠 뒤면 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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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중복(中伏)’
서울광장 분수대 숨쉬기도 힘든 무서운 무더위다온몸은 물에서 건져낸 듯 후줄근하다 중복전쟁은더위와 맞서지 말고등목하고 탁족하며흘려보내는 게 상책 싸울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천지 가득한 염천대군을 이길 수 있다 더위란세월 가면 사라질 고통이보다 더한 일도 이겨낸만세강골 아닌가 강아지도 입다물고 꼼짝않는 한낮추어탕 복다림으로 충전 끝오늘도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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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초복(初伏)
사람들은 흔히 입춘 추분 같은 24절기로 계절을 짚지만, 그 틈새엔 민속명절이라는 또 다른 시간이 숨어 있습니다. 설날, 대보름, 삼짇날, 단오, 칠석, 백중, 한가위, 중양절…이런 날들에는 옛 사람들의 숨결과 삶의 온기가 깃들어 있습니다. 아시아엔은 홍사성 시인의 시를 통해 민속명절의 의미를 다시 짚어봅니다. ‘시로 읽는 민속명절’은 단순한 추억의 복원만이 아니라, 시를 통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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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로 읽는 민속명절] ‘유두절’ 홍사성
혜원 신윤복 ‘유두’ 사람들은 흔히 입춘 추분 같은 24절기로 계절을 짚지만, 그 틈새엔 민속명절이라는 또 다른 시간이 숨어 있다. 설날, 대보름, 삼짇날, 단오, 칠석, 백중, 한가위, 중양절……이런 날들에는 옛 사람들의 숨결과 삶의 온기가 깃들어 있다. 아시아엔은 홍사성 시인의 시를 통해 민속명절의 의미를 다시 짚어보고자 한다. 물굽이 따라 머리 감던 유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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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 홍사성
2023년 서울 길상사 연등 사월이라 초파일 밤우리 절로 봉축 꽃등 달러갑니다 붉은등 노란등 파란등 하얀등이가슴 설레게 환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언니 오빠들이극락 온 듯 좋아합니다 곱슬머리 아저씨 코 큰 총각파란 눈 아가씨 입모양이 꽃입니다 모두 모두 부처님처럼 웃습니다 내년에는 다리 아픈 고양이배고픈 강아지도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길상사 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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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추모시] ‘교황 바이러스’ 홍사성
프란치스코 교황, 그분은 참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할아버지였습니다. 어느날 성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신자들에게 사랑에 대해 강론할 때였습니다. 한 꼬마가 강대에 올라가 교황의자에 앉았습니다. 심심했던지 연단 주위를 돌아다니다 교황의 옷깃을 잡아당기기도 했습니다. 고위성직자들은 뒤 급한 사람처럼 안절부절하고 신자들은 간지럼밥 먹은 것처럼 배를 잡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교황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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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벚꽃’ 홍사성
벚꽃 기억하는가 지난 겨울 그 추위를내가 어떻게 그 힘든 시간 견뎠는지를칼날 같은 찬바람은 살을 엘 듯 파고들었다휘영청 달 뜬 밤은 더욱 날카로웠다눈물도 흘리면 안 되었다새벽 눈보라는 눈물마저 얼어붙게 했다살기 위해서는 다만 죽은 듯 기다려야 했다땅속 찬물 빨아올리면 온몸 얼어터졌다그러나 나는 그 모순의 결론 알고 있었다지옥의 고통 절망의 끝은 희망이라는 것을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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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오늘의 시] ‘히말라야 새’ 홍사성
해발 8천8백 미터 히말라야를 넘는 새가 있다 온몸 힘 빼고 가오리연처럼 하늘 높이 솟구쳐 바람의 흐름에 목숨 맡기고 만년설 덮인 설산을 넘어간다 지상에서 가장 높은 구름 띠 두른 산 위를 나는 새는 결코 산 아래를 바라보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진 무한창공 그 절대고독 속을 날아 천축에 이른다 세상의 안락에 발 묶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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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늘의 시] ‘낙엽 인사’ 홍사성
일 년 내내 나무에 매달려 푸른 이파리 흔들던 단풍잎 바람 불자 낙엽으로 떨어지면서 인사말 건넵니다 그동안 보살펴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을은 이별도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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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오늘의 시] ‘불청치우'(不請之友) 홍사성…”우산을 같이 쓰면 세상이 바뀐다”‘
전철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손가방을 머리에 이고 빠르게 걸어가는데 ‘아저씨 같이 쓰고 가요’ 하면서 누가 우산을 씌워주었다 힐끗 쳐다보니 앳된 처녀가 활짝 웃으며 옆으로 다가왔다 청하지도 않았는데 선뜻 친구가 되어준 천사같은 그녀! 목소리는 어찌 그리 맑고 얼굴은 또 얼마나 예쁘던지 세상이 엉망이라고 늘 혀를 차던 나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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