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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책] 아흔넷 남문우 전 검사 ‘법으로 살고 멋으로 남다’…결국 남는 것은 사람과 은혜

2024년 2월 24일, 민병돈 장군과 함께 충남 홍성의 남문우 전 검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부인과 손자가 함께 우리 일행을 맞았다. 오랫동안 검사로 살아온 사람이라기보다 자상하고 소박한 시골 어른에 가까웠다. 민 장군과 남 전 검사는 젊은 시절부터 6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사이였다. 알고 보니 남 전 검사는 내 큰형님과도 서울대 동창으로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날 남 전 검사는 우리를 김좌진 장군 고택으로 안내했다. 그는 김좌진 장군이 젊은 시절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노비들을 해방시킨 이야기를 들려줬다. 역사를 설명하는 말투도 검사 출신답게 권위적이지 않았다. 오래 알고 지낸 동네 어른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그가 최근 <법으로 살고 멋으로 남다>(태학사)를 냈다. 자신의 성공이나 직위를 자랑하기보다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의 이름과 사연을 하나하나 기록한다. 사람이 어떻게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주었는지를 잊지 않으려는 기록이다.

특히 학창시절 은사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남 전 검사는 학생들이 공부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한 선생님(박보희)이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가져오게 한 뒤 학생들을 때리는 대신 자신의 장딴지를 피가 철철 나도록 때렸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어린 남문우에게 그 모습은 오래 지워지지 않는 가르침이 됐다. 책에는 임동권, 윤규상 등 여러 스승과 자신에게 용기와 가능성을 일깨워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남 전 검사의 삶도 굴곡이 적지 않았다. 예산중학교와 예산농고 시절, 어린 나이에 한 결혼, 어머니와 조부모에 대한 기억, 군 생활과 서울대 법대 시절, 사법시험과 검사 생활이 차례로 등장한다. 대검찰청 중앙수사국에서 보낸 시절과 여러 검찰청 근무 경험, 선배 검사들과 법무부 장·차관에게서 배운 것과 반면교사로 삼은 일들도 숨기지 않는다. 변호사 생활과 해외여행, 스포츠에 얽힌 추억까지 두꺼운 책 속에 촘촘히 들어 있다.

그의 검사 생활을 관통하는 자부심은 원칙이었다. 정실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했고 피의자를 위압하기보다 사람으로 대하려 했다고 회고한다. 실제로 홍성에서 만난 그의 모습에서도 그런 성품의 한 자락을 느낄 수 있었다. 검사의 권위보다는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함이 먼저 다가왔다.

<법으로 살고 멋으로 남다>에는 아흔을 넘긴 노인의 일상이 수채화처럼 담겨 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그는 국내 야구와 미국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를 즐겨 응원한다. 예전에는 응원하는 팀이 지면 감독과 선수들을 원망하고 스트레스도 받았다. 요즘은 경기 결과부터 확인해 이겼으면 재방송을 보고 졌으면 아예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이를 두고 “늙어가면서 요령만 는다”고 썼다.

2026년 7월 23일에는 특별한 글을 남겼다. 2021년 7월 23일 대장암 수술을 받은 지 정확히 5년 되는 날이었다. 그는 자신이 ‘암 재발 위험기간’이라고 불러온 시간을 무사히 지났다는 안도감을 적었다. 암 수술 이후 항암치료를 받지 않은 선택과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록했다. 다만 스트레스를 피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져온 것이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됐으리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남 전 검사 자신의 경험과 해석이다.

그가 아흔넷에 이르러 얻은 생활의 원칙은 오히려 단순해졌다. 세상 돌아가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자신이 걱정한다고 바로잡을 수 없는 일이라면 지나치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스포츠도, 세상일도, 질병도 가능한 한 욕심을 버리고 받아들이려고 한다.

“언제까지 살지는 모르지만 살아 있는 한 욕심 없이 마음 편안하게 즐겁게 살련다.”

남문우 전 검사의 책에는 거창한 인생론이 별로 없다. 대신 자신을 키워준 사람, 가르쳐준 사람,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검사와 변호사로 보낸 긴 세월보다 그에게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주고받은 은혜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두꺼운 책이 의외로 낯설지 않다. 한 법조인의 회고록이면서 동시에 어느 집 할아버지의 가족 이야기이고, 스승을 기억하는 제자의 이야기이며, 아흔넷에도 야구 경기를 보며 웃고 속상해하는 한 사람의 생활기록이다.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기록이라기보다 오래 살아보니 무엇이 남더라는 것을 조용히 들려주는 책에 가깝다.

남문우 전 검사가 아흔넷에 다시 펼쳐놓은 삶의 페이지에서 가장 오래 남는 단어는 법도, 검사도 아니다.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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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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